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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성 종교와 삶] 유리판과 자기 제한

기사입력 2019. 08. 13   15:47 최종수정 2019. 08. 13   16:08

최 민 성 육군6군단 군종부 신앙선도장교·대위·신부

“벼룩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의 운두는 벼룩들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다. 그다음에는 어항의 아가리를 막기 위해서 유리판을 올려놓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올라 유리판에 부딪힌다. 그러다가 자꾸 부딪쳐서 아프니까 유리판 바로 밑까지만 올라가도록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히지 않는다. …중략… 그러고 나면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사전』 중에서)

여러분은 이 ‘벼룩 실험’을 접해 보셨습니까?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제가 살아오면서 한계라고 생각해 도전하지 못하고 포기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만 원을 주시며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제과점에 가서 식빵을 사오라고 하셨죠. 식빵에 딸기잼을 발라 먹을 생각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듯했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제과점을 향해 신나게 걸어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해 식빵을 집었고 계산을 하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제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는 길에 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기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 몸에 몇 개의 습관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가게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갑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맡겨진 물건을 언제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걱정 근심을 달고 삽니다. 더 나아가 저에게 맡겨진 임무와 약속을 완수하지 못할까봐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부탁을 종종 거절합니다. 이십여 년 전 있었던 일이 벼룩이 부딪힌 유리판처럼 오늘날까지 저에게 영향을 끼치는 한계의 벽이 된 것입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군종병이 일병 계급장을 달았습니다. 그 군종병은 입대 전 성당에서 몇 년 동안 교리교사로 활동했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늦게 입대하니, 자기가 교리를 가르쳐 왔던 아이들 또래가 선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제가 이 군종병의 상황에 부닥쳤더라면 많이 어려워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군종병은 교리 선생님이라는 자리를 내려놓고, 이십 대 초반을 살아가는 이들의 생각과 고민·어려움을 공유하고, 어떤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와 환경의 한계라는 유리판을 마주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유리판에 부딪혀 포기와 좌절의 늪에 빠져드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유리판에 부딪혀 아픔과 절망으로 움츠리고 있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안에 담긴 잠재능력을 발휘해서 유리판을 깨고 나와 새로운 삶을 맞이하겠습니까? 선택은 여러분의 결심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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