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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환자 89% 휴전선 인근서 발생

입력 2019. 07. 16   16:30
업데이트 2019. 07. 1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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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현 박사의 야전병원 말라리아


한반도 토착형 ‘삼일열 말라리아’ 48시간 주기로 열·땀 반복
1979년 퇴치 선언… 1993년 파주 지역서 다시 감염자 발생
OECD 발생 1위… 질병관리본부 ‘재퇴치 5개년 실행계획’ 마련


 

지난 6월 13일 올해 처음으로 경기도 파주지역(탄현면 등)에서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얼룩날개모기(Anopheles 속)’가 확인됐다. 얼룩날개모기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로 논이나 동물축사, 웅덩이 등에 서식하며 주로 밤에 사람을 물어 피를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말라리아를 감염시킨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질병관리본부는 국내 말라리아 위험지역에 해당하는 인천, 경기·강원 북부 거주자와 여행객을 대상으로 말라리아 감염 주의를 당부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삼일열 말라리아, 열대열 말라리아, 사일열 말라리아, 난형열 말라리아, 원숭이열 말라리아 가운데 한반도의 토착형은 삼일열 말라리아다.

삼일열 말라리아에 감염되면 48시간 주기로 열이 나고 몸이 떨리며 땀이 나기를 반복한다.

기온 변화와 말라리아의 상관성을 연구한 결과 우리나라의 여름철(6~8월) 평균 기온이 약 1.5℃ 상승하면 말라리아 환자 수는 약 11.0~22.4%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 말라리아가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된 이후 1970년에만 1만5926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보고됐다. 세계보건기구 등의 도움으로 말라리아 퇴치사업을 적극 추진한 결과 1979년 우리나라는 말라리아 퇴치 선언을 할 수 있었다.

바로 전인 1978년 10월 28일과 11월 10일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역 사무소는 우리나라에 공문을 보내 말라리아 관련 베트남 지원을 요청했고, 1979년 2월 10일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말라리아 매개 모기 방역활동을 위한 DDT 스프레이 등 2만 달러 상당의 물품을 지원했다.

국내에서 완전히 사라진 줄로 알았던 말라리아가 다시 확인된 것은 1993년이다. 경기도 파주지역 휴전선 일대에서 복무 중이던 군인이 말라리아에 감염됐다.

1997년에 1000명 이상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한 후로도 매년 2000명 이상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해 2000년에 4100여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현역군인이 대부분이었다.

말라리아는 잠복기가 12일~12개월이어서 제대 후에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2001년 이후 환자 수는 줄어들었지만 민간인 비율이 늘어났다. 2004년 1000명 미만이던 환자 수는 2005년부터 다시 증가해 2006년, 2007년에 다시 20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말라리아에 감염된 환자가 주로 휴전선 인접 지역에 몰려 있는 것으로 볼 때 북한지역으로부터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내려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사정은 어떨까. 1990년대까지 북한은 말라리아가 근절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의 증언을 모아보면 당시 북한에 말라리아가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전력을 덜 사용하는 농법에 농약을 덜 사용한 데다 대홍수까지 겹쳐 모기 서식에 유리한 환경이 되면서 모기의 산란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급기야 1996년 북한은 말라리아 환자 2100여 명이 발생했다고 인정하며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북한의 말라리아 환자 수는 1999년 10만 명, 2000년 20만4000명, 2001년 30만 명으로 폭증했는데 주로 우리와 인접한 개성시, 황해도, 강원도, 남포시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이후 국제사회 등의 도움으로 말라리아 환자 수는 2002년 25만4000명, 2003년 6만 명, 2007년 750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010년 8월 17일 경기도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말라리아 남북공동 방역사업 물자를 북한으로 보냈다.



말라리아 전문가 박재원 교수

말라리아 전문가인 박재원(가천의대 미생물학과) 교수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경의선 육로를 통해 개성으로 건너가 말라리아 진단키트 12만 개, 구충유제(1㎏) 1000개, 모기향 60만 개 등을 지원했다. 이후에도 임신부용 예방약, 기피제 함유 방충망 등을 지원했다. 2011년 초부터 경기도와 인천시는 박재원 교수 등 말라리아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대북 방역물자의 공동 지원을 긴밀히 협의했다.

박 교수는 영양 상태가 불량한 북한 아이들이 말라리아에 감염될 경우 간과 비장이 커질 수 있는데 의사가 손으로 진찰해 확인하려면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초음파 진단장비를 지원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박재원 교수는 원래 의학도를 꿈꾸지 않았지만 전남대 의대 미생물학과 교수인 부친의 권유로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1998년부터 국군의학연구소의 군의관으로서 말라리아 방역 업무를 맡게 되면서 말라리아에 눈을 뜬다.

환자의 검체를 얻기 위해 말라리아에 감염된 군인이 있다는 소식에 전방까지 달려갔고, 환자가 발생하면 군의관들이 먼저 그에게 연락하기도 했다.

전역 후 가천의대 미생물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말라리아 백신 개발의 꿈을 키우며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20여 편을 발표했다. 또한 박 교수는 말라리아 지원사업 현장에도 달려갔다. 대북 말라리아 지원사업은 물론이고 세계보건기구의 말라리아 자문관 역할을 맡아 콩고, 파푸아뉴기니, 라오스 등 제3세계의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비상식량을 등에 지고 밀림을 헤쳐나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11년 7월 14일 비보가 전해졌다. 세계보건기구 말라리아 국제 자문관 회의 참석차 라오스를 방문한 박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회의가 끝나면 봉사활동을 하기로 한 라오스 북부 루앙프라방에 사전답사 방문 중 꽝시 폭포에서 수영을 하다 급류에 휩쓸리고 만다. 평소 등반, 검도, 스키, 육상 등으로 다져진 몸이었지만 며칠 동안 내린 비로 불어난 물이 화근이었다. 한 달 뒤인 8월 10일, 박 교수가 제안한 휴대용 초음파 진단장비 2대가 북한에 지원됐다.



2024년 퇴치 인증 목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말라리아 발생률 1위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와 함께 알제리, 보츠와나, 카보베르데, 코모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와질란드, 벨리즈,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멕시코, 파라과이, 수리남,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부탄, 네팔, 티모르, 중국, 말레이시아가 속한다.

201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휴전선 인근 지역(경기도, 인천시, 강원도)에 말라리아 환자의 89%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17일 질병관리본부는 2024년 세계보건기구로부터 말라리아 퇴치 인증을 받는 것을 목표로 ‘말라리아 재퇴치 5개년 실행계획(2019~2023)’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로부터 말라리아 퇴치 인증을 받으려면 국외에서 말라리아에 감염된 뒤 입국한 환자를 제외하고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한 환자 수가 3년 이상 한 명도 없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질병관리본부는 2021년까지 말라리아 환자 발생을 0건으로 만들고 2023년까지 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 2024년에 세계보건기구로부터 말라리아 퇴치 인증을 받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환자 관리 강화, 매개 모기 감시 및 방제 강화, 연구개발 확대, 협력 및 소통체계 활성화에 힘쓸 계획이다.

안지현 의학박사(KMI한국의학연구소)

말라리아 예방수칙 (출처: 질병관리본부)
  - 모기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5월부터 10월까지 야간(밤 10시부터 새벽 4시)에는 야외(낚시터, 야외캠핑 등) 활동을 가능한 한 자제
  - 불가피한 야간 외출 시에는 긴 옷을 착용하여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개인 예방법을 철저히 실천
  - 옥내의 모기 침입 예방을 위해 방충망 정비 및 모기장 사용, 실내 살충제를 적절히 사용
  - 위험지역 여행 후 발열 등의 증상이 발생하면 즉시 가까운 보건소나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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