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기고

[오규택 진중문고] 걸음과 걷음

기사입력 2019. 09. 11   16:00 최종수정 2019. 09. 11   17:13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오 규 택  육군52사단 횃불연대·상병

흔히 ‘걷다’라고 하면 ‘걸음[步]’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걷다’에는 여러 뜻이 있다. 구름이 걷힐 때도, 소매를 걷을 때도, 이불을 걷을 때도 ‘걷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물론 책을 읽어보니 ‘걸음[步]’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어쩐지 필자에게는 ‘걷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이중적으로 다가왔다. 얼핏 봤을 때는 단순히 ‘걸음’에 대한 예찬론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걸음’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바로잡고, 또 내면의 불안함을 ‘걷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걷기가 취미이자 특기라고 할 정도로 좋아하고, 잘한다. 하루에 평균 3만 보를 걷는 것이 자신의 걷기 습관이라고 하는 저자는 기분에 따라 먼 길로 돌아가기도 하고,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해 걷기도 한다. 기분이 울적한 날에도 집에 가만히 있기보다 우선 밖으로 나가서 걷는다. 휴식을 위해 하와이까지 가서 온종일 걷는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 목적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목적지에 아무것도 없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걷는 과정에서 저자는 고민을 덜고, 자신을 찾는 것이다.

정보병인 필자는 업무 특성상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다. 사실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적성에도 맞지 않아 그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것이 곧 군대에 대한 반발심으로 이어져, 임무에 대한 책임감보다는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라게 됐다. 전역만 한다면 더는 힘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어쩌면 ‘전역’이라는 목적지에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어쨌든 ‘전역’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돼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군 생활의 ‘과정’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쉬운 길로만 가고자 했던 지난날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어렵고 힘든 일은 피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고 앞으로 맞서 싸워나가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군 생활의 시간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후회 없이 보람차게 군 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 매사에 성실히 임하고 이 과정을 즐기리라. 분명 전역 후에도 지금만큼, 어쩌면 지금보다 힘든 일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이에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려면 이렇게 과정을 즐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마음가짐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고작 책 한 권을 읽고 엄청난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씩, 차근차근 변해가는 내 모습을 기대할 뿐이다. 꾸준히 ‘걸어’ 나가며, 앞에 있는 시련들을 ‘걷어’ 나가는 내 모습을.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에 대한 의견 개 있습니다. 로그인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