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과 미디어

진실과 자유는 권력보다 우선한다

입력 2019. 10. 22   16:11
업데이트 2019. 10. 22   16:13
0 댓글

<8>베트남 전쟁과 언론(下)


펜타곤 근무했던 엘즈버그의 제보
베트남전은 미국의 30년간 작전…
뉴욕타임스 ‘펜타곤 페이퍼’ 폭로
워싱턴포스트 동참 정부 중지 압력
대법원 언론 보도 사전 통제 금지 판결
언론의 정부 감시 탐사 보도 발전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한 뉴욕타임스.  필자 제공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한 뉴욕타임스. 필자 제공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소재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배급사 제공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소재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배급사 제공

베트남에서 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선언한 닉슨 독트린 이후 정부와 언론 사이의 긴장 관계는 더욱 심화되는데, 그 정점을 이룬 것이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언론 보도다. 펜타곤 페이퍼는 1967년 미 국방부의 베트남 태스크포스가 작성한 7000쪽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로서 극비문서로 분류됐다.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정책적 오류를 예방하기 위한 역사적 사료를 만들 목적으로 이 문서 작성을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펜타곤 페이퍼는 미국이 어떻게 베트남에 관여하게 됐는지 그 역사와 베트남 전쟁 전개 과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71년부터 시작된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뉴욕타임스 보도는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뉴욕타임스가 이 극비문서를 입수하게 된 배경에는 대니얼 엘즈버그라는 인물이 있다. 엘즈버그는 안보 관련 국가기밀을 언론에 누설하는 행동의 시초가 되는 인물로, 2013년 미국이 세계적으로 감시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기밀을 언론에 누설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롤모델이다.

엘즈버그는 1964년부터 펜타곤에서 근무한 뒤 국무부로 소속을 변경해 베트남에서 2년간 근무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그는 반전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던 중 엘즈버그는 펜타곤 페이퍼를 접하게 됐고,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비서관에게 이 문서의 복사본을 전달하려 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대신 엘즈버그는 뉴욕타임스의 닐 시언 기자를 찾아가 복사본을 전달했던 것이다.

1971년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한 뉴욕타임스는 처음에는 극비문서를 보도하는 데 주저했다. 국가안보 관련 사항을 공개하는 것이 간첩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법률 자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수정헌법 1조에 따라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내부적 판단에 따라 펜타곤 페이퍼의 주요 내용을 공개하기로 결정했고, 그 특종 시리즈의 첫 번째 기사는 미국이 베트남에 갑자기 개입하게 된 것이 아니라 30년에 걸친 작전이 있었다는 폭로였다.

워싱턴포스트도 이어서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참여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 사장으로 취임한 캐서린 그레이엄은 죽은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남성 중심 문화의 신문사 경영에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신문사 주식 상장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게다가 맥나마라 국방장관과는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그는 뉴욕타임스가 자신을 부당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그레이엄에게 토로했다.

그녀는 최고경영자로서 회사 경영을 위해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자제할 것인지 언론인으로서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보도를 감행할 것인지 고민에 빠졌지만, 결국에는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따르기로 결정했다(2017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메릴 스트리프가 주연한 영화 ‘더 포스트’가 바로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대한 것이다).

펜타곤 페이퍼 언론 보도에 대해 닉슨 정부는 ‘배관공(plumbers)’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특별수사팀을 꾸려 대응했다. 그 별명은 수사팀의 한 요원이 할머니에게 자신이 백악관에서 하는 일이 새는 것(leak)을 막는 것이라고 했을 때, 할머니가 “아, 그럼 너는 수도 배관공이구나”라고 해서 붙여졌다. 백악관 배관공들은 엘즈버그의 정신치료 관련 자료를 입수해 공개하려다 실패하고 만다. 이들은 나중에 민주당 전당대회가 진행되던 워터게이트 호텔 도청 사건에 연루된 스캔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편 국무장관이 된 헨리 키신저는 언론 보도가 국가안보와 관련된 모든 법률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검찰총장 존 미첼은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중지하고 입수한 문서를 반환할 것을 요구한다. 마침내 닉슨 정부의 출판금지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진다. 그러자 뉴욕타임스는 즉시 연방대법원에 항소한다. 그리고 연방대법원은 6-3 판결로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줬다. 다수 의견을 낸 판사들은 “수정헌법 1조의 목적은 정부가 불편한 정보를 억압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법원 판결은 정부가 언론 보도를 사전에 통제(prior restraint)하는 것을 금지한 역사적 판결로 기록돼 있다. 이 판결 이후로 미국 언론은 정부를 감시하는 제4부로서 숨겨진 비밀이나 비리를 파헤치는 탐사 보도(investigative reporting)를 발전시킨다.

베트남 전쟁의 교훈은 자유주의 국가에서 언론은 전쟁의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정부가 여론의 지지 없이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언론이다. 어떤 정부든 안보와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와 달리 자유주의 국가에는 국민의 알 권리와 정부 감시를 의무로 삼는 언론이라는 장치가 존재하며, 이를 상대로 과도한 기밀주의는 성공하기 어렵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 연구위원>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