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우리부대 동아리 집중탐구

부대에 커피향 퍼지면, 장병들 미소가 번진다

송현숙

입력 2019. 07. 18   17:15
업데이트 2019. 07. 1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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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육군30사단 팬텀대대 커피 동아리 ‘아미 바리스타’


지난해 3월 신우호 준위 중심으로 시작
첫 모집에 지원자 2배 이상 모여
1기생 전원, 3개월 만에 자격증 취득

 
‘예은카페’ 만들어준 남서울교회
재료비 등 실비만 가지고 수업 가능하게
진충섭 목사·바리스타 출신 상병 등 도와
“부대 소통 돕고 메뉴 개발도… 뿌듯해”  

지난 8일 전차포수 김장오 일병이 서울에 있는 ‘군 선교회 국경 없는 바리스타’ 교육장에서 에스프레소 기계를 이용해 원두 원액을 추출하는 실습을 하고 있다.
지난 8일 전차포수 김장오 일병이 서울에 있는 ‘군 선교회 국경 없는 바리스타’ 교육장에서 에스프레소 기계를 이용해 원두 원액을 추출하는 실습을 하고 있다.


7만7000개. 통계청이 조사한 2018년 현재 국내 커피전문점 수다. 2007년 2300개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팽창이다.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 1명당 연간 커피 소비량도 이와 정비례한다. 2016년 기준 377잔으로 2012년 이후 연평균 7%씩 늘고 있다고 한다. 취미 삼아 집과 회사에서 핸드드립(Hand Drip)으로 커피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커피가 곧 일상이고 문화인 시대다. 군이라고 다르지 않다. 커피를 사랑하는 군인들이 많다. 단순히 커피를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전문 바리스타에 도전하는 군인들도 있다.  글=송현숙/사진=조용학 기자  


동아리장인 신우호 준위 지도 아래 핸드드립 실습 중인 ‘아미 바리스타’ 동아리 장병들.
동아리장인 신우호 준위 지도 아래 핸드드립 실습 중인 ‘아미 바리스타’ 동아리 장병들.


“오늘부터 실습에 들어갑니다. 바리스타 2급 실기 시험 필수 과정인 에스프레소 기계로 커피 원액 추출하기를 할 건데, 개인당 2회씩 해볼게요. 시간 되면 더 연습해도 좋습니다. 인원이 많으니까 화상 등 안전사고 없도록 강사님들 지도에 잘 따라 주시고요.”

지난 8일 오전, 서울 모처에 있는 커피 봉사단체 ‘군 선교회 국경 없는 바리스타’ 교육장. 바리스타 양성 교육을 총괄하는 진충섭(56) 목사의 설명에 따라 2대의 업소용 에스프레소 기계 앞으로 이동한 육군30사단 팬텀대대 ‘아미 바리스타(Army Baristas)’ 동아리원들 눈에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강하고 위용 넘치는 K1A1 전차와 늘 함께하는 씩씩한 장병들이지만, 눈앞에 놓인 작고 향기로운 기계로부터 기분 좋은 떨림과 설렘을 선물 받고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실습은 기계 1대당 1명씩, 총 2명이 강사로부터 1대1 도제식 교육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아이스크림 뜰 때 사용하는 스쿱(숟가락)처럼 생긴 포타필터(Portafilter) 내부의 물기를 깨끗하게 닦은 후 원두를 분쇄해 담는 것이 1차 과정. 이어 스탬프 모양의 댐퍼로 내려받은 원두 가루를 15㎏가량의 압력으로 꾹꾹 눌러 공기는 빼고 평탄하게 다졌다. 그 상태로 포타필터를 기계의 추출구에 고정한 후 추출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2개의 투명한 계량 유리잔을 가지런히 받쳐 놓으면 90% 완료!

흡사 갓난아이를 보살피듯 조심스러운 몸짓과 손짓으로 과정 하나하나를 따라 한 장병들은 기계에서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25초 동안 짙은 갈색 커피 원액과 크림색 크레마(crema)가 유리잔을 찰랑찰랑 채우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전차포수 김장오(23) 일병은 “원래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싶어서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오늘 늘 사서 마시던 원두커피를 직접 기계를 이용해 추출해보니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반복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드디어 직접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영접할 시간! 장병들은 진한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씩 음미하며 혀끝에 감기는 맛과 코끝에 와 닿는 향을 평가했다.

“끝 맛에서 과일처럼 단맛이 나요.” “어! 저는 누룽지처럼 고소한 맛이 많이 나는데요?” “두 잔을 추출했는데 각각 원액 양이 다르게 나왔어요. 왜 그렇죠?” “이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으면 아메리카노, 우유를 넣으면 카페라테가 되는 거죠?”

실습을 마친 장병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같은 원두, 같은 기계에, 심지어 자동 방식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했건만 바리스타의 기량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고, 추가로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의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다니! 호기심과 궁금증이 발동한 예비 바리스타 장병들의 눈빛이 밤하늘 별처럼 반짝였다.

지난 8일 육군30사단 팬텀대대 ‘아미 바리스타’ 동아리 장병들이 부대 ‘예은카페’에서 직접 핸드드립으로 내린 아메리카노를 나눠 마시며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있다.
지난 8일 육군30사단 팬텀대대 ‘아미 바리스타’ 동아리 장병들이 부대 ‘예은카페’에서 직접 핸드드립으로 내린 아메리카노를 나눠 마시며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있다.


“동아리 덕분에 빠른 부대 적응”

“제대로 커피를 즐기고 싶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죠. 그런데 뜻밖에 주변에 이 자격증에 관심 있는 부대원들이 많더라고요. 한 잔의 커피가 일상에 작은 활력이 되고, 나아가 부대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행복해지는 계기가 될 것 같아서 동아리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대대에 바리스타 동아리가 만들어진 건 지난해 3월이다. 동아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분위기 속에 수송정비장교 신우호(45) 준위가 나서 평소 커피를 좋아하는 간부와 병사들을 모았다.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커피를 함께 나눠 마시며 전 부대원이 소통하는 열린 문화를 조성하고 싶었던 신 준위의 ‘빅 픽처’는 처음부터 대성공이었다. 1기 15명 모집에 2배 이상의 지원자가 몰려 면접까지 진행해 동아리원을 선발했다고.


“면접에서 딱 3가지를 물어봤어요. ‘전역일까지 3개월 이상 남았는가?’ ‘커피를 진심으로 좋아하는가?’ ‘주기적으로 커피 봉사를 할 수 있는가?’ 단순히 호기심으로 들어왔다가 탈퇴하는 사람 없이 즐겁게 커피를 배우고, 전우들과 이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신 준위)

그렇게 면접을 통과한 1기생 전원은 3개월(12주) 동안 교육받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는 2기생 15명이 오는 22일 실기시험을 앞두고 실습에 매진 중이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국가공인 바리스타 자격증은 없다. 주로 민간 커피 관련 기관에서 해당 시험을 주관하고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민간자격증을 발급한다.

인사행정병 정재윤(22) 일병은 “군에 와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면서 “덕분에 선임들과도 친해져 부대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고, 부모님께서 휴가 나갔을 때 핸드드립 세트를 선물해 주셔서 함께 커피를 내려 마시며 가족애도 돈독히 다졌다”고 동아리 활동으로 얻은 무형의 소득을 전했다.

‘군 선교회 국경 없는 바리스타’ 진충섭(가운데) 목사가 ‘아미 바리스타’ 장병들에게 커피 풍미 분류표를 기준으로 커피의 향과 맛에 관한 이론 교육을 하고 있다.
‘군 선교회 국경 없는 바리스타’ 진충섭(가운데) 목사가 ‘아미 바리스타’ 장병들에게 커피 풍미 분류표를 기준으로 커피의 향과 맛에 관한 이론 교육을 하고 있다.


민·군이 함께 만든 ‘1℃’의 기적

물은 99℃에서 끓지 않는다. 임계점인 100℃가 돼야 비로소 끓기 시작한다. 군 동아리를 물에 비유하자면, 임계점(잘되는 동아리)에 닿기까지는 여러모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부대 교육훈련과 근무 등으로 인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기가 힘들다. 또 해당 분야 전문가를 초빙하거나 수업에 필요한 교보재 등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아미 바리스타’는 복이 많은 동아리다. 동아리원들의 하고자 하는 열정에 더해 민간 커피 기관의 적극적인 지원과 부대의 관심이 ‘1℃’의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바리스타 자격증은 전문기관에서 배우지 않고 독학으로 취득하기 힘들다. 실습이 8할 이상이기 때문이다. 군 복무 중이라면 더더욱 준비가 힘들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단번에 해결해준 ‘키다리 아저씨’가 바로 ‘군 선교회 국경 없는 바리스타’의 진충섭 목사다. 신 준위는 군 선교에 힘쓰는 이곳에 장기 후원을 하고 있는데, 진 목사가 그의 고민을 전해 듣고 선뜻 나서서 심화 이론과 에스프레소 기계를 다루고 응용하는 실기 전반을 도와주고 있는 것.

자신을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 밝힌 진 목사는 “군 장병 전투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또 힐링의 시간도 선사하고 싶어서 바리스타 양성 교육을 지원하게 됐다”면서 “신세대 장병들이 이처럼 할 때는 확실하게 하고 또 부대 업무 시간에는 군기 있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듬직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병들은 재료비, 자격증 발급비 등등 실비만 내고 배우고 있다. 병사 봉급이 오른 덕분에 자기계발교육 비용을 스스로 해결하고, 개인 휴가를 이용해 외부 수업에 참여하는 등 열성적이다.  


정영훈 상병이 에티오피아 원두로 내린 아메리카노를 맛보기 전 향을 음미하고 있다.
정영훈 상병이 에티오피아 원두로 내린 아메리카노를 맛보기 전 향을 음미하고 있다.

[예은카페]
음으로 양으로 밀알 역할을 하는 이가 또 있다. 대학에서 식음료서비스학을 전공한 장갑차 조종수 황태윤(22) 상병 등 2명이다. 이들은 보조강사로 나서 전우들의 바리스타 도전을 지원사격하고 있다. 특히 커피 관련 각종 국내 경연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바리스타 선수 출신 황 상병은 동아리원들과 부대 교회 내 ‘예은카페’에서 휴식 시간에 커피 봉사자로 나서 부대 전우들에게 고품질의 원두커피를 재료비 정도로 즐길 기회를 제공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황 상병은 “과테말라, 브라질, 콜롬비아산 등 질 좋은 원두로 뽑은 커피가 부대 간부와 용사들이 소통하는 매개체가 되고, 갓 전입한 신병이 차 한잔에 긴장을 푸는 모습을 보면 절로 마음이 뿌듯해진다”며 “개인적으로도 ‘감’을 유지할 수 있고, 메뉴 개발과 동시에 봉사활동도 할 수 있어 대만족”이라고 밝혔다. 또 동아리가 모임을 열 수 있도록 ‘예은카페’를 만들어준 남서울교회, 오는 11월 실습을 위한 에스프레소 기계 1대 기증을 약속한 서울세광교회도 아미 바리스타 동아리원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준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신 준위는 “개인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도 부대 내에서 모든 실습을 진행할 수 있게 돼 더 많은 대대원이 손쉽게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커피문화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 육군30사단 김 진 동 팬텀대대장 인터뷰

“행복해서 강한 우리 부대… 16개 동아리가 그 중심”


 




“우리 부대에 동아리가 16개 있습니다.”

지난 8일 오후 육군30사단 김진동(중령·학군40기·사진) 팬텀대대장을 만난 기자는 세 번 놀랐다.

대대급 부대에 16개의 동아리가 있다는 사실에 한 번, 수영·풍선아트·바리스타 등 이색 동아리가 많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마지막으로 부대원들을 생각하는 간부들의 따뜻한 마음에 놀랐다.

먼저 육군 사단급 부대에도 동아리가 10개 이상 운영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대대급에서 이 정도 규모의 동아리를 운영한다는 건 그만큼 부대원들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심스럽게 그 비결을 묻자 김 대대장은 ‘행복해서 강한 부대! 행복한 팬텀대대!’라는 부대 구호를 소개하며 “부대원이 행복해야 부대가 강해지는 것 아니겠느냐”며 “그 중심 역할을 동아리가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대 간부들의 열성적인 참여와 지지에 공을 돌렸다.

“동아리마다 지도 간부들이 있는데 정말 열심히 이끌어 주고 솔선수범해줘서, 지휘관으로서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고 배려하는 부대 문화가 사기 증진으로 이어져, 결국 수도 서울을 지키는 강한 전투력으로 발현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송현숙 기자 < rokaw@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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