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박상희 기고] 독서 고수의 비법 노트 『쾌락독서』

입력 2019. 10. 11   16:02
업데이트 2019. 10. 13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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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상 희 
육군1사단 철갑대대·중령
박 상 희 육군1사단 철갑대대·중령

독서를 습관화하는 것이 좋다는 데엔 누구나 공감하지만, 실천 부담감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학창시절 없는 시간 쪼개서 다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누군가가 선정한 필독·추천도서, 그것도 요약본을 의무감으로 읽으며 입시를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 더 어릴 적에는 책장에 진열된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중 제목이 흥미로울 것 같은 책 몇 권을 꺼내본 적은 있지만, 완독한 책은 몇 권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배경으로 독서습관을 가지는 것이 부담으로 여겨졌는데, 『쾌락독서』(문유석 저·문학동네·2018)를 펼쳐 드는 순간 지금까지의 고민이 한 번에 해결됐다.

이 책은 교과서적이지는 않지만, 딱히 반박할 논리가 부족한 비법 노트였다. “누구 마음대로 필독이니?” “서울대 추천 인문고전 50선…, 과연 서울대 교수님 중 이 50선을 모두 읽어본 사람이 몇 분이나 될지 불경스러운 의문을 가져본다”는 저자의 말에 가슴이 뻥 뚫린다. 저자는 그런 실용성의 강박에서 벗어나 ‘어깨에 힘 빼고, 느긋하게 쓴 글’ ‘예쁘게 쓰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촌스럽지도 않은 글’ ‘간결하고, 솔직하고, 과시적이지 않은 글’을 좋아하고, 만화책이든 무협소설이든 자기에게 맞는 책을 편식해도 독서는 좋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과서같이 잘 검증되고 정돈된 느낌과는 거리가 있지만, 참고서에는 없는 우등생의 비밀 노트 같은 책이다.

저자는 책을 선정하는 그만의 방법도 공유하고 있다. 이름하여 ‘짜샤이 이론’인 이 방법은 매우 간결하고, 명쾌하면서도, 무엇보다 실용적이어서 누구나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짜샤이(중국식 김치)가 맛있는 중식당은 음식도 맛있더라. 즉, 특별할 것 없이 책 일부분만 맛보기로 30쪽 정도 읽어보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책 선정에는 개인마다 나름의 방식이 있겠지만, 저자의 방법이 가장 쉽고, 마음 편한 선택임에 크게 공감한다. 이 방법의 진정한 ‘팁’은 ‘짜샤이’를 먹어보고, 맛없으면 과감히 다른 식당으로 향해야 하는 데 있다. 세상에는 내가 못 본 책이 무수하고, 매일같이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 굳이 내게 맞지 않는 책에 미련을 갖지 말라는 고수의 조언이 함축적으로 담긴 명쾌한 이론이다.

어찌 실용적이고,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며, 엄선된 양서가 시시콜콜한 만화책이나 무협소설 같은 책보다 유용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겠냐만, 저자는 독서의 본질은 ‘즐거운 놀이’라고 표현한다. 이 시대의 ‘성공’ ‘입시’ ‘지적으로 보이기’ 등등의 특별한 목적만이 독서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서에 관해 소신껏 얘기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취향도 존중할 줄 아는 다양성과 융통성을 배울 수 있었다. 근엄한 척, 권위 있는 척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독서 말이다. 독서란 원래 ‘즐거운 놀이’이니 엄정한 규칙 따위 없이, 단지 즐겁게 읽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 바로 『쾌락독서』의 핵심 주제다. 그 비법을 전수받아 내게는 너무 소중한 ‘인생도서’를 손에 쥔 느낌이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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