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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해독’ 천재 앨런 튜링 영국 고액권 초상인물 선정

신인호

입력 2019. 07. 16   09:31
업데이트 2019. 10. 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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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암호 해독, 2차대전 승리 견인한 전쟁영웅

처칠 명령으로 그에 대한 모든 사항은 기밀로 분류


앨런 튜링이 지폐 뒷면 초상 인물로 선정된 영국 50 파운드 지폐 도안.
앨런 튜링이 지폐 뒷면 초상 인물로 선정된 영국 50 파운드 지폐 도안.


비운의 천재로서,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암호’ 해독에 큰 공을 세운 영국의 앨런 튜링이 영국의 고액권인 50 파운드 지폐의 초상인물로 15일(현지시간) 선정됐다. 50파운드는 우리나라의 약 7만 4000원에 해당한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Bank of England 영국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50파운드 지폐 뒷면 초상인물을 공개하면서 “앨런 튜링은 탁월한 수학자로 오늘날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컴퓨터 수학과 인공지능(AI)의 아버지로, 또 전쟁 영웅으로 앨런 튜링은 광범위하면서 선구자적인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이번 선정으로 오는 2021년부터 유통되는 새 50 파운드 지폐에는 1951년에 찍은 튜링의 사진이 뒷면에 들어간다. 다른 지폐와 마찬가지로 앞면에는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초상이 새겨질 예정이다.

이 지폐는 일상 생활에 잘 쓰이지 않아 ‘부패한 엘리트의 화폐’라는 오명을 얻는 등 폐지를 놓고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영란은행에 따르면 현재 3억 4500만 장의 50 파운드 지폐, 금액으로는 172억 파운드(약 25조5000억 원) 규모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암호기 ‘애니그마’를 해독한 영국의 수학자로 유명하다. 또 1936년 ‘보편적 기계’의 개념을 창안해 인공지능(AI) 창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계의 사고 능력’을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를 창시했다. 구체적으로 튜링은 “만약 대화에서 컴퓨터의 반응을 진짜 인간의 반응과 구별할 수 없다면,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외신 종합


앨런 튜링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 미디어로그 제공
앨런 튜링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 미디어로그 제공

전쟁영웅 -> 동성애자 -> 자살·사면 -> 20세기 위대한인물 100인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독일군의 작전 상황과 폭격 정보를 미리 입수해서 대처하기 위해 ‘정부 코드·암호학교(Government Code and Cypher School, GC&CS)라는 비밀 암호 해독기관을 운영한다. 여기에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이라는 수학자가 참여해 독일군의 암호 생성기기인 애니그마의 비밀을 푸는 데 크게 기여한다.

암호해독 멤버 중 가장 젊은 그는(1912년생)는 1936년 22살 때 독일의 저명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가 낸 20세기 사상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수학을 풀어낸 바 있었다. 1940년 그는 무게 1톤에 108개의 드럼과 톱니바퀴, 펀치테이프, 전기회로 등으로 이뤄진 ‘봄베(Bombe)’라는 암호해독 기계 개발을 주도했다. 이 기계는 시간당 1만 7576가지의 가능한 암호조합을 20분 안에 잡아냈다. 하지만 이 기계는 독일군이 암호체계를 바꿔버리자 무용지물이되다시피 했다.


새로운 개발이 필요했다.

1942년 2월 그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고 1943년 12월 맥스 뉴먼교수와 설계한 새 암호해독기 ‘컬로서스(Colossus)’가 만들어졌다. 독일군도 모르게 해독된 암호는 연합군 작전에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는 그의 기계로 방대하게 수집된 정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엄청난 공훈을 세운 전쟁영웅이었다. 하지만 전후,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전쟁 중 그가 한 일 모두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말라는 강요를 받았다. 처칠의 명령으로 극비사항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1976년에서야 ‘컬로서스(Colossus)’가 ‘프로그래밍 가능한 컴퓨터’였음이, 오늘날 우리가 폰 노이만식 컴퓨터로 부르는 컴퓨터가 사실 앨런 튜링식 컴퓨터였음이 밝혀졌다.


1952년 1월 운명적인 일이 생겼다. 절도 사건을 수사하는 중에 아놀드 머큐리란 19세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것이 드러났다. 동성애는 당시 영국에서 중대범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는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수감 생활보다 동성애 성향을 치료받기 위해 여성호르몬을 맞는 처분을 택했다. 절망스럽게도 그의 몸은 변해갔다.


1954년6월 7일, 노르망디상륙작전이 있은 지 10년 하고 꼭 하루가 지나던 그날, 영국 북부 맨체스터 윔슬로우의 비내리는 저녁, 그는 자살했다. 그의 시신 옆에는 극약이 묻은, 베어 문 자국이 남아 있는 사과가 떨어져 있었다. 이 사과가 스티브 잡스의 ‘애플’ 디자인과 연관이 있다는 설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1999년 3월 29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 100인에 포함시켰다. 2009년 영국 브라운 총리는 과거 튜링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고, 2013년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튜링에 관한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수정했다. 사망한 지 반 세기가 지난 후 튜링은 자신의 명예를 찾았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은, 사실과 다른 몇몇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앨런 튜링의 스토리를 극적으로 다루었다.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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