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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국 견제 의도 명백해지자 아태지역 긴장감 ‘팽팽’

입력 2019. 08. 13   16:09
업데이트 2019. 08. 1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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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INF조약 탈퇴 배경과 안보적 함의


美, 대테러 전쟁에 몰두하는 사이
태평양지역 美 전력 위협할 정도로
中 경제 발전에 군사력도 대폭 강화
안전 확보된 상황서 中 군사자산 타격

 
美 중거리미사일 동맹국 배치 시도
동아시아 안보지형 변화 폭풍전야
부 형 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미국이 INF조약을 최종적으로 파기한 후 이틀이 지난 지난 4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호주 시드니에서 장관급 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한 나라가 지역을 재편하려는 시도를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견제를 분명히 했다.  연합뉴스
미국이 INF조약을 최종적으로 파기한 후 이틀이 지난 지난 4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호주 시드니에서 장관급 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한 나라가 지역을 재편하려는 시도를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견제를 분명히 했다. 연합뉴스



그동안 많은 안보 전문가들이 미국과 러시아 간 중거리핵전력(INF)조약 파기가 우리 안보에 가져올 파급효과를 과소평가했다. 어찌 보면 INF조약은 먼 나라 일이었다. 유럽의 일이었고, 미·러 간 게임이었다. INF조약 탈퇴를 감행한 배경에 미국의 대중국 견제 의도가 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급기야 미국은 동맹국에 중국 견제를 위한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원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 안보 지형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는 폭풍이 될 것이다.
지난 8월 2일, 미국은 1987년에 소련과 체결한 INF조약을 최종적으로 파기했다. INF조약은 미국과 소련 두 나라만 구속하는 양자 조약이다. 양국은 유럽에 배치된 것은 물론 자신들이 갖고 있는 사거리 500~5500㎞의 모든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모든’ ‘지상발사’ ‘중거리’이다. 모든 중거리미사일이므로 사거리가 500~5500㎞ 이내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이 포함된다. 해상·공중발사 미사일은 포함되지 않는다.

당시 미·소 양국은 지상발사 미사일 외에 다른 종류의 핵전력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INF조약은 미·소 양측이 ‘판돈을 모두 거는 게임’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하되 너무 위협적인 무기는 폐기하자는 것이 INF조약의 정신이다. 상호 적정 수준의 취약성은 공유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유의할 것은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중거리 ‘핵’ 미사일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핵보유국의 어법에서 중거리미사일은 핵 탑재를 전제로 한다.



유럽, INF조약 체결로 32년간 평화 유지

1988년 INF조약이 발효된 후 1991년까지 미국과 소련은 총 2692기의 중거리 핵미사일을 폐기했다. 지상발사 중거리 핵전력은 당시 유럽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는 가장 핵심적인 무기체계였다. INF조약 체결로 유럽에서 군사적 긴장이 즉각적으로 낮아졌다. 냉전 종식의 촉매가 됐고 지난 32년간 유럽에서 평화가 유지됐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시점에 판이 깨진 것일까. 미국과 러시아 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파국적인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일까.

표면적으로 미국은 러시아의 INF조약 위반을 문제 삼았다. 실제로 러시아는 2008년부터 INF조약에 위반되는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다. 그때 진즉 러시아의 위반에 강하게 항의했어야 했다. 성실한 조약 준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조약 파기도 불사하겠다는 스탠스는 10년 전부터 나왔어야 했다는 얘기다. 미국이 INF조약에서 걸어 나간 것이 러시아의 INF조약 위반 때문만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피상적인 분석이다. 사실 미국을 괴롭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중국의 A2/AD(반접근/지역거부) 전력의 급격한 성장이었다.



中, 아무런 제지없이 미사일 전력 강화

미국이 대테러 전쟁에 국력을 쏟아붓는 동안 중국은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군사력을 대폭 강화했다. 과거에는 미군에 비해 보잘것없는 전력을 보유하던 중국이었지만 이제는 군사력 투사 범위를 저 멀리 해상으로까지 뻗치기 시작했다. 이들 전력이 태평양 지역 미군 전력에 위협이 됐다. 중국은 INF조약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중거리미사일 전력을 강화하는 데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이 점이 미국의 불만을 야기했다. 중국이 건설한 중거리미사일전력 중 DF-21, DF-26과 같은 미사일은 미군 항공모함을 타격할 수 있다. 미군 항공모함이 중국의 중거리미사일을 맞고 침몰하는 상황은 미국의 대통령이 감수할 수 있는 위험 범위를 넘어선다.



재래전이 핵전으로 비화 가능성

미군은 이러한 악몽과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많은 고심을 한 것 같다. 공해전투(air-sea battle) 개념을 논의한 것도 실상 미군의 자산을 중국의 중거리미사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공군 자산을 활용해 선제적으로 중국 전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력이 현대화하면서 대륙 깊숙이 있는 중국군의 중거리미사일전력을 무력화하는 일은 너무나 위험한 과업이 돼버렸다. 미군은 값비싼 항공자산과 해상자산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채 작전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군은 안전이 확보된 지상에서 대량으로 값싸게 중국군의 군사자산을 타격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 해답이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이다. INF조약 파기로 미국은 자유롭게 중거리미사일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전쟁 발발 시 지상발사 미사일은 전술적 활용도가 높다. 공중이나 해상에서 발사되는 미사일보다 많이 쏠 수 있고, 빨리 쏠 수 있다. 발사 차량을 이곳저곳에 분산시킬 수 있어 전술적 이점도 있다. 물론 이 때문에 중거리미사일 배치는 핵전쟁 가능성을 높인다. 아이러니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핵이 탑재되지 않은 중거리미사일을 아시아에 배치하는 방안을 얘기한다. 중국의 핵미사일 전력은 재래식 미사일 전력과 혼재돼 있다. 재래식 탄두를 장착한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이라 할지라도 중국의 핵전력을 위협하게 되므로 재래전이 핵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중거리미사일 아태지역 배치는 역내 군사적 긴장을 극적으로 고조시킬 것이다.



“중거리미사일 동맹국에 배치”

INF조약 파기 이후 유럽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한다는 논의보다 아태지역에 배치를 고려한다는 얘기가 먼저 나오는 것은 매우 낯선 광경이다. 그만큼 미국이 아태지역의 군사력 균형에 신경 쓴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미국은 자제할 것 같다. 과거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이 대거 나토 회원국이 된 상황이라 러시아가 궁지에 몰린 지 오래다. 여기에다 중거리미사일까지 배치하면 러시아를 너무 몰아세우는 조치가 된다.

반면 아태지역에서 미국은 괌에서 시작해 중거리미사일을 동맹국에 배치할 것이다. 동맹국 의사를 타진하겠지만, 매우 소란스러운 상황이 예견된다. 벌써 한국, 일본이 거론됐다. 한국은 중국에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배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는 필자의 희망적인 추론이다. 어쨌거나 미·중 간 전략경쟁이 군비경쟁으로 비화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걱정스러운 미래다.

부 형 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부 형 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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