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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천우산에서 만난 선배 전우의 넋

입력 2019. 08. 19   16:44
업데이트 2019. 08. 1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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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 준 일병 
육군22사단 포병연대
이 석 준 일병 육군22사단 포병연대

오늘도 평화로운 2019년입니다. 학교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는 평화로운 일상! 저도 불과 몇 개월 전에는 이러한 나날이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유해발굴사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여기는 2019년의 대한민국은 우리 민족의 수많은 시련과 고통 그리고 헌신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발발한 6·25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초토화했고, 1000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내 나라와 내 부모·형제를 지키겠다는 신념 하나만으로 무거운 군장을 메고 전장으로 뛰쳐나간 우리 선배 전우들이 천우산 바위 밑에서 쓸쓸히 잠들어 계십니다.

저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채 남겨진 그 시신 한 구를 찾아 가족분들의 품으로 돌려보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해발굴사업’입니다.

저는 책임감을 느끼고 천우산에 올라가 유해를 찾는 숭고한 작전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불확실성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조기 취침을 하고 천우산에 올라가는 순간부터 제가 마음먹었던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힘들다. 포기하고 싶다.”

순간 69년 전 천우산에는 제대로 된 길도 없었을 것이고, 무거운 무기도 멘 채로 이동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습니다.

사계 청소를 하고 이틀간 진행한 후 본격적으로 생토층까지 파내기 위해 삽을 들고 산을 또다시 올라갔고, 제가 50㎝ 깊이를 파내기도 전에 M1 탄피와 탄두, MG50의 탄피가 발견됐습니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비·눈·바람·햇빛 등을 다 받아치면서 69년 동안 사계절이 수없이 바뀌었는데도, 그 말을 단번에 반론하겠다는 듯이 탄피·탄두·전투화·기름통·야전선 등등이 발견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산에 올라가면 앞에 동해가 훤히 보이는데 그 바다를 기준으로 남쪽에는 북한 탄피가, 북쪽에는 우리나라 탄피가 많이 발견됐습니다. 포대장님께서 그 내용을 설명해 주셔서 생생한 전투 현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지 탄피를 발견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얼마나 급박한 상황에서 전쟁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유해발굴사업에 참여하면서 2포대 전우들과 벽이나 허물 없이 같이 잠도 자고 얘기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이 땅을 지켜온 선배 전우들의 넋을 만날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분들께 감사의 묵념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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