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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범 병영칼럼] 언더도그의 자세

기사입력 2019. 10. 10   16:27 최종수정 2019. 10. 10   16:32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KBS 해설위원


1위 팀과 약체 팀의 경기를 중계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공은 둥글다.” 승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으니,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나는 그간 있었던 여러 이변을 소개하며 ‘채널 고정’을 권유한다. 하지만 대체로 10번 중 9번은 1위 팀이 흐름을 이어가고 “역시 농구는 이변이 적다”는 말을 하게 되는데, 그때도 난 점수 차에도 불구하고 이 경기를 봐야 할 이유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내가 먼저 흥이 식으면 보는 사람들도 재미없기 때문이다.

신장 차, 실력 차가 확연한 팀 간의 경기는 사실, 한 번 점수 차가 벌어지면 흐름을 뒤집기가 쉽지 않다. 잘 쫓아가며 희망 고문을 하다가도 결국에는 지쳐서 먼저 무너진다. 그래서 ‘이변’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마음가짐이다.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전원이 갖고 있어야 한다. 농구는 5명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종목이다. 1명이라도 박자가 어긋나면 안 된다. 코트 위 선수와 그들을 응원하는 벤치 멤버들이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것이 끈기가 되고 집념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6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연세대와 동국대의 경기가 그랬다. 대학농구 1위를 달리던 연세대는 이 경기만 이기면 리그 1위가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많은 이가 동국대의 승리보다는 연세대의 1위 확정에 관심을 가졌다. 결과만 말하자면 연세대가 1위를 확정 짓고 자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맞대결 전적이 2승12패에 불과한 동국대가 상대 팀 홈코트에서 80-74로 이긴 것이다. 2717일 만의 승리였다. 군 복무를 두 번 하고도 남을 긴 시간이다. 동국대의 비결도 ‘마음가짐’에 있었다. 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둘째로 중요한 건 준비다. 준비 없이 ‘이길 수 있다’는 마음만 가져선 곤란하다. 요즘 말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강팀을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각자가 정확히 역할 분담을 했고, 그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튀어보려고 나 홀로 플레이를 한다거나,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부딪치길 꺼리면 팀은 무너지고 신뢰는 깨진다. 이날 동국대는 톱니바퀴 돌아가듯 모든 것이 일치했다.

그러다 보니 셋째로 중요한 집중력이 생겼다. 동국대는 어떤 상황에서든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종료 버저가 울리자 동국대 선수들은 우승한 것처럼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인터뷰하니 ‘내가 잘했다’는 말보다는 ‘모두가 잘했다’며 서로 공을 돌리기 바빴다. 아마도 이 기억은 동국대가 ‘원 팀’으로 거듭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마음가짐과 자신감 그리고 집중력. 나는 이 세 가지 조건이 비단 스포츠의 ‘언더도그(underdog)’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20대도 사회에 도전할 때는 대부분 언더도그로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일에 ‘절대’라는 건 없다는 것을. 언더도그 심리가 있다면 그것도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부족한 것도 있지만 채울 공간이 더 많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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