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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한주를열며] 맥가이버 돌멩이

입력 2019. 07. 11   15:32
업데이트 2019. 07. 1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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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전문경력관·작가
박현택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전문경력관·작가

요즘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꽤 인기라는데, 30여 년 전에는 ‘맥가이버’가 인기였다. 미국에서 제작한 TV 시리즈물로,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방영됐다.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첩보원 맥가이버는 어울리지 않게도 총이나 무기를 두려워한다. 총을 사용하는 보통의 첩보원들과 달리 그는 화학이나 물리학의 기본 지식을 이용해 기발한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위급할 때마다 발휘되는 맥가이버의 임기응변에 감탄하면서도 때로는 과장이 심해 보여 ‘뻥가이버’라고도 했다.

뻥가이버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동원하지만, 이와 함께 요긴하게 써먹는 도구가 하나 있었다. ‘맥가이버 칼’이다. 본래 이 칼은 군용(Swiss army knife)으로 개발된 것이다. 1880년대 스위스군은 병사들에게 보급할 새로운 칼, 정확히는 칼 외에도 여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휴대용 공구를 보급할 계획이었다. 초기에는 깡통 따개나 드라이버 정도였는데, 반응이 좋아지면서 소형 가위나 포도주병의 코르크 따개(코르크스크루)까지 붙게 됐다. 이후 일반에도 보급되면서 일상생활은 물론 등산용이나 우주왕복선 같은 극한상황에서도 사용하게 됐다. 스위스군 디자인의 승리라 하겠다. 이 휴대용 다목적 칼이 인기를 끌면서 공항면세점에서도 판매됐지만, 9·11테러 이후 대부분 항공사가 기내용 소지품으로는 휴대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250만 년 전부터 원시인은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돌멩이를 도구로 사용했다. 구석기 시대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뗀석기다. 뗀석기란 말 그대로 커다란 바위나 돌덩이에서 떼어낸(떨어져 나온) 돌 조각이다. 인류의 진화에 따라 기능이 세분되고 용도에 맞게 모양을 적당히 다듬게 됐다. 이것은 간석기라고 한다. 초기의 단순한 뗀석기에서 적극적인 목적이 담긴 간석기로 디자인된 것이다.

뗀석기 중 ‘주먹도끼’라는 이름이 붙은 게 있다. 주먹처럼 생겼다는 게 아니라 한 손에 쥘 수 있는 정도의 크기라는 뜻이다. 높이가 한 뼘 정도 되는 돌멩이로 사냥하거나 열매를 딸 때 썼을 것이다. 위쪽이 뾰족해서 찌르기에 좋아 사나운 적을 만났을 때 자신을 방어해주는 무기가 됐을 테고, 사면이 날카롭게 날이 서 있어 짐승의 살을 바르는 데도 사용됐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돌의 아래쪽은 둥글고 매끈하게 생겨 손으로 잡기 편할 뿐 아니라 뭉툭해서 망치로 쓰기에도 그만이다. 다목적이다. 곧 맥가이버 칼? 아니 맥가이버 돌멩이다.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용도와 목적에 맞게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 환경을 변화시켜 왔다. 그런 물품이나 주변 환경은 시대적인 추이에 맞게 일정한 형식이나 스타일로 정착됐다. 특정한 기능을 잘 수행하되, 보기에도 좋은 형태를 만드는 것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의 변하지 않는 원칙은 인간의 편익을 도모하며 정서적 만족을 의도하는 것이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도구의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간을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할 줄 아는 존재로 보는 관점이다. 인간은 적절한 도구를 만들고 활용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개선해 나간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디자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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