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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토리] 6·25전쟁 때 임진강 다리, 지금 어떤 모습?

신인호

입력 2019. 07. 26   09:23
업데이트 2019. 09. 1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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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임진강 다리들, 지금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나면서 전선은 중부지역에서 밀고 밀리는 양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유엔군과 공산군측 양자가 휴전을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 1951년 7월 10일 최초의 정전협상 본회의가 개성 내봉장에서 개최됐다. 이날 유엔군측 대표단은 헬기를 타고 회담장 근처로 이동했고, 세계의 보도진들은 차량으로 이동했다. 군용차량에 분승한 보도진들은 지금의 임진강 임진나루에 이르러 다리를 건넜다. 미8군 공병부대가 가설한 것으로 ‘홍커(Honker)’라는 이름의 부교(floating bridge)였다. 미군 등 유엔군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임진강에 이 같은 11개의 임시 다리와 영구 다리를 가설했다. 정전협정으로 전투가 끝난 지 66년이 지난 지금 이 다리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2019년 5월 17일 임진각 자유의 다리 일대 모습.  파주=조용학 기자
2019년 5월 17일 임진각 자유의 다리 일대 모습. 파주=조용학 기자

공산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선으로 병력과 물자를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임진강에 다리를 놓아야 했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에 밀린 북한군이 북으로 후퇴하면서 폭파시킨 임진강철교를 복원하는 것이 시급했다. 유엔군은 폭파된 철교 옆에 다리를 가설하기 시작했다. 자유의 다리(Freedom Gate)가 그것이다.


파괴된 임진강철교 바로 옆으로 1952년 3월 10일 가설 중인 ‘Freedom Gate Bridge’. 사진 = 미 육군.
파괴된 임진강철교 바로 옆으로 1952년 3월 10일 가설 중인 ‘Freedom Gate Bridge’. 사진 = 미 육군.


1951년 7월 정전회담의 장소였던 개성 내봉장으로 가기 위해 취재기자단이 홍커교를 건너고 있다. 미 육군.
1951년 7월 정전회담의 장소였던 개성 내봉장으로 가기 위해 취재기자단이 홍커교를 건너고 있다. 미 육군.

임진강 철교에서 가깝게 건설된 다리는 임진나루 인근에 세워진 ‘홍커(Honker)’라는 이름의 부교(floating bridge)였다. 정전회담이 진행될 때 기자단이 이 다리를 이용했다. 현재 임시적으로 설치한 다리인 만큼 현재는 그 모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인근 화석정에 올라 이 일대를 내려다보면 도하하기 좋은 지점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1971년까지 미군이 주둔해 있다가 이후 우리 육군부대에 경계임무가 맡겨졌다. 현재는 임진나루 생태탐방로의 한 곳이다.


홍커교가 위치했던 임진강 임진나루터. 예로부터 한양과 개성을 오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사진 = 이헌구 기자
홍커교가 위치했던 임진강 임진나루터. 예로부터 한양과 개성을 오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사진 = 이헌구 기자

스푼빌(Spoonbill 아래 사진)교는 폰툰을 이용하지 않고 낮은 교각 위에 철재 교판을 놓아 가설한 다리. 역시 그 다리는 없지만 현재 그 위치에는 다른 다리가 존재하고 있다. 다만 군사용 다리로서 일반인이 오갈 수는 없는데 ‘전진교’가 그것이다.


스푼빌교(Spoonbill bridge). 사진 = 미 육군.
스푼빌교(Spoonbill bridge). 사진 = 미 육군.


 1953년 7월 4일 개통 직전의 리비교. 사진 = 미 육군.
1953년 7월 4일 개통 직전의 리비교. 사진 = 미 육군.

파주시 장파리, X-레이 사이트라고 불린 지역에 건설된 리비교(Libby Bridge)는 임진강 11개 다리 중 가장 이름이 알려진 다리로 ‘북진교’라고도 불렸다. 1953년 7월 완공될 때 다리 이름으로 이 다리를 건설하다 숨진 카투사 병사의 이름을 붙이려 했으나 1950년 대전지구 전투의 영웅으로서 미 최고의 전투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은 리비 중사의 이름을 따 리비교라고 불렸다.


이 다리는 그동안 육군25사단에서 통행 관리해오다 2016년 사용불가 판정을 받아 폐쇄되어 현재는 파주시가 근대유산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리를 개수 및 보수하고 있다.


임진강 리비교(북진교). 현재는 폐쇄된 상태로 파주시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교각과 상판 등을 개수하고 있다. 이헌구 기자
임진강 리비교(북진교). 현재는 폐쇄된 상태로 파주시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교각과 상판 등을 개수하고 있다. 이헌구 기자

이밖에도 연천군 백학면 38선 이북에 이르기까지 위전(Widgeon) 핀테일파커(Pintail Parker) 라이트(Corporal Wright) 휘슬러(Whistler) 말랜드(Malland)와 같은 다리가 존재했다. 특히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에게 꽤 알려진 포인트로서 틸교(Teal)와 화이트교(Whitefront)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틸교는 현재의 비룡대교 위치에 있었던 다리. 틸교는 최초 목재로 가설되었으나 1952년 홍수로 인해 붕괴되었다가 교각 높이를 낮게 해 재가설 되었다. 비룡대교는 1993년에 완공되었다.


홍수에 무너진 틸교(왼쪽·미 육군)와 현재의 비룡대교. 이헌구 기자
홍수에 무너진 틸교(왼쪽·미 육군)와 현재의 비룡대교. 이헌구 기자

화이트교 역시 옛 다리는 철거되고 인근에 ‘임진교’가 놓여져 있다. 현재는 교각 일부만 무성한 수풀 속에서 볼 수 있다. 다만 인근에 다리의 이름을 상호로 쓰고 있는 ‘화이트 다방’이 꽤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어 이 곳을 다시 찾는 예비역의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화이트교 옆에 세워진 임진교와 옛 추억을 불러일으켜주는 화이트 다방. 조용학 기자
화이트교 옆에 세워진 임진교와 옛 추억을 불러일으켜주는 화이트 다방. 조용학 기자

한반도는 하천이 많은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강의 양안을 잇는 다리를 놓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임진강의 경우 유사시 다리를 신속하게 놓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진 곳은 아니라고 한다. 비록 깊은 강은 아니지만, 절벽 등 곳곳이 가파르고 강바닥이 진흙이거나 바위가 많아 다리를 놓기에 적절하지 않다. 6·25전쟁 중 놓여 졌던 다리들은 당시에는 물론 휴전 후 상당 기간 동안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리는 노후되어 운용이 불가능해지고 새 다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또 민간인통제선 조정과 군사보호구역해제과 함께 지역 발전과 인구의 유동에 따라 다리의 존재도 퇴색되어가고 있다. 이제 이들 다리들은 이 지역의 군부대에 복무했던 예비역 장병들에게 애틋한 정감을 추억하는 자취로 남아 있다. 그렇게 다리들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환경의 내일을 맞고 있다.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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