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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택 종교와 삶] 자리 지킴

기사입력 2019. 10. 22   15:38 최종수정 2019. 10. 22   15:40

전 준 택 
육군21사단 군종참모·소령·목사

2005년 군종 초군반을 마치고 전방사단 GOP연대에 배치받았다. 당시 부대 임무를 고려해 필자가 군종목사로 주로 했던 사역은 주야간에 전방 철책을 돌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용사들을 위문하고 기도해 주는 것이었다.

최전방 소초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용사에게 다가가 반갑게 말했다. “목사님이야~.” 그런데 그 용사는 나를 보지도 않고 전방을 주시하며 답했다. “목사님 오셨습니까?” 평상시에는 아무리 바빠도 서로 대면하며 인사했기에, 그렇게 반응하는 용사는 의외였다. 혹시 착오가 있나 싶어 재차 알렸으나 반응은 같았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서 도대체 뭘 보고 있기에 이렇게까지 여유가 없는 것인지 직접 확인했다.

당시 우리 측 소초를 기준으로 전방에 돌을 던지면 닿을 만큼 가까이에 북한 측 소초가 있었다. 사방이 훤히 트인 곳인지라 매우 가깝게 느껴졌다. 필자는 북한군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유심히 보았다. 식별된 북한군은 세 명이었는데 한 명은 러닝 차림으로 난간에 누워있었고, 두 명은 농구를 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세 명 모두 경계근무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아 보였다. 다만, 그런 그들을 응시하며 우리 측 용사는 위문 온 군종목사를 대면할 겨를도 없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상황을 경험하며 필자는 크게 깨달았다. 비록 북한군은 긴장 풀린 모습이지만, 현장에 있기에 우리 용사에게 긴장감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물론 군인으로서 기본자세는 우리 용사처럼 철저하게 빈틈없이 경계근무를 서는 것이지만, 우리 용사가 그렇게 철저하게 근무하게 만든 요인이 있다면, 북한군이 비록 해이한 모습이지만 그런데도 현장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날 이후로 필자가 만든 나름의 철학이 있다. “좀 부족하더라도 내가 있어야 할 현장에 있는 것이, 내가 있지 말아야 할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 내게 주어진 자리를 사수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최선을 다해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은 ‘자리 지킴’이 전제될 때라야 가능하다.

야생 종자 전문가라 불리는 강병화 교수라는 분이 계신다. 이분은 17년간 4000여 일을 혼자 전국을 누비며 채집한 야생 들풀과 4439종에 달하는 씨앗을 모아 ‘토종들풀 종자은행’을 세운 분이다. 강 교수는 오랜 세월 산하를 누비며 들풀의 씨를 받는 동안 위대한 깨달음이 있었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이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오늘도 우리는 군이라는 생사가 오가는 치열한 현장에 있다. 청은이란 시인은 군인을 ‘수의를 입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그리고 있다. 이곳은 젊은 날 우리의 조국이 필요로 하는 신성한 곳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의 자유를 위해 충실히 우리 강토의 곳곳을 ‘자리 지킴’하는 국군 용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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