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우리부대 동아리 집중탐구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조아미

입력 2019. 08. 14   16:54
업데이트 2019. 08. 1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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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육군22사단 캘리그래피 동아리

매주 화요일 2시간 수업
대대장 포함 간부 14명·병사 8명
카페에서 수제 도장 만들기 등 즐겨
반기마다 작품 전시회 진행 
 
“내 마음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
잡념 들지 않고 차분해져” 
 
모범 병사와 도움주신 분들에
직접 캘리그래피로 장식한
감사장 전달하는 이벤트도 

 

육군22사단 쌍호연대 백호돌격대대 ‘캘리그래피 동아리’ 수업에 참여한 한 장병이 수제 도장에 새길 글씨체를 연습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육군22사단 쌍호연대 백호돌격대대 ‘캘리그래피 동아리’ 수업에 참여한 한 장병이 수제 도장에 새길 글씨체를 연습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손쉽게 마음을 주고받는 세상이다. 빨리 쓰고 지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정형적인 글씨체는 무미건조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단순히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만 글씨를 사용해서다.

그래서 손글씨가 그리울 때가 있다. 감성 글씨, 캘리그래피(Calligraphy)에는 마음을 담은 손글씨의 힘이 느껴진다. 아날로그 감성을 200% 즐길 수 있다. 때로는 신선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여러 부수적인 추가 작업도 가능해 광고나 드라마 타이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광 받고 있다.

캘리그래피를 활용해 덥고 지칠 수 있는 병영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부대가 있다. 바로 육군22사단 쌍호연대 백호돌격대대. 부대의 ‘캘리그래피 동아리’ 현장을 찾았다.

강원도 고성에서 

글=조아미/사진=조용학 기자


수제 도장 만들기의 마지막 단계로 전각도를 사용해 도장을 파고 있다. 조용학 기자
수제 도장 만들기의 마지막 단계로 전각도를 사용해 도장을 파고 있다. 조용학 기자


나만의 ‘수제 도장 만들기’


지난 13일 오후, 육군22사단 쌍호연대 백호돌격대대. 이날은 매주 화요일 열리는 동아리 수업이 늑대중대 북카페인 ‘북적북적 하울링(읽고 ‘북’ 쓰고 ‘적’ 말하는 문화 ‘하울링’)’에서 진행됐다.

기자는 울부짖는 늑대의 ‘하울링’을 떠올리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과 달리 깨끗하게 리모델링한 ‘핫한’ 카페 분위기가 느껴졌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후텁지근한 날씨로 인한 끈적함을 날려줬다.

은은한 커피 향과 경쾌한 배경음악이 하나둘씩 북카페를 찾은 동아리원들을 반갑게 맞았다. 요즘과 같은 혹서기에는 일과시간 이후인 오후 1시30분부터 동아리가 시작된다. 캘리그래피 강사 권정아(32) 씨는 강원도 속초에서 장병들을 만나러 왔다.

이날 수업 주제는 ‘수제 도장 만들기’. 20여 명의 간부와 병사들이 테이블에 뒤섞여 앉았다. 다과를 즐기면서 자신의 이름이나 부대 애칭을 떠올리고 그것을 캘리그래피로 디자인했다.

하이에나중대 최유성 이병은 자대 배치받은 지 3주 됐다. 최 이병은 중대장과 나란히 앉는 캘리그래피 수업에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왔다.

그는 “군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뭐든지 새롭다”면서 “캘리그래피도 처음 접하는데 재미있을 것 같고 동아리 분위기가 너무 좋아 계속 참여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늑대중대 남궁산 일병은 자신의 휴대전화로 슈퍼맨 로고를 검색했다. 남궁 일병은 “‘산’의 이니셜 ‘S’와도 같고 개인적으로 슈퍼맨 로고를 좋아해 이름 대신 쓰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캘리그래피를 접한 이들과 달리 수준급 실력을 보여 주는 간부가 눈에 띄었다. 악어중대 부중대장 임유란 소위는 캘리그래피를 독학으로 배워 4년 정도 꾸준히 스킬을 연마했다.

임 소위는 중대원 이은서 일병이 글씨 쓰기를 어려워하자 이름과 꽃 모양을 그려줬다. 하이에나중대장 임완수 대위는 하이에나 문양을 휴대전화로 검색해 어렵게 도장에 새겼다.

임 대위는 “중대를 너무 사랑해 ‘하이에나’를 도장으로 만드는 게 의미 있을 것 같다”며 “중대 단위 포상이나 문서 등에 도장을 활용하고 싶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평소 급한 성격이 늘 걱정이었던 이한서 중사는 “캘리그래피를 알게 된 후 차분해졌다”며 “글씨를 쓰면 다른 생각은 들지 않고 마음이 안정된다”고 말했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수업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다. 장병들은 완성된 도장을 서로 보여주며 기뻐했다.

권정아 강사는 “캘리그래피는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내 문자로 표현할 수 있다”면서 “작가의 미적 조형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창조적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또 “장병들이 처음에는 펜 잡는 것도 서툴렀는데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면서 “군 생활 스트레스 해소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권정아 캘리그래피 강사가 장병들에게 도장 파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권정아 캘리그래피 강사가 장병들에게 도장 파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캘리그래피로 ‘소통’하고 ‘힐링’한다

캘리그래피 동아리는 지난해 7월 창설됐다. 서로 다른 중대와 중대가 ‘소통’하고, 간부와 병사 간의 ‘계층’이 사라지고, 군 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힐링’의 시간을 갖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 김성기(중령) 대대장을 포함해 간부 14명, 병사 8명 총 22명의 회원이 있다. 캘리그래피를 통해 마음의 회복을 원하는 장병들은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동아리 수업은 매주 1회 화요일 2시간가량 진행된다.

회장 박성철 대위는 캘리그래피에 대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나를 표현하고 어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며 “앞으로 캘리그래피의 매력을 대대에 꾸준히 전파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아리는 그간 만든 작품을 반기마다 전시회를 통해 선보이며 실력을 맘껏 뽐냈다. 처음이지만 종이에 눌러 담은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했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말로 전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정성껏 담아 선물도 했다.

늑대중대 신문규 상병은 “입대 전에도 캘리그래피라는 게 있다는 건 알았지만 관심이 없었는데 몇 달 동안 꾸준히 동아리에 참석해 연습으로 글자가 완성되는 게 보이니 신기하다”면서 “부모님께 가장 먼저 엽서를 선물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 대대장은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간부와 병사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 병영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동아리를 창설했다”며 “책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문구나 기억하고 싶은 글귀 등을 캘리그래피로 표현할 수 있어 독서와도 연계가 된다”고 캘리그래피의 매력을 설명했다.

또한 김 대대장은 모범 간부나 칭찬 병사에게 주는 대대 ‘와우(WOW) 상’을 직접 캘리그래피와 그림을 그려서 준다. 최근에는 부대 인근 마을 이장을 비롯해 잔반처리업체 사장, 청소용역업체 직원, 마트 사장 등 대대에 도움을 준 분들께 캘리그래피로 장식한 감사장을 전달하는 이벤트도 진행해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

동아리는 올해 연말 회원들이 제작한 크리스마스 엽서로 전시회를 열고 원하는 전우에게 편지를 써주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한 병사가 자신의 이름을 캘리그래피로 쓰고 있다. 조용학 기자
한 병사가 자신의 이름을 캘리그래피로 쓰고 있다. 조용학 기자

수업을 마친 캘리그래피 동아리원들이 자신이 만든 작품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조용학 기자
수업을 마친 캘리그래피 동아리원들이 자신이 만든 작품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조용학 기자

캘리그래피는?

캘리그래피란 그리스어로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란 뜻이며,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사용해 문장이나 낱말 안에 자신이 담고자 하는 마음·뜻·모양·소리·움직임 등을 자유롭고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글씨 예술이다.

특히 감성디자인을 활용한 마케팅이 각광 받는 요즘,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원하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캘리그래피가 주목받고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관심을 받으며 새로운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캘리그래피를 위해 사용하는 붓펜은 크게 모(毛)로 이루어진 붓펜과 스펀지로 이뤄진 붓펜으로 나뉜다. 재질에 따른 특징을 알고 손에 익을 때까지 꾸준히 연습하면, 어려움 없이 캘리그래피를 즐길 수 있다. 아울러 나무젓가락, 면봉, 칫솔 등 일상생활에서도 캘리그래피를 즐길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조아미 기자 < joajo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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