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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관 독자마당] ‘탄약관리’에 불사른 54년 외길 인생

기사입력 2019. 10. 22   15:38 최종수정 2019. 10. 22   15:41

윤 재 관 
예비역 육군중령

인생의 영화 한 편이 다 끝나고 곧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시점에 아직도 관객들에게 보여줄 ‘쿠키 영상’ 몇 컷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지난 54년간 ‘탄약관리’의 외길을 달려온 체험을 나눠본다.

1959년 11월 25일 논산훈련소에 자원입대해 군 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나는 1961년 봄 갑종간부 후보생 제155기에 지원해 소위로 임관했다. 보병 8사단 소대장으로 근무 중 1963년 8월 병기 병과로 전과했다. 1968년 11월~1969년 4월 미 육군병기학교의 전차포탑 정비과정을 수료했고, 귀국 후 육군병기학교의 총포학 교관 임무를 수행했다. 1974년 1월부터 6개월간 미 국방 탄약학교의 품질평가 과정과 탄약검사관 과정을 이수했다. 당시 도미 유학 교육이 오늘날 나를 탄약관리 분야 전문가의 길로 이끄는 계기가 됐다.

귀국 후 육군본부 병기감실 탄약검사관 및 정비장교로 보직됐고, 당시 탄약 분야 최고 전문가인 장화용·김영택·이학조 대령 등으로부터 특별지도를 받아 이룩한 것이 한미 단일 탄약보급체제 합의각서(SALS-K)다. 거의 매일 미8군사령부로 출근하면서 협상 문안과 합의각서 상의 숫자·단어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수정을 거듭한 끝에 완성된 그 초안은 마침내 1974년 11월 한미 공동 서명을 끌어냈다. 이 합의각서는 한미 탄약운영의 바이블로 불리며 오늘날까지 적용되고 있다. SALS-K 체제의 정립과 시행 공로로 1978년 중령으로 진급됐고 당시 유엔군사령관의 유공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1985년 5월 말 전역을 앞두고 있던 나는 한 국내 자동차 부장직 제의와 함께 한미연합군사령부 군수탄약관리관 보직 제안을 받게 됐다. 잠시 고민했지만 26년 동안 쌓아놓은 값진 경험을 우리나라 방위력 증강을 위해 써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주한미군의 군무원 자리를 수락했다.

주한미군사령부 군수탄약관리관으로 재직했던 1985년부터 2013년까지 탄약관리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2013년 77세의 나이로 전·현직 한미 장성들과 관계관·친지·동료 등 12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용산 사우스 포스트에 있는 드래곤 힐 로지 호텔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했다.

이제 내가 군의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첫째, 한때의 실패와 좌절 앞에서 절대로 무릎 꿇거나 포기하지 마라. 기회는 꼭 다시 찾아온다. 둘째, 업무를 처리할 때는 그때 그 상황에 휘말려 조급히 결정하려 들지 말고 그 환경을 지배하는 원리와 원칙을 살피고 난 후 결정할 것이며, 항상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라. 셋째, 이렇게 처리된 결과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한미 간의 업무처리 시 업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미군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어떤 사건 처리 과정이나 그 결과를 반드시 파일로 남겨 사람이 바뀌어도 그가 처리한 업무의 시종이 마치 재판의 판례처럼 항구적인 법규와 규범이 되게 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항상 지금 행하는 귀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묻고 항상 당당하고 공명정대하게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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