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과 게임 시즌2

[전쟁과 게임] '홀드패스트' 명중률 낮은 머스킷총으로 집중화력 묘미

입력 2019. 07. 18   16:44
업데이트 2019. 07. 1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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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전쟁과 게임 시즌2 : 홀드패스트: 네이션즈 앳 워


승리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아군이 함께 모여 집단전투력을 상승시켜야 한다. 일제사격이 가능해진 부대의 머스킷총은 개별 사격과는 완전히 다른 화력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필자 제공
승리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아군이 함께 모여 집단전투력을 상승시켜야 한다. 일제사격이 가능해진 부대의 머스킷총은 개별 사격과는 완전히 다른 화력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필자 제공

현대 보병의 주력 개인화기인 자동소총은 초창기 총기류와 비교하자면 그 성능의 차이가 보름달과 반딧불을 방불케 한다. 충분하게 긴 사거리, 높은 명중률,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잡한 장전절차 없이도 손쉽게 지속적인 사격을 가능케 하는 탄피와 탄창 기술이 나오기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필요했다.


근대 초기의 전열보병 전투

낮은 명중률과 오래 걸리는 재장전 시간은 초창기에 등장한 머스킷총의 운용을 지금보다는 오히려 전근대적인 전술에 가깝게 만들었다. 영화 ‘패트리어트’ 등의 전투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머스킷총을 사용하는 전열보병들은 지금처럼 산개해 각자 엄폐를 통해 전투하는 대신, 개활지에서도 대규모로 전열을 이뤄 전투에 임했다. 워낙 명중률이 낮았기에 단체로 모여 일종의 화망을 구성하는 형태로 사격해야만 했다. 한 발 사격 이후에 걸리는 긴 재장전 시간도 1열의 재장전을 2열이 사격하는 형태로 극복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지금 기준으로 보면 머스킷총과 전열보병의 시대에 벌어진 전투들은 다소 이상하고 어떤 면에선 공포스러운 분위기이기도 했다. 개활지에서 엄폐 없이 우르르 몰려 가서 적을 코앞에 두고 집단으로 사격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적의 사격에 그만큼 노출되기 쉽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 공포는 동시에 민족주의, 국가주의 같은 이념이 희박했던 시기와 맞물리며 군대의 사기에 영향을 미쳤다. 집단으로 모여 있어 지휘관의 직접 통제가 가능한 전열보병의 방식이 아니라면 흩어진 개인들은 전투하기는커녕 그대로 도망가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직접 전열보병이 돼 전장으로 뛰어들다

그런 초창기 전열보병의 전투는 여러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자주 그려진다. ‘문명’ 시리즈의 머스킷총 유닛도 그렇고, ‘엠파이어 토탈워’가 다루는 전열보병의 전투도 같은 맥락을 다룬다. 하지만 여기 그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오히려 전열보병의 개념이 매우 명확하게 드러나는 게임 하나가 있다.

‘홀드패스트: 네이션즈 앳 워’(이하 ‘홀드패스트’)는 2017년 출시된 전열보병 전투를 다룬 게임이다. 이 게임의 시점은 3인칭으로, 게임은 전열보병을 지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전투에 참가하는 전투원의 시점에서 다룬다. 밀리터리 액션 게임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지만, 문제는 그 주인공이 들고 있는 무기가 현대식 자동소총이 아니라 머스킷총이라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빠른 재장전, 엄폐물 뒤에서 날리는 날카로운 킬샷 한 방을 보여주기 어렵다. 머스킷총은 아무리 조준해도 어지간히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면 헛방을 치기 일쑤며, 한 번 빗나간 뒤에는 오랫동안 총구 앞을 세워 화약과 탄환을 재장전해야 하는 패널티가 뒤따른다. 혹여 근거리에서 적을 빗맞혔다면 오히려 장전된 적이 미소 짓는 상황이 게임 내에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렇기에 ‘홀드패스트’는 분명 한 명의 캐릭터를 다루는 게임이지만, 건제 단위의 활동이 중요시되는 게임이다. 게임에는 머스킷병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전열보병단을 구성하는 여러 유닛들이 적당한 고증과 적당한 가상 아래 등장한다. 힐러를 맡는 의사, 아군의 군기를 들고 행진하는 기수,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아군의 장전속도를 향상하는 군악병 등이 실제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동시대로서는 몇 대 안되는 강선이 파인 라이플을 들고 저격전을 수행하는 라이플맨도 소수 등장해 게임을 다채롭게 구성한다.

이렇게 보면 꽤 빡빡해 보이는 게임일 것 같지만, 막상 ‘홀드패스트’를 직접 플레이해 보면 뭔가 나사 빠진 것 같은 전투 때문에 긴장감보다는 코믹함이 넘쳐나는 느낌을 받는다. 그 이유는 이 게임이 싱글플레이어 게임이 아니라 여러 플레이어가 단체로 참여하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이기 때문이다.


‘홀드패스트’의 척탄병이 모여 찍은 단체사진. 게임사가 제공한 사진이다. 실제 게임에서 이처럼 플레이어들이 단정하게 정렬해 사진을 찍는 일은 보기 드물다.  필자 제공
‘홀드패스트’의 척탄병이 모여 찍은 단체사진. 게임사가 제공한 사진이다. 실제 게임에서 이처럼 플레이어들이 단정하게 정렬해 사진을 찍는 일은 보기 드물다. 필자 제공


‘홀드패스트’의 전장은 난장판 그 자체다. 모든 플레이어가 제각기 움직이는데, 개인화기의 화력이 그리 좋지 않으니 킬이 착착 나오기보다는 그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이 지점을 정확히 놓치지 않고 그려낸다. 게임 속에 참가 가능한 캐릭터로 장교가 등장하는 것이 그 이유다.

지휘관 역할을 맡는 장교는 칼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망원경으로 정찰이 가능하며 야간전에 활용 가능한 랜턴을 보유한 캐릭터다. 게임이 시작되면 모든 플레이어는 일단 뭘 해야 될지 모르니 지휘관의 옆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음성채팅이 가능한 ‘홀드패스트’에서 장교 캐릭터를 맡은 플레이어는 일단 모인 아군들을 정렬시키고, 함께 이동하며 작전을 수행한다.

만약 아군이 팀워크가 좋고 장교 캐릭터를 맡은 플레이어가 지휘력이 있는 경우라면 의외로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실제 전열보병 전투처럼 모두가 길게 라인을 형성하고, 지휘관의 발사 구령에 맞추어 일제 사격을 수행하는 것이다. 적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아군이 이 단순하지만 꽤 절도 있는 과정을 해낸다면 정말 적은 순식간에 녹아내려 버린다. 명중률 낮은 머스킷총이라지만 일제사격을 통해 집중되는 화력이 생각보다 살벌하다는 사실을 플레이어들은 처음 깨닫고 기뻐한다.

물론 이런 장면이 결코 자주 만날 수 있는 장면들은 아니다. 온라인에서 그저 자동으로 매칭된 플레이어들끼리의 팀워크라는 게 결코 쉽게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심지어 언어도 다른 경우가 잦다). 하지만 이를 통해 ‘홀드패스트’는 역설적으로 군기와 건제가 실제 전투력의 측면에서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잘 통제된 전투지휘가 가져다주는 승리의 쾌감은 왁자지껄 통제 안 되는 ‘홀드패스트’의 전장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반짝이는 승리의 교훈이다.


필자 =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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