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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에 구멍 ‘숭숭’… 못생기면 어때 편하면 됐지

입력 2019. 07. 24   16:32
업데이트 2019. 07. 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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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투박한 신발의 혁명 ‘크록스(crocs)’


친구 위해 떠난 보트 여행서 아이디어
가벼우면서 방수되고 체온 맞게 변형
출시되자마자 완판 행진 등 흥행질주
액세서리 브랜드 ‘지비츠’도 인수
2006년 신발업체 최고가 나스닥 상장
지난해 매출액 1조2700억 원 달해

 


크록스는 못생긴 신발이지만, 오히려 디자인이 단순해 이렇게 사람들이 직접 색칠하며 꾸미기도 한다. 크록스 제공
크록스는 못생긴 신발이지만, 오히려 디자인이 단순해 이렇게 사람들이 직접 색칠하며 꾸미기도 한다. 크록스 제공


“너무 못생긴 신발인데요?”

2002년 11월, 사흘 만에 1000켤레의 못생긴 신발이 눈앞에서 완판됐다. 독특한 디자인에 이끌려 신어본 사람들이 하나둘씩 구매해 갔다. 특히 간호사·정원사·요리사 등 장시간 서서 일하는 사람들이 몇 개씩 구매했다. 신발 판매장소는 미국 플로리다의 보트 쇼. 장난삼아 출품했던 신발이 청년들의 삶을 바꿔놨다.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4억 켤레 가까이 팔린 ‘못생긴 신발’ 크록스. 그 시작에는 지독한 우울함에 빠져있던 친구를 구원해 주려고 노력했던 친구들의 우정이 담겨 있다. 


 

이제 막 40세를 넘긴 린든 핸슨은 우울한 상태였다. 9·11테러 이후 실직당했고 아내는 이혼한 뒤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심지어 어머니까지 돌아가셨다. 절친한 친구 스콧 시맨스와 조지 베데커는 우울한 친구를 위해 멕시코 보트 여행을 제안한다.

스콧은 당시 캐나다의 한 플라스틱 회사와 함께 일하던 중이었는데 스파용(욕실용) 신발로 개발된 신발을 보트 여행에 들고 왔다. 친구들의 첫 반응은 “정말 못생긴 신발이다”였다.

하지만 타고난 사업가이자 무역가였던 스콧의 생각은 달랐다. 괴상한 신발이 맞지만, 소재는 방수가 되면서 가벼웠고 일반적인 플라스틱이나 고무와 달리 박테리아와 곰팡이에도 쉽게 오염되지 않았다. 여기에 몸의 체온에 맞게 자연스레 신발 모양이 변형돼 착화감이 최고였다. 친구들에게 신발을 신어보라고 제안했고 구멍도 나 있어 물이 술술 빠지는 이 신기한 신발의 사업화를 결정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사흘 만에 이들은 신발을 만들었고 그 즉시 보트 쇼에 출품했다. 예상치 못한 흥행이었다. 


크록스의 액세서리로 크록스를 꾸민 모습. ‘지비츠’라는 크록스 전용 액세서리로, 한 주부가 딸들이 크록스를 즐겨 신는 모습을 보고 구멍 난 자리에 단추와  꽃 등을 끼우다 사업화했다. 크록스에 100억 원이 넘는 금액에 인수됐다.   크록스 제공
크록스의 액세서리로 크록스를 꾸민 모습. ‘지비츠’라는 크록스 전용 액세서리로, 한 주부가 딸들이 크록스를 즐겨 신는 모습을 보고 구멍 난 자리에 단추와 꽃 등을 끼우다 사업화했다. 크록스에 100억 원이 넘는 금액에 인수됐다. 크록스 제공
 

자신들의 고향인 미국 콜로라도에 본격적인 사업체를 세웠다. 이름은 ‘크록스’. 물과 육지 모두에서 생활이 가능한 악어처럼 이들의 신발 역시 어디서나 악어처럼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을 담았다. 신발 소재를 개발한 회사를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크록스 라이트’라는 소재를 독점 사용해 다양한 신발을 개발했다. 못생긴 만큼이나 역설적으로 너무 편한 신발에 순식간에 회사는 커졌다. 수제화·디자인 등을 고려해야 하는 다른 신발들과 달리 신발 구조도 간단해 ‘사출 방식’으로 찍어내며 제작 비용도 절감했다. 창업 첫해에는 120만 달러(약 14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창업 5년 만에 이탈리아·중국·루마니아에 있는 공장들을 연달아 인수하며 90여 개국에 사무소를 낼 정도로 커졌다.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한 전 세계 연예인들이 대가 없이 신은 뒤 크록스 신발에 열광했고 각국 히트상품 1위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꾼 50가지 신발’ 중 하나로 꼽힐 정도였다.

크록스는 작은 경제효과까지 일으켰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 출신이 아니었던 크록스는 콜로라도주 볼더라는 작은 도시에서 탄생했다. 이 도시 주민들의 자랑이었던 크록스는 주민들의 공식 신발로 자리 잡을 정도로 인기였다. 크록스의 구멍 난 신발을 매일같이 신고 다니던 딸들의 신발 구멍에 단추와 보석 등을 끼웠던 한 주부는 이를 남편과 함께 ‘지비츠’라는 액세서리 브랜드로 사업화했고, 결국 창업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600만 개를 넘기며 크록스에 2006년 10월, 1000만 달러(약 118억 원)에 인수됐다.

창업자들은 더 편한 신발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명에 공감했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사람들이 자신의 신발을 계속 사주는 것에 만족했다. 각 기업의 중역이었지만 신발과 경영에 서툴다고 판단한 이들은 일찌감치 경영에서 물러났고, 이후 최고경영자들이 영입되며 크록스의 경영을 이끌어가고 있다. 크록스는 2006년 신발업체로는 최고가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고 지난해 매출은 10억8800만 달러(약 1조2700억 원)를 기록했다.

크록스의 성공 비결은 오직 ‘편안함’이었다. 못생긴 모습은 오히려 ‘지비츠’라는 액세서리 꾸미기로 만회했고 어린아이부터 임신부와 노인, 의사 등이 어느 곳에서 신어도 불편함이 없을 ‘편안함’ 한 가지에만 집중해 성공했다. 흔들림 없는 사업의 가치를 수성하는 것이 회사의 브랜드에 얼마나 큰 요소인지, 크록스의 성장이 그 증거인 듯하다.


<송지영 IT 스타트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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