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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해군’ 함정과 함께한 뜻깊은 17개월

윤병노 기사입력 2019. 10. 04   18:04 최종수정 2019. 10. 06   13:48

<끝> 연재를 마치며


해군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함. 국방일보DB


국방일보와 해군 공동 기획으로 연재된 ‘대한민국 군함 이야기’가 지난달 30일 자(字) 손원일급·도산안창호급 잠수함(60회)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18년 4월 12일 자 ‘충무공정’을 시작으로 우리 해군의 함정 획득사(史)를 소개하는 데 17개월이 걸렸다. 돌아보면 ‘단순 나열식’ ‘수박 겉 핥기’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보다는 뿌듯함과 후련함이 더 크다. 특히 각종 자료를 수집·정리하면서 변변한 군함 한 척 없었던 우리 해군이 ‘대양해군’으로 발전하기까지의 피나는 노력을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더불어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조함(造艦·군함을 설계해 만듦) 역사, 전장에서의 활약상, 함정 승조원들의 뜨거운 전우애는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동안 자료 수집에 도움을 준 해군본부·해군역사기록관리단 관계자, 게재될 때마다 전화를 걸어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현역·예비역 ‘해군 전우’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한다.

윤병노 기자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정보·재미 갖춘 유익한 연재… 6·25전쟁 중 PT급 어뢰정 인수 사실은 흥미로웠죠

 


1947년 2월 7일 해군사관학교 1기 졸업식과 함께 충무공정 명명식이 열렸다. 충무공정은 해군 조함창에서 밤낮으로 구슬땀을 흘린 끝에 7개월 만에 건조한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군함이다. 충무공정 선체번호는 ‘313’이 부여됐다.

충무공정은 원래 1944년 9월 일본이 운영하던 진해 공창에서 착공됐다. 어뢰발사기 4문과 5톤짜리 기중기를 갖춘, 비행기 구조 겸 어뢰 발사 함정으로 설계됐지만 일본의 패망으로 제작이 중단된 후 방치돼 있었다. 이를 조함창이 1946년 7월 다시 건조에 착수해 완성한 것이다. 첫 국산 함정의 탄생은 1945년 11월 11일 대한민국 해군이 창설된 지 1년3개월여 만에 이뤄진 일이다. 충무공정은 1947년 6월 마산 수로에서 실시한 첫 편대 훈련과 1947년 8월 광복 2주년 기념 해상 편대훈련에 기함으로 참가해 시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을 아는 사람들은 많아도 충무공정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오는 11월 11일 창군 74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 해군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해 왔지만 어떤 역경을 딛고 발전해 왔는지에 대해선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4월부터 국방일보에 매주 게재돼 9월 30일 60회로 마무리된 ‘대한민국 군함 이야기’는 정보와 재미를 함께 갖춘 훌륭한 연재였다. 해군과 함정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도 이 연재에 흠뻑 빠져들었다.

우리 해군이 6·25전쟁 중이던 1952년 PT급 고속어뢰정 4척을 인수해 실전에 투입했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PT급 어뢰정은 2차 대전 때 케네디 미 대통령이 근무했던 함정으로 유명하다. 해군은 이 함정에서 어뢰를 제거하고 5인치 로켓포 8문 등을 달아 적 해안포대, 요새, 동해안 기차 공격 등에 활용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 해군은 이지스함 3척을 비롯, 대형 수송함(상륙함) 2척, 3000톤급 장보고 3급 잠수함 1척과 1800톤급 214급 잠수함 9척 등 첨단 함정들을 운용하고 있거나 진수시켰다. 2030년대 초까지는 수직이착륙 스텔스기를 탑재하는 3만톤급 한국형 경항모(대형수송함-Ⅱ)도 확보할 예정이다. 일반 국민은 물론 상당수 군인들도 현재와 미래의 이러한 ‘화려한’ 모습에 주목하면서 과거의 역경과 시행착오 등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군함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대한민국 해군 건함사를 설득력 있게 잘 소개했다고 본다. 앞으로도 이런 유익하고 의미 있는 연재물들이 국방일보에 계속 실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
고속정부터 잠수함까지 모든 군함에 대한 궁금증 명확하게 풀어줘


 
2018년 4월부터 2019년 9월까지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 해군 군함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고속정에서부터 잠수함까지 거의 모든 군함에 대한 궁금증을 명확하게 풀어주는 국방일보·해군 공동 기획 연재 ‘대한민국 군함 이야기’가 60회로 아쉽게 마무리됐다.

‘군함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와 함께 변변한 군함 한 척 없었던 대한민국 해군이 최첨단 이지스구축함(DDG)을 운영하고, 이역만리 아덴만 해역에 전투함을 파병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대양해군으로 성장한 모습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군함은 홋줄에서부터 함포·미사일·어뢰, 그리고 각종 첨단 전자장비까지 유·무형의 유산이 통합된 대형 복합무기체계다. 이러한 군함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획연재는 군사 전문 언론기관인 국방일보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또 해군 함정에 대한 군사적 식견이 탁월한 국방일보 기자, 현장 실무경험을 갖춘 국내 군·산·학·연 등 각 기관의 최고 전문가가 있었기에 60회라는 방대한 분량의 연재를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군함 이야기’가 기획연재로 끝나지 않고 단행본으로도 발간되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은 1990년대 말 이후 한국형 구축함(DDH), 독도함(LPH), 이지스 구축함, 209·214급 잠수함 등 다양한 건조 노하우를 축적해 최첨단 군함을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일부 무기도입사업 비리로 국민의 불신을 사고 방위산업 전반이 위축되는 비극적 상황을 맞기도 했다. 군함 이야기가 국방일보 독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져 방위산업비리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해군 군함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져 우리 해군 함정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하는 데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연재를 위한 집필진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군함 이야기의 여정에 찬사를 보낸다.


임성채 해군역사기록관리단 군사편찬과장
‘60회 완주’ 국방일보·해군본부의 헌신적 노력과 사명감 덕분

 



장장 17개월에 걸쳐 국방일보에 연재해 온 ‘대한민국 군함 이야기’가 지난 9월 30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해 4월 12일자 우리 해군이 손수 만든 충무공정(PG-313)에 대한 첫 이야기로 시작해 2019년 9월 30일 손원일급 잠수함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 국방일보 기자와 해군본부 공보정훈실 담당자가 해군역사기록관리단을 방문해 대한민국 군함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 형식으로 게재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하면서 필자에게 자문을 구했다. 나 역시 이에 대한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절감하고 있었지만, 자료 수집에 시간이 꽤 걸리는 관계로 끝까지 연재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 긍정적으로 호응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국방홍보원과 해군본부 공보정훈실에서 강한 의지를 보였고, 비록 결과물이 미흡하더라도 이를 토대로 차후에 더 보완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 일단 일을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료 제공과 전문가 코너에 해설을 수록하는 방법으로 동참하고 지원하기로 했다.

해군의 역사는 곧 군함의 역사다. 바다에서 활동하는 해군에게는 무엇보다 군함이 있어야 하는데, 대한민국 해군은 1945년 11월 11일 창설 시에는 군함이 한 척도 없었다. 그래서 해군 장병들은 낡고 무장해제된 상륙정(LCI), 일본 소해정(JMS), 미국 소해정(YMS) 등을 도입해 가면서 한편으로 포가 달린 군함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장병들은 “사랑하는 조국이여, 우리에게 배를 주시오. 바다에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범국민적 성금운동을 벌여 모은 돈으로 첫 전투함인 백두산함을 구매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 해군은 창군 이후 첫 번째 군함인 서울정(LC)에서부터 불과 70여 년 만에 오늘날의 최첨단 군함인 이지스 구축함까지 운용하게 됐다. 그동안 운용한 군함의 종류도 다양했다. 1960년대까지는 외국으로부터 군함을 무상 또는 대여 형태로 도입했으며, 1970년대부터는 국내 기술진에 의해 독자적으로 군함들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야심찬 의욕으로 시작된 연재는 겉으로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매주 1회 게재는 역시 자료 부족과 시간과의 싸움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설사 자료가 있더라도 내용들을 검증하는 것도 큰 과제였다. 그렇지만 가능한 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 국방일보와 해군본부 공보정훈실, 해군역사기록관리단에서는 수록될 내용들을 사전에 상호 확인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쉬운 점은 지면 부족으로 유형별 군함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고, 각 군함의 활약과 업적들이 수록되지 못했으며 또한 숨겨진 이야기들도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만 해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며, 마지막 60회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국방일보 기자와 해군본부 공보정훈실 담당자의 사명감과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라고 본다. 이 일은 큰 목표를 위한 첫 발걸음으로서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연재한 군함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차후 작업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해군 장병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미국 해군의 군함에 대한 역사가 인터넷에 게시돼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럽다. 우리 해군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 해군처럼 모든 군함을 대상으로 각 군함의 건조부터 퇴역까지의 역사를 인터넷에 올려 모든 국민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하려면 각 군함의 항박일지, 부대계보, 작전경과보고서 등으로부터 주요 역사를 발췌해 편집해야 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선진해군으로 도약하려면 각각의 군함은 물론 우리 해군의 역사도 정확하고 세밀하게 정리해야 할 것이다. 사람 개개인이 살아온 역사가 있듯이 각각의 군함에도 역사가 있다. 이 역사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권진구 소령 해군본부 공보정훈실
70여 년간 우리 바다 지켜온 함정들 조명… 모든 이가 공유하는 추억 불러온 셈



 
“끼이익” 귓가에 거친 쇳소리가 들린다. 파도가 함(艦)의 우현을 때렸나보다. 배가 뒤틀리는 것 같은 신음 소리. 내가 임관 후 처음 탔던 강릉함(PCC)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넓은 바다로 나가면 힘들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강릉함은 국산 초계함의 시초로 선령이 25년이나 됐다. 동해급 초계함 4번함으로 1983년 건조돼 수십 년간 한반도 주변 해역을 누벼왔으니 지칠 만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배를 타고 내릴 때 갑판을 어루만지며 ‘감사하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물론 그 강릉함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이후 나는 공보정훈장교로 전과했다. 함정 근무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강릉함은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처음 배에 올랐을 때 진득하게 배어 나왔던 기름과 페인트 향기. 미로 같은 좁은 통로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나의 사무실이자 침실. 컴컴한 어둠으로 가라앉은 전투정보실에서 흘러나왔던 레이더 ‘핑’ 소리. 바다의 짠맛이 은은히 퍼졌던 좁은 함교. 나는 지금도 눈을 감고 그때를 생각하면 강릉함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한 번은 금강산함(PC-702) 인수요원으로 활약한 박찬극(해사3기, 1976년 준장 예편) 예비역 제독을 국방일보와 함께 만나 뵌 적이 있었다. 군함 이야기를 연재하던 지난해였다. 금강산함을 미국에서 인수해 태평양을 건너온 이야기를 듣는 자리, 당시 93세 노병의 눈빛은 젊은 항해사와 다름이 없었다. 의자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며 하셨던 말은 아직도 내 귓가에 선하다. “창설 초기 우리 군함에는 레이더조차 없었습니다. 하늘의 별이 태평양을 건너는 나침반 역할을 했습니다.” 박 예비역 제독의 기억에는 아직 금강산함이 힘차게 항해하고 있었다.

한강에 전시돼 있는 서울함도 마찬가지다. 서울함은 국산 호위함 2번함으로 활약하다 지난 2015년 퇴역했다. 이후 서울함은 해군과 서울시의 협의를 거쳐 한강 변 서울함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전시관으로 바뀌면서 핵심 장비는 모두 떼어내 함(艦)의 역할은 못 하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는 아직 움직이고 있나 보다. 얼마 전 서울함에서 복무하다 전역한 분이 서울함 공원을 둘러보다 외친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대공 레이더가 돌아가고 있다.”

이처럼 한번쯤 해군에서 함상생활을 했다면, 누구나 함(艦)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해군과 국방일보는 그 기억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대한민국 군함 이야기’다. 해군의 함정은 적과 싸우는 무기체계인 동시에 하나의 단위부대다. 그래서 해군은 ‘나의 집은 배란다’라고도 말한다. 단순한 부대를 넘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함정, 해군과 국방일보는 지난 70여 년간 우리 바다를 지켜왔던 모든 종류의 함정을 60회의 연재로 부활시켰다. 이는 많은 이가 공유하는 추억을 불러오는 작업이었다. 지난해 4월부터 매주 1회씩, 마감시한에 쫓겨 가며 해군의 고문서를 찾아 정리하고 아름다운 기획기사로 만들어간 국방일보를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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