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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의 경고

기사입력 2019. 10. 10   16:54 최종수정 2019. 10. 10   16:56

<62> 영화 ‘조커’: 범죄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가난을 대물림하는 사회, 약자를 무시하는 사회 
그리고 쉽게 총이 건네질 수 있는 사회라면… 

 

영화 ‘조커’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제공

영화 ‘조커’의 흥행이 심상치 않다. 개봉 첫날부터 압도적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더니 개봉 3일 차에 100만, 닷새 만에 200만을 돌파하고 다시 9일 차인 10일 3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속도라면 1000만 영화 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코믹스 히어로를 다룬 영화들이 일정한 흥행을 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라고, 괜한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할 분이 있다면, 팩트 체크를 할 필요가 있다. 분명 ‘조커’란 인물은 히어로 영화 ‘배트맨’의 원조 빌런(악당)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코믹북으로 나온 적이 없다. 영화 시나리오 자체가 새로운 창작물인 독자적 서사인 것이다. 따라서 코믹스 히어로물 시리즈라면 당연히 존재하는, 이전부터 소비됐던 콘텐츠로부터 쌓인 관심 따위는 없다.

게다가 이 영화는 흔한 히어로물에서 보이는 비현실적인 액션도 없다. 나중에 ‘조커’로 재탄생하는 주인공 아서 플렉은 왜소한 체격에 근육은커녕 갈비뼈가 앙상할 만큼 말라 비틀어진 몸을 가진 인물이다.

긴장하면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병을 갖고 있으며 그래서 자신의 꿈인 스탠드업 코미디에도 도전하지 못할 만큼 무능력한 인간이다. 10대들에게 공격당하거나 길거리에서 취객에게 얻어맞는 것이 일상이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 ‘조커’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감독 토드 필립스. 연합뉴스

물론 히어로물의 영웅들은 일상에서의 시간과는 다른 히어로의 시간이 있다. 그런 영웅들에겐 특별한 힘을 가진 가면이나 슈트 따위가 있는데, 조커에게는 그런 초인적인 힘이 애초에 없다. 그가 남과 달리 가진 것은 망상장애라는 정신질환뿐이다. 그런 조커를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보려고 하는 것일까? 게다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는 황금사자상까지 주며 이 영화를 칭찬했던 것일까?

사실 이 영화는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범죄가, 혹은 범죄자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세밀히 탐구한 영화다. 아서 플렉은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엄마를 모시고 빈부 격차가 극심한 대도시 ‘고담’의 빈민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피에로 분장을 하고 이벤트 지원을 나가 일당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데, 회사는 월급을 깎는 데 혈안이고, 그는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할 곳도 없다. 유일한 창구는 그의 정신질환을 사회적으로 관리하는 정부 지정 상담소인데, 이곳마저 복지 혜택 축소와 더불어 문을 닫고 만다.

이런 그의 손에, 어느 날 부업으로 무기밀매를 하는 직장 동료가 총을 들려준다. 일종의 강매 같은 형태로.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 ‘조커’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제공

이 영화가 미국에서 역대 최다 10월 오프닝 신기록을 세우고 뜨거운 지지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빈부 격차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어도 보편적인 복지정책에는 소극적인 대표적 국가다. 가난을 이민자 탓으로 돌리고, 자본소득을 더욱 강화하는 정책을 지금도 펼치고 있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에는 소극적이면서, 경기가 좋아진 상황에서도 가진 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는 일에는 인색하다. 심지어 2008년 금융위기 시절 중산층의 붕괴를 경험하고 나서도,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금융시장의 공적 책임을 묻는 이들은 월가의 탐욕에 분노한 시민들뿐이다. 이미 배트맨의 무대인 ‘고담’시가 뉴욕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공연한 팩트인 상황에서, 영화 ‘조커’에서 보여주는 ‘고담’과 사회 기득권자들의 모습은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영화 ‘조커’가 미국에서 R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보수적 언론은 ‘조커’를 관람한 다음 폭력사태가 날 것을 우려했고, 이에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소셜미디어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며 우려하고 있다.

범죄는 가난을 대물림하는 사회, 약자를 무시하고 그들을 조롱하는 것이 일상인 사회, 사회적 소수자들은 꿈조차 망상이 되는 사회에서 일어난다. 그들의 손에 총이 쉽게 건네질 수 있는 사회라면 더더욱.

그러니 애꿎은 영화에 책임을 돌리지 말고, 규제하고 감시해야 한다면 먼저 총기 규제부터 하고, 자본가들의 로비부터 감시해야 할 것이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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