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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람 병영칼럼] 하지 않음에 대한 결정

기사입력 2019. 09. 26   16:52 최종수정 2019. 09. 26   16:55

한보람 국방FM 작가


포스터가 붙을 즈음이면 접수는 이미 종료됐다는 말이 도는 대회가 있다. 마라토너들 사이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기로 유명한 대회로 불리는 ‘국방일보 전우마라톤’ 대회다. 올해는 임시정부 100주년의 해를 맞아 특별히 준비됐고 덕분에 참가 신청은 접수 시작 이틀 만에 마감됐다.

지난 9월 7일 마라톤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 이목을 집중시키는 기상청 발표가 계속됐다. 제13호 태풍 ‘링링’이 주말 동안 한반도를 관통할 거란 내용이었다. 전우마라톤대회 사무국은 9월 3일 회의를 열었고, 대회 하루 전날인 6일 오전 10시, 결국 대회 취소 소식을 알렸다. 아쉽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오랜 날 동안 준비를 했는데… 취소라니. 하지만 초강력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데 어떻게 대회를 강행할 수 있겠나. 수많은 사람의 안전은 어쩌고. 많은 이가 허탈해했고 섭섭함과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 역시 오랜만에 한강을 달릴 마음에 들떠 있었기에 취소 소식에 매우 안타까웠다. 하지만 사무국의 한숨만 했을까.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커튼을 올릴 순간이 코앞인데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무언가를 접어야 한다니… 정말이지 싫었을 것 같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안전을 생각해 사무국에서는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고, 지체 없이 그 결정을 공개했다.

방송 일을 하면서 힘든 것 중 하나는 섭외 전화를 한 뒤 상대의 답변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물론 어느 정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줄은 알지만, 마냥 기다리는 동안 작가들의 심신은 꽤 지치기 때문이다. 섭외하며 가장 나쁜 상황은 답이 없을 때다. 그렇다면 아래 두 경우는 어떨까?

“작가님, 저희 진행할게요.”

좋다! 이런 답변을 받으면 일단 고맙다. 우리의 뜻이 잘 전달됐구나, 이제 진행하면 되겠구나 싶어 마음도 가벼워진다. 하지만 모두가 오케이를 외칠 수는 없다.

“어쩌죠, 이번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상대가 이렇게 답할 때 작가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 실망감에 휩싸여 어둠의 기운을 마구 쏟아낼까? 그렇지 않다. 처음엔 조금 아쉽지만, 상대가 어렵다고 하는 데엔 대부분 그만한 이유가 있기에 이해한다. 그리고 차선책을 찾아 고민하고 행동한다. 이건 방송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활에서 만나는 대부분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언가를 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어렵지만 ‘하지 않는다’ 혹은 ‘못 하게 됐다’는 결정을 내리는 건 더욱 어렵다. 또 할 수 없음이란 말이 포기처럼 비칠까 봐 어떻게든 해내려고 애쓰며 답을 미루는 때도 있다. 맞다, 여러 이유로 대부분 사람은 부정적인 결정에 대해서는 답을 늦추고 미적거리는 것 같다. 그만큼 그 결정은 힘든 결정이다.

그래서 오늘은 하지 않음, 할 수 없음 혹은 다음 기회에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모든 분께 그것 또한 최선이었다는 누군가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 이 순간 문득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이룬 것만큼 이루지 못한 것도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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