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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부모님께

기사입력 2019. 09. 10   16:56 최종수정 2019. 09. 10   16:58


정 은 진 소령 
육군75사단

사랑하는 아빠, 보고 싶은 엄마! 한가위를 앞두고 더 친정이 그리워지던 차에 ‘가족사랑캠프 어머니 학교’에 참가해 이렇게 오랜만에 편지를 써요.

가난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고 고생하며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도 고생과 가난을 부모 탓, 자식 탓, 세상 탓, 인생 탓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꿋꿋하게 노동을 견디시며 사랑으로 가정을 일구신 부모님. 언제나 그런 부모님이 자랑스럽습니다.

단지 마음 아픈 건 알토란 같은 자식을 여덟이나 낳고 키우시느라 남들보다 빨리 위축되고 노쇠하신 부모님의 신체. 푸른 잎 무성하던 나무도 열매를 맺고 수확하고 나면, 잎이 누렇게 뜨고 이내 저리 떨어져 버리는 것을, 열매가 되어 다 큰 딸은 내내 그것이 걱정입니다.

자식 셋을 키우면서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건만, 제 자녀들은 매번 엄마 사랑을 더 받겠다고 서로 싸웁니다. 한데 엄마·아빠는 얼마나 넘치는 사랑을 주셨길래 우리 여덟 남매가 한 번도 싸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고등교육을 받거나 연구를 하신 것도 아니신데, 가난과 행복을 분리해 그토록 가난했지만 이토록 행복한 가정을 어떻게 일구실 수 있으셨을까요? 그건 아마 천성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천성이 부단히 노력하고 사랑이 넘치시는 두 분. 저는 그런 두 분의 천성을 닮아 세상을 볼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가장 큰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너무 소중하고 너무 간절해서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꿈. 그것은 제가 자는 줄 알고 엄마와 아빠가 나누시던 그 대화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당신과 나 사이에서 어떻게 저런 애가 나왔누? 커서 뭐가 될런가?” 한 번도 ‘공부해라’ ‘숙제해라’ ‘뭐가 돼라’ 하지 않으셨는데, 자식의 성적표에 마냥 들뜨셔서 기대감에 찬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언니들보다 상대적으로 유약했던 저는 그 후 누구보다 즐겁고 보람 있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 어쩌면 지금의 군 복무도 그 연장선인 것 같습니다.

이제 곧 아빠 연세가 칠순. 앞으로 20년을 더 사신다 해도 제주도를 일 년에 두세 번밖에 못 찾아뵙는 저로서는 애가 타네요. 앞으로 아빠 얼굴을 50번밖에 못 본다 생각하니…. 힘드시겠지만, 이제 담배도 끊으시고 입맛 없으셔도 식사 잘 챙겨 드셔서 제발 오래오래 사세요. 아빠가 자랑스러워하는 딸이 ‘뭐가 되는지’ 보셔야 하잖아요.

아빠 턱의 까슬까슬한 턱수염이 좋습니다. 구린내 나는 아빠 발가락도 좋습니다. 위트 있는 농담과 진실 어린 격려, 드라마 보시며 눈물짓는 여린 감수성도요. 엄마의 입가 주름이 좋습니다. 세상 떠나갈 듯 큰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좋습니다. 힘과 강단, 순진하고 정직한 마음, 보람을 느끼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요.

엄마·아빠의 딸로 태어나고 살아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같은 하늘 아래서 열심히 잘 지내다 행복하게 다시 만나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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