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기획 > 교양 > 스페셜리포트

[밀토리] 연천 백학역사박물관, ‘작은’ 마을역사 기록한 ‘큰’ 박물관

신인호 기사입력 2019. 07. 19   14:25 최종수정 2019. 09. 19   13:38


 경기도 연천군

 백학역사박물관


한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허리 부분을 보면 위도 38선과 남과 북을 가르고 있는 군사분계선(MDL), 비무장지대(DMZ)가 눈에 들어온다. 그 38선과 MDL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 그런 범상치 않은 곳 가까이에 범상치 않은 마을이 있다.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다. 인근에 백령리 두현리 등도 있지만 굳이 두일리를 바라본 까닭은 이곳이 경기북부보훈지청 지정 ‘제1호 호국영웅정신 계승마을’이면서 ‘백학역사박물관’이라는 작은 명소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 신인호 기자 / 사진 = 이헌구 기자


백학면 두일리로 들어가는 길목의 임진강 비룡대교.


백학면은 1974년 11월 15일 제1땅굴이 발견된 곳(포춘리)으로 1989년 6월 이전만 해도 민간인통제선 위쪽에 자리한 마을들이 꽤 있었던 고장이다. 백학면은 연천군을 가로질러 흐르는 임진강의 이북에 있다. 


적성면에서 이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노곡리의 ‘비룡대교’라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군부대에 안목이 있다면 이 지역의 방어를 담당하는 부대의 애칭을 다리의 이름으로 쓰고 있음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20년 전이라면 아마도 여기서부터 ‘전방’ 이미지가 물씬 풍겼을 것이다.


6·25전쟁 때를 돌이켜보자면 미군은 임진강 너머 전선으로 장비와 물자의 보급을 위해 부교 등 다리를 11개 가설했었다. 노곡리에도 틸교(Teal bridge)라는 다리가 놓였었는데 노후된 관계로 1994년 비룡대교(420m)를 건설, 대체되었다. 이 다리도 지금은 노후화되어 새 다리를 옆에 가설하고 있다.


1953년에 미군 공병부대가 세운 틸교.


10분이 채 안되어 두일리 입구에 이르는데, 조그만 다리를 건너기 직전 ‘제1호 호국영웅 정신계승 마을’이라는 큰 안내판이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알려준다.


백학면 두일리로 들어가는 초입. ‘제1호 호국영웅 정신계승 마을’임을 알려준다.


마을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를 게 없다. 길 따라 안으로 조금 가니 곧바로 ‘백학역사박물관’과 ‘따복공동체’라는 푯말이 조그만 출입문 위에 붙어있었다. 이 박물관이 경기도의 ‘따복공동체’ 사업의 하나로 조성됐음을 알려주는 것인데 당시 백학면 주민자치위원회의 주윤기 위원장이 이 지하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호국영웅 정신계승마을 연천군 백학면 백학역사박물관 입구. 문은 늘 열려 있지만 관리나 안내 인력이 따로 없어 안내를 위해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백학 역사박물관 보다 먼저 눈에 띈 것은 ‘마을 아침해 해설사’를 모집한다는 현수막이었다. 그리고 마을 안쪽 간판에 ‘레클리스’라는 단어도 보였다. 연천군 백학면 주민자치위원회 주관하여 개업한 카페 이름인데, 비로소 ‘두일리’가 6·25 격전의 현장이었음을 새삼 떠올렸다.


레클리스는 6·25전쟁 때 미 해병대가 전투지역 탄약운반을 위해 사들인 운용한 군마(軍馬)로서 큰 명성을 날렸다. 미 『라이프(LIFE)』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웅으로도 선정됐을 정도. 구매 당시 이름이 ‘아침해’였고 군마로 최초 활약할 때는 ‘플레임’이었으나 무모할(reckless) 정도로 용감해 레클리스라고 불렸다. 레클리스가 활약한 전투지역이 바로 이곳 백학면이다.

 백학역사박물관 내부에 그려진 레클리스 벽화와  마을의 레클리스 카페.

어두운 계단을 따라 내려가 전등을 켜자 눈에 들어온 전시실은 10평이 조금 넘을 작고 좁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정말 넓고 따스한 공간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출입문 벽면에 그려진 초병 그림과는 다르게 전시실에서 먼저 본 것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는 벽화였다. 1919년 3월 21일 이곳 두일리에서 연천지역 최초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설명이다. 이 박물관이 백학면 100년 역사를 담았다는 까닭이 여기 있었다.

40여 종 100여 점의 전시물들은 짜임새 있고, 또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다. 벽면은 거의 벽화로 그려진 가운데 휴전선과 DMZ를 표현하는 윤형의 철조망이 갈대와 함께 전시장 중앙에 길게 설치되어 있다. 이 둘레로 낡은 철모와 소총, 탄약 등 6·25전쟁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근 부대에서 기증한 것들이다. 한쪽에는 제1땅굴 모형도 있다. 제1땅굴은 1974년 11월 아침 7시 45분에 DMZ수색 정찰 중 발견된 것으로 가장 긴장이 고조되었던 시기, 북한의 남침 야욕을 일깨워주는 증거이다.

백학역사박물관의 전시품들. 6·25전쟁의 유산 같은 대검과 탄약, 그리고 탄약과 장비를 나르던 지게 등이 전시되어 있고, 북한에서 보낸 삐라도 있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군생활 모습과 소장품 등이 함께 자리해 있다.

유리 전시장에는 낡은 색바랜 흑백사진들이 눈에 띈다. ‘아주 오래 전’ 주민들이 군 복무 중 전우들과 찍은 사진과 추억록의 한 부분도 있고, 더 이상 쓰지 못해 간직하고만 있던 손목시계도 보인다. 또 1996년 경기·강원 일원에 내린 폭우로 인한 이 마을 피해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박물관 전시실 위에는 6·25 참전용사로서 오랜동안 마을을 지켰던 어르신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무엇보다 이 백학역사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마을에서 태어나셨거나 훗날 이곳에 정착해 오래도록 생활한 마을의 출신으로서 6·25 참전 유공자인 어르신들을 흑백사진으로나마 기념하고 있는 점일 것이다. 마을의 존재 이유. 


또 백학역사박물관이 작지만 작지 않고, 부족하지만 넉넉하고, 누추하지만 정겹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수령이 200년은 훨씬 넘는 느티나무가 넓다란 그늘로 무더운 날에 여유로운 쉼을 주는 마을. 이 분들의 사랑과 정이 바람 타고 휘돌고 있다.

마을을 지켜온 수령 220년의 느티나무가 마을의 평화로움과 주민의 인정을 느끼게 해준다.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에 대한 의견 개 있습니다. 로그인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