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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운석 병영칼럼] 아홉 앓이

기사입력 2019. 11. 04   15:57 최종수정 2019. 11. 04   16:23

임 운 석
빛바라 대표·여행작가


2000년을 목전에 둔 가을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하늘은 맑고 높았으며 바람은 스산하고 공기는 냉랭했다. 나뭇잎이 울긋불긋 물들어 산야는 물론 도심의 공원까지 아름답게 물들어 갔다. 하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 더 아리듯, 온몸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아홉 앓이’의 깊은 늪에 빠진 이들이었다.

그들 속에 나도 있었다. 내 나이 스물아홉 살, IMF 외환위기를 온몸으로 맞을 때였다. 연일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명퇴·당퇴·졸퇴·황퇴 등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신조어들이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왔다. 사회에 갓 진출한 새내기들은 닥치는 대로 출근할 곳을 찾아 이력서를 들고 동분서주했다.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1999년은 새로운 천년, 2000년을 맞이한다는 희망에 부풀어 한시름을 덜 수 있었다. 그런데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며 앞만 보고 질주할 때는 몰랐다. 잠시 쉬는 틈을 타 주위를 돌아보니 ‘나는 어디에 있고, 지금까지 무엇을 향해 달려왔나’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됐다. 친구들과 동료들은 술술 잘 풀리는 것 같은데 나만 표류하는 배처럼 보였다.

그때처럼 지금도 ‘아홉 앓이’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아홉 앓이’를 가장 치열히 해야 할 나이는 열아홉 때라 여겨진다. 하지만 대학입시라는 큰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까닭에 열아홉의 ‘앓이’는 스스로 눈치채지도 못한 채 지나간다. 그러다 스물아홉에 이르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뭔가를 이뤄놓은 것도 없이 20대 청춘을 마감한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남들은 좋은 스펙, 직장, 이성 등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완벽하게 갖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하나도 내세울 게 없어 보인다.

과연 그럴까? 이 문제는 객관적·정량적으로 따질 수 없다. 설령 앞서 나열한 것들이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결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때와 여건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인생이다. 결국,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을 맞춘 결과 자신을 평가절하할 뿐이다. ‘아홉 앓이’에 빠진 대부분 사람은 자신을 평가하는 잣대가 무척 높다. 그리고 그 잣대에 못 미칠 경우 낙심하고 좌절한다. 그 잣대는 누가 만든 것일까. 대부분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춘 허상일 뿐인데, 내 청춘을 허상에 맞춰 살아야 할까.

천상병 시인은 평생을 가난한 시인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만약 세상의 잣대로 그를 평가한다면 그는 무능한 시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설정해 놓은 가난과 불행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다. 오히려 담대하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시 ‘귀천(歸天)’을 남겼다.

세상과 자신을 무조건 긍정적인 눈으로 본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 앞에 주눅 들고 의기소침해진다면 그 또한 큰 문제다. 만약 당신이 ‘아홉 앓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것만 기억하길 바란다. 아홉은 목적지를 향한 여정일 뿐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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