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한복을 좋아하고 한국의 춤과 소리를 좋아한 재일교포 4세 권리세...너무 빨리 꺼진… 그래서 더 아쉬운

입력 2019. 09. 19   16:21
업데이트 2019. 09. 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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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9월이면 생각나는 이름, 권리세


   


풍성한 한가위에 대한 기대감이 크면 클수록, 9월의 첫머리마다 생각나는 이름이 더욱 선명해 가슴이 저리다. 권리세. 재일교포 4세. 1991년 8월 16일생. 그가 우리 곁을 떠날 때 나이는 고작 스물셋. 아이유가 비로소 어른이 되었음을 선언했던 그 나이에 리세는 참혹한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다. 2014년 9월 7일 오전 10시10분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릴 때부터 설과 한가위에 행복해하던 한국인이었다. 한복을 좋아했고, 한국의 춤과 한국의 소리를 좋아했고, 한국의 문화라면 모든 것이 다 좋았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 특히 한국 무용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K-팝은 그가 사랑한 한국의 다양한 문화 중에 한 영역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차별과 혐오를 뚫고 꿋꿋이 재일 조선학교를 고집했다. 그가 우리 학교라고 부르며 사랑했던 곳은 후쿠시마 조선 초중급학교였고, 이 학교는 이 순간에도 아베의 탄압을 받는 학교다.

한국을 너무도 사랑했던 그는 한국에서 가수가 되고 싶었다. 먼저 미스코리아 대회를 통해 얼굴을 알린 그는 2010년 MBC의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이하 ‘위탄’)에 출연한다. TOP 12 안에는 진입했지만, 엄청난 악성 댓글과 반감 때문에 TOP 10 진입에는 실패한다. 그 악성 댓글의 시작은 그가 한국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출발했다. 재일교포 4세로 조선학교를 고집하며 절대 한국어를 잊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 과정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그저 한국말이 어눌한 일본인이 교포 특혜를 받아서 탈락을 이겨낸다는 ‘무임승차’론이 그를 잔인하게 짓밟았다.

이후 ‘위탄’에 같이 출연한 동료인 데이비드 오와 ‘우리 결혼했어요’에 가상 부부로 출연하면서 다시금 인기몰이하자 이제는 난데없이 ‘김정일 생일 축하 공연’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초등학교 시절, 탁월한 한국 무용 덕분에 그는 여러 군데 공연을 다닐 수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이 북한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온 가족이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그저 북한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만 떠돌며 리세는 5인조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로 데뷔한 이후에도 심한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래도 그는, ‘위탄’에서 그에게 끝까지 지지를 보냈던 가수 이은미의 말대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근성과 끈기”를 보이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 냈다. 그가 소속된 레이디스 코드는 2013년에 데뷔하면서부터 주목을 받았고, 9월에 두 번째 미니앨범부터는 본인들 스스로 프로듀싱을 해낼 만큼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데뷔를 위해 준비한 시간이 1년 남짓이었고, 활동 기간이 채 7개월밖에 안 되는 비교적 작은 기획사의 걸그룹이 이렇게 짧은 기간에 성장했다는 것은 본인들의 피나는 노력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2013년 신인상을 휩쓸다시피 했고, 2014년부터는 가장 돋보이는 신인 걸그룹으로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리게 됐다.
스물셋 나이에 팬들 곁을 떠난 비운의 스타 권리세.                 국방일보 DB
스물셋 나이에 팬들 곁을 떠난 비운의 스타 권리세. 국방일보 DB

그리고 그들이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 예고된 재앙이 닥쳤다. 2014년 9월 3일 새벽 대구에서 스케줄을 마치고 차를 이용해 이동하던 중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향 신갈분기점에서 레이디스 코드 멤버들이 타고 있던 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됐다.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가 탄 승합차가 폭우에 전복사고를 내 권리세 등 두 멤버가 안타깝게 생명을 잃었다. 사진은 사고 당시 YTN뉴스 화면 갈무리.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가 탄 승합차가 폭우에 전복사고를 내 권리세 등 두 멤버가 안타깝게 생명을 잃었다. 사진은 사고 당시 YTN뉴스 화면 갈무리.

당시 날씨 상황은 폭우로 인해 인근인 전대리에서는 바닥에 고인 물이 발목까지 잠길 정도였으며, 남성 기준으로 접었을 때 허리까지 오는 대형 우산을 쓰고 있어도 입고 있던 바지가 허벅지까지 젖는 상황이었다. 전대로를 통해 마성나들목까지 이동하는 도중에는 안개등과 상향등을 켜고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아 30㎞/h 이하로 서행하는 수준이었으며, 마성나들목을 지나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했을 때는 도로 위에 고여 흐르는 빗물 때문에 속도를 내는 것조차 불가능해 차량 대부분이 비상등을 켜고 60㎞/h로 저속 이동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마성나들목부터 신갈분기점까지는 주변의 동백·구성 신도시 때문에 가로등보다 높은 크기의 소음 차단막이 설치돼 있는데 이는 폭우와 겹쳐 시야 확보를 어렵게 했다. 이런 악천후 속에서 당시 매니저는 12인승 그랜드 스타렉스 차로 시속 130㎞ 이상을 밟고 있었다.

사고 직후 은비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DOA’, 즉 도착 당시 이미 사망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평소 은비를 꼭 지켜주고 싶다던 리세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에 사고 4일 만인 9월 7일 사망하고 말았다. 그렇게 사랑했던 대한민국에서, 그토록 원했던 가수의 꿈이 제대로 피워지기도 전에, 그는 눈을 감았다. 죽고 나서야 그들의 곡이 음원 순위 1위에 올랐고, 죽고 나서야 악성 댓글들이 사라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 “사람이 먼저”라는 깨달음을 얻게 했다. 하지만 리세의 참사 후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연예계에는 살인적인 혐오문화와 살인적인 스케줄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리세의 죽음을 겪고도 우리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더욱 9월만 되면 리세를 기억한다. 아니, 기억해야만 한다. 혐한(嫌韓)이 칼춤을 추는 이 시국이라서 더욱.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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