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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 종교와삶] 너와 내가 행복한 길

기사입력 2019. 08. 06   15:44 최종수정 2019. 08. 06   15:45

김단
해병대1사단·대위·목사

정글은 온갖 생물이 극한의 생존경쟁을 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장입니다. 식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정글에서 식물은 다른 식물보다 더 높게, 더 빨리 성장해서 햇빛을 확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런 소리 없는 전쟁터에서 ‘라피도포라’라는 식물은 참 특별하게 생존한다고 합니다. 덩굴식물인 라피도포라는 햇빛이 있는 곳까지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 햇빛을 받는데, 햇빛을 확보한 뒤에는 자신의 잎에 스스로 구멍을 내어 아래에 있는 식물들도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양보해 다른 식물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도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정글에서 손해를 감수하며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사는 이 식물은 ‘자기희생’이라는 가치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자기희생이란 남을 돕기 위해 소유하고 싶은 것이나 지키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는 행동입니다. 이 시대에는 이런 자기희생의 가치가 점점 희박해져 갑니다.

일례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흑우’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어수룩한 사람을 일컫는 ‘호구’라는 말의 변형으로, 특히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거나 남에게만 이득이 되는 일을 했을 경우 폄하하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말은 심지어 가족관계에서나 공동체, 조직에도 활용돼 이 사회를 더욱 냉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영위하는 이 삶에도 많은 사람의 크고 작은 자기희생이 근간이 됐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까이에는 자식들을 위한 부모님의 희생이 있고, 또한 우리 사회가 오롯이 유지될 수 있도록 섬기는 자들의 희생과 이 나라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위인들의 희생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자들의 공로로 오늘날 우리의 삶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나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우리가 받고 누리는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당연한 반응이며, 나 또한 행복한 나눔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한 알의 밀알’처럼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밀알이 땅에 심어져 그대로 있으면 그저 작은 밀알 한 알뿐이지만, 자신을 희생하고 양분으로 삼아 싹을 틔운다면 수많은 밀을 재생산하는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희생하기를 불사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본인도 자신이 가르친 것과 같이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인류의 죄를 용서하고 세상을 구원했습니다. 타락으로 깨어졌던 인류의 행복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희생, 사랑으로 회복됐습니다.

자기희생의 시작은 가볍고 경쾌할 수 있습니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고생하는 주변인들을 위해 따뜻한 격려를 전하는 것도 자신을 지향하던 삶을 외부로 향하게 하는 자기희생의 첫걸음입니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고 나 또한 행복해지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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