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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희정 문화산책] 유럽 자기와 티타임

기사입력 2019. 10. 24   15:40 최종수정 2019. 10. 24   15:44

하 희 정 
상명대학교 박물관장


우리 박물관 2층 상설전시장에는 유럽 여러 나라의 자기들이 전시돼 있다. 흔히 도자기라고 부르지만 도자기는 ‘도기(陶器)’와 ‘자기(磁器)’의 복합어(複合語)다. 도기는 약 1000℃ 이하에서 구워진 것으로 형태와 문양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경도가 약하고 투습성이 강해 잘 깨진다. 반면 자기는 1300℃ 이상에서 구워진 것으로 표현에 제약은 있으나 경도가 강해서 잘 깨지지 않는다. 이러한 경질 자기는 주로 식탁용 식기로 사용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유럽 최초의 경질 자기인 독일의 마이센을 비롯해 프랑스·덴마크·영국 등의 자기가 나라별로 특색 있게 전시돼 있다. 영국이 자기 산업에서 후발 주자에 속하지만, 10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데는 조사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wood)의 역할이 컸다. 웨지우드는 소득이 적은 근로자들도 구입할 수 있는 자기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해 크림 웨어(Cream wear)라는 유백색의 경질 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자기는 일부 대량 생산이 가능해 합리적인 가격대에 판매됐다. 자기의 대중화에 성공한 것이다.

유백색의 자기에 얼그레이(earl grey) 홍차를 따라본다. 얼그레이는 영국의 그레이 백작이 즐겨 마신 차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가장 대중적인 가향차 중의 하나다. 차는 찻잎의 색을 기준으로 녹차·백차·흑차 등으로 분류된다. 홍차의 찻잎은 검은색에 가깝지만, 우려낸 찻물이 붉은색이어서 홍차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영국은 홍차와 티타임을 즐기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홍차 보급이 확산되면서 중산층에서도 티타임을 즐기게 됐는데, 티타임의 확산에는 산업혁명도 일조했다. 금주 운동으로 인해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오후 휴식 시간이 되면 맥주 대신 홍차를 제공했다. 난방이 되지 않는 공장 안에서 10분 내지 15분의 휴식 시간 동안 마시는 뜨거운 홍차는 노동자들에게 작은 위안이었다.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면 각성 효과에 열량 보충까지 더해져 후반 작업 성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렇게 티타임은 영국인에게 하나의 문화로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보급품에도 홍차가 들어갔다. 전시의 티타임으로 인한 사상자 방지를 위해 탱크 안에 차를 끓일 수 있는 케틀(kettle)을 장착할 정도였다. 1946년 영국의학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1945년 3월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개월간 전차 기갑 사고의 사상자 중 약 37%는 차량 외부에서 발생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탱크 내부에서 나왔을 때 사상했다는 것이다. 전쟁 이후 직육면체의 전열 포트인 케틀은 영국 표준 장비의 일부가 됐고, 현재는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쳐 주요 전투 차량에는 전열 포트가 장착돼 있다고 한다. 장갑차 안의 폐쇄된 공간에서 케틀을 이용해 만든 뜨거운 차 한 잔은 군인들에게 더 안전한 작은 휴식을 제공해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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