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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이야기] 돌고래,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 해군 잠수함 발전 ‘초석’

신인호

입력 2019. 09. 11   16:22
업데이트 2019. 09. 1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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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돌고래급 잠수정(SSM)


獨과 개발 협력 무산되자 독자 개발 선회 

1976년 ‘소형 잠수함 돌고래’ 사업 승인

3척 모두 퇴역, 053함은 서울함공원 전시 
    

잠수함은 대단히 강력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방어 무기가 아닌 공격 무기로 분류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잠수함은 국가 해군 전력의 서열 1번으로 함대 세력 목록(fleet list)에 항공모함·전함·순양함 등보다 앞서 등재된다. 이는 잠수함이 전략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를 말해 준다. 우리 해군은 다른 함정과는 달리 비록 잠수정급의 소형이지만 잠수함정을 독자적인 국내 기술력으로 개발, 운용했다. 돌고래급 잠수정(소형 잠수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83년 4월 2일 진수식 때의 돌고래 모습.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1983년 4월 2일 진수식 때의 돌고래 모습.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잠수함 위협에는 잠수함으로 대응 


북한은 6·25전쟁을 치르면서 잠수함의 가치와 역할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북한은 전쟁 중 미군이 일본에서 생산한 약 5800톤에 이르는 각종 군수물자를 부산항으로 수송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북한은 전후(戰後) 분석에서 그 까닭이 그들의 약한 해군력, 특히 잠수함을 단 1척도 보유하지 못한 데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해군 전력을 복구하면서 1960년대 초 소련으로부터 1800톤급의 위스키(W)급 잠수함 4척을 도입,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어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중국으로부터 1300톤대의 로미오(R)급 잠수함을 도입하고 건조기술까지 이전받아 1976년부터 매년 1~2척의 로미오급 잠수함을 자체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우리 해군이 북한 잠수함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공격 잠수함을 확보하는 것이었으나 1970년대 초 고속정을 건조하기도 힘든 국내 여건에서 잠수함을 획득하기란 용이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잠수함 획득 계획을 추진하기에 앞서 먼저 필요한 인력 양성에 나섰다. 즉 해군은 외국으로부터 잠수함 관련 기술을 습득하고자 1차로 김정식·김영수 중령, 김흥열 대위(이상 당시 계급)를 독일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원 잠수함과정에 입학시켰다. 기간은 1974년 1월부터 2년간이었다.

해군은 이와 때를 같이해 독일 IKL사(社)가 설계하고 영국 비커스(Vickers) 조선소에서 건조, 이스라엘 해군에 수출한 500톤급 프로젝트(Project) 540 잠수함이 북한의 로미오급 잠수함에 대응할 수 있는 잠수함이라고 판단, 프로젝트 540 잠수함 구매 계획을 적극 추진했다.


그러다 1974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이 프로젝트 540급 잠수함 5척을 건조하는 사업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율곡 5인위원회’도 통과했지만 경제가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예산을 마련할 길이 없어 ‘취소’나 다름없는 사업 유보가 됐다. 또 다른 소형 잠수함을 획득하는 방향으로도 추진해보았으나 이번에는 해군의 요구 성능을 제대로 만족시킬 수 있는 잠수정이 없었다.

항해하고 있는 돌고래 053함.  해군잠수함사령부 제공
항해하고 있는 돌고래 053함. 해군잠수함사령부 제공


1976년 국방과학기술심의회서 개발사업 승인

잠수함 건조가 연구개발(R&D) 쪽에서 거론된 것은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진해연구소가 창설되면서부터다. 해군은 곧바로 독일 IKL사 프로젝트(Project) 70의 기본성능을 요구성능으로 하면서 무장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소형 잠수함 연구개발을 1977년부터 신규 착수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때 해군이 반영시킨 예산은 시작정(試作艇) 건조비가 제외된 연구비만으로 총 6억 원이었으며 개발 소요 기간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5년간이었다.

1976년 11월 제4차 국방과학기술심의회에서 ‘소형 잠수함 돌고래’의 개발사업이 승인됐다. 하지만 국내 잠수함 관련 기술은 독일에서 잠수함 기술을 교육받은 요원을 중심으로 국방과학연구소가 소형 잠수함을 개념설계할 수 있는 정도였다. 충분한 기술력을 지닌 외국업체와의 협력이 검토됐다. 개념설계 기간 중인 1978년 2월, 사업책임자 등이 독일 IKL사를 방문해 우리가 설계한 개념 설계에 맞도록 프로젝트 70 잠수함을 한국형화(化)하는 데 필요한 기술지원 및 협조에 관해 협의했으나 결국 무산됐고, 결과적으로 ‘돌고래 사업’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순수 국내 기술진에 의해 설계하고 건조하는 길을 걷게 됐다.

그러나 1977년 개념설계 착수 당시 1981년까지 반영된 돌고래 개발 총 예산은 시작정 건조비가 제외된 연구비만으로 총 6억 원이었는데 이것은 ‘잠수함을 만든다고 하니 이 예산으로 관련 연구나 한번 해 보라’는 정도의 관심이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 돌고래를 건조하기 위한 사업은 시작됐다. 1981년 6월 20일, 코리아타코마 조선소 특수선공장에서 돌고래 기공식이 열렸고, 이어 1983년 4월 진수식을 했으며, 돌고래의 최초 입수(入水), 최초 잠항, 최초 어뢰 발사 등의 모든 시험을 무사히 치러내고 조종훈련용 시뮬레이터까지 개발해냈다.


해군시험평가단은 1983년 11월 1일부터 1984년 7월 5일까지 8개월여에 걸쳐 수행한 시험평가에서 ‘매우 양호’ 판정을 내렸으며 1984년 12월 29일 한국 함대에 인계, 즉 양여(국방과학연구소 예산으로 사업이 진행됐기 때문)돼 두 달 뒤인 1985년 3월 1일 취역했다. 함명도 이때 정식으로 ‘돌고래 051함’으로 명명됐다.

우리 고유의 소형 잠수함 돌고래 개발 사업은 이렇게 만 7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1번함의 시험평가 결과에서 나타난 미비점을 반영해 압력선체와 추진장치·무장장치 등 전 분야에 걸쳐 재계산하고 설계·보완을 수행해 그로부터 6년 뒤인 1990년과 1991년 1번함보다 성능 면에서 월등히 우수한 ‘형보다 나은 아우’ 2척을 취역시켰다. 2차함은 압력선체의 직경을 20cm, 길이를 3m 늘려서 발전기를 추가 탑재하고 무장 탑재 능력을 보완하는 등 작전성능을 향상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돌고래급은 규모로 볼 때 잠수정으로 분류되지만 운용상 ‘소령’이 지휘하는 ‘함’으로서 각종 임무를 수행했고, 대외적으로는 공개된 바가 거의 없었다. 현재는 모두 퇴역해 01함과 02함은 잠수함사령부 내에 전시 또는 보관돼 있으며 03함은 서울 한강의 서울함공원에 전시, 공개되고 있다.


잠수함 설계·운용 인력·기술 자체 확보

한국 고유 모델 소형 잠수함 돌고래의 개발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돌고래 국내 개발은 우선 당시 성능 면에서 월등히 떨어지고 가격 면에서 엄청나게 비싸면서 개념설계만 돼 있던 프로젝트 70을 국외 도입할 경우와 비교할 때 예산 절감으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큰 효과와 의의는 잠수함을 설계·운용할 수 있는 인력과 기술을 자체 확보할 수 있게 됐으며 잠수함에 관한 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잠수함은 ‘조선(造船) 기술의 총아’로 불리는 만큼 아무리 규모가 큰 조선소라도 잠수함을 건조하지 못하면 그 기술력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다.

해군으로서는 국가 해군 전력의 서열 1번인 잠수함을 보유하는 계기가 됐으며, 특히 20년 이상의 돌고래 개발·운용 과정에서 배출된 승조원·정비 요원과 축적된 잠수함 관련 운용 기술이 해군 수중 세력 발전의 기반이 됐다. 이는 돌고래 자체 개발에 버금가는 의의를 지닌다. 1990년대 처음으로 출전한 환태평양 연합해상훈련(RIMPAC Exercise)에서 우리 해군의 209급 잠수함이 보여준 눈부신 활동의 저력이 바로 돌고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인호 기자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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