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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희 기고] 창설 67주년 맞은 향군의 어제와 오늘

기사입력 2019. 10. 07   16:06 최종수정 2019. 10. 07   16:47

안찬희 향군홍보실장 겸 대변인

재향군인회(이하 향군)가 올해로 창설 67주년을 맞았다. 향군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2월 1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국방부 병무국(지금의 동원국) 예하 단체로 탄생했다. 창설 당시 회원은 제대군인 30만 명으로 출발했다. 그 후 몇 차례 명칭 변경과 개편을 거쳤으며 1960년 5월 4일 사단법인 ‘대한민국재향군인회’로 개칭했다.

또 향군은 1961년 5월 8일 세계재향군인연맹(WVF)에 가입, 1962년 6월 한 달을 세계재향군인의 달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대외 위상을 크게 높였다. 향군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가 1965년 6월 8일 국무회의를 열어 매년 5월 8일을 ‘재향군인의 날’로 제정함으로써 향군은 자체적으로 다양하게 행사를 해왔다. 그러나 5월 8일은 가정의 달, 어버이날, 농번기와 중복되어 향군 건의에 따라 정부가 2002년, 10월 8일로 개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향군 조직은 13개 시·도회와 223개 시·군·구회, 3200개의 읍·면·동회 등 전국 조직과 22개 해외지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1000만 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국내 최고·최대의 안보단체로 발전했다.

향군은 그동안 안보단체로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의 청와대 침투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향군을 주축으로 한 200만 향토예비군을 편성하여 1968년 4월 1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창설식을 거행했다.

또 1969년 닉슨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 2만 명을 철수시키는 등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여 한반도 안보정세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에 향군은 전국적인 ‘총력안보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은 1977년 1월에 취임한 미국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중지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외에도 국가안보의 제2보루로서 국민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국민적인 안보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범국민 안보공감 캠페인’과 ‘대학생 휴전선 및 6·25전적지 답사’ 등을 매년 지속적으로 전개해 오고 있다. 또 향군은 2017년 10월 8일 창설 65주년을 맞아 향군의 정체성은 안보단체임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안보활동 기조와 지침을 만들어 기준에 맞는 안보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향군은 최근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 남북관계 등 한반도 안보 상황에 유연성 있게 대처하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자유민주체제를 수호하며, 튼튼한 국방과 한미동맹을 지원하는 등 국가의 안보정책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창설 67주년을 맞은 향군은 오늘도 국내 최대의 안보단체로서 ‘안보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일념으로 1000만 회원이 하나 되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 신뢰받는 향군으로 거듭나기 위해 강도 높은 변화와 혁신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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