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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 맞은 모습 그대로… 과거사 반성의 흔적 ‘평화의 경고비’ 되다

기사입력 2019. 09. 11   17:19 최종수정 2019. 09. 11   17:24

<12>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獨 첫 황제 빌헬름 1세 기념해 건설
2차 세계대전, 英 공군 베를린 공습
113m 종탑, 폭격으로 71m만 남아
종전 후 허물고 새로 짓기로 했으나
“전쟁 참상 알리자” 그대로 보존키로

카이저 빌헬름 2세는 독일 통일의 업적을 이룬 자신의 할아버지 카이저 빌헬름 1세(1797~1888)를 기념하기 위해 빌헬름 기념교회를 지었다. 부서진 상태로 보존돼 ‘깨진 이’와 ‘썩은 이’라고 불린다. 독일인들은 이 교회를 통해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독일은 제1·2차 세계대전과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다. 독일에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으로 다시는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긴 건축물이 나라 곳곳에 있다. 그들은 트라우마를 유발하거나 외관상 보기 좋지 않은 흉물 같은 건축물이라도 역사의 상처로 고스란히 보존한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Kaiser Wilhelm Gedachtniskirche)가 대표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됐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전하기 위해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 교회 내부는 폭격 전 사진을 비롯해 전쟁과 관련된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어 전 세계에서 전쟁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평화주의자들은 이곳에서 시위를 벌인다.  



신로마네스크 양식 적용…1895년 완공

독일 최대의 번화가인 베를린 브라이트샤이트 광장 중앙의 쿠담 거리 초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이다. 독일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제1차 세계대전의 주역이었던 카이저 빌헬름 2세(1859~1941)가 독일 통일의 위업을 이룬 자신의 할아버지 카이저 빌헬름 1세(1797~1888)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 교회 외관 디자인은 공모를 통해 바우 아카데미 소속의 프란츠 슈베츠텐의 신로마네스크 양식을 적용한 디자인이 채택됐는데 2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응회암(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암석)으로 지어진 교회 본당과 113m 높이의 종탑을 세웠다. 1891년 3월 22일에 착공해 1895년 9월 1일 완공됐다.

카이저 빌헬름 1세는 프로이센의 왕이자 독일제국 초대 황제에 오른 인물로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수상으로 등용해 병제 개혁을 단행하는 등 독일을 유럽 제일의 강대국으로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1864년 덴마크와의 전쟁에 승리하고 1866년 오스트리아를 격파해 북독일 연방을 조직했으며 1870~1871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뒀다.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제국 최초의 황제로 즉위했다.

영국 공군의 폭격이 있기 이전인 1939년 촬영된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의 모습. 가장 높은 113m 높이의 첨탑은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사진=www.paragsankhe.com

1943년 11월 영국 공군의 공습으로 파괴

영국 공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독일 공군의 영국 대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베를린 폭격을 가했다. 베를린은 1918년 기준 374만8148명이 살던 독일 최대 도시로 연합군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됐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베를린은 영국과 미국, 소련의 공군으로부터 300회가 넘는 공습을 받았다.

영국 공군은 1943년 11월부터 1944년 3월까지 약 5개월간 ‘베를린 전투(Battle of Berlin)’로 베를린에 16번의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그중에서도 아서 해리스 장군이 공군 폭격 사령부를 통해 명령한 공습은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를 파괴한 것은 물론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이들의 목표는 독일의 심장부 폭격으로 독일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4000여 명의 베를린 시민들이 사망했으며 1만7000여 명이 부상했다. 1944년부터 1945년까지는 영국과 미국 공군이 베를린에 공습을 펼쳤고 전쟁 말에는 소련 공군이 참가했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는 1943년 11월 22일부터 23일까지 벌어진 영국 공군의 공습으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됐다. 첨탑 일부와 예배당 입구의 중앙 현관만 남긴 채 반파됐다. 특히 113m의 꼭대기 종탑 부분은 폭파돼 71m만 남았고, 교회 내부 천장의 모자이크 장식도 폭격으로 벗겨지거나 지워졌다.

1891년 에밀 훈텐이 그린 카이저 빌헬름 1세의 초상화. 
 사진=www.hermann-historica.de

제2차 대전 후 전쟁을 경고하는 곳으로

종전 후 1956년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재단은 교회를 다시 짓기로 하고 공모전을 진행했다. 독일의 유명 건축가 에곤 아이어만의 설계가 채택됐는데 그는 붕괴 위험을 안고 있는 종탑을 허물고 새로 짓는 안을 내놨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컸다. 이에 교회 재단은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의미로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키로 했다.

1959년부터 1963년까지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를 둘러싸는 4개의 신관이 세워졌고, 육각형의 종탑과 팔각형의 신예배당은 독특한 벌집 모양의 외관으로 설계됐다. 새 교회는 지름 35m, 높이 20.5m로 1000명 이상의 신도를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파손된 첨탑을 그대로 유지한 빌헬름 기념교회의 1층에 기념관이 지어졌으며 폭격 전 교회의 모습과 주변 건물을 그대로 재현한 모형을 비롯해 건물의 옛 모습과 파괴된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옛 교회는 새 교회 건물과 함께 독일의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후 2007년 건물 노후화와 그 아래를 지나는 지하철의 영향으로 무너질 위기를 고발하는 언론의 지적으로 빌헬름 기념교회를 위한 대대적인 모금 캠페인이 진행됐다. 베를린 시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모은 420만 유로(한화 55억3100만 원)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2년 반 동안의 대규모 보수 공사가 이뤄졌다.

  
‘깨진 이’ 또는 ‘썩은 이’ 애칭으로

현재 베를린 사람들은 교회를 간단하게 ‘KWG(Kaiser-Wilhelm-Gedachtniskirche의 이니셜)’라고 하거나 생긴 모양을 빗대 ‘깨진 이’ 또는 ‘썩은 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기념교회(Gedachtniskirche)’를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 속 게데히트니스(Gedachtnis)의 의미는 ‘기억’이다. 오늘날 빌헬름 기념교회가 기억하는 것은 빌헬름 1세가 아니다. 전쟁이 끝난 후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기억하는 것이다. 교회는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평화의 경고비’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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