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신 냉전시대의 ‘살라미 전술’과 ‘기정사실화 전략’

입력 2019. 07. 10   15:30
업데이트 2019. 07. 1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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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164호(한국해양전략연구소 발행)


  
정 삼 만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국 이익 보호 및 증대 목표 새 경쟁전략 모색
단계적 · 점진적 변화로 상대 기만과 목적 달성


강대국 간의 새로운 대결과 경쟁 때문에 ‘신 냉전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우리는 변화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변화무쌍한 현실 속에서 최대의 도전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최근 미래학자들이 주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인도양과 태평양? 특히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간의 해양패권경쟁, 또한 미·중간의 무역전쟁,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미·북 및 남·북 간의 회담 등에 있어 수많은 변화들이 모색 추진되고 있지만, 결과에 대해선 그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사회현상이란 결국 인간 상호 간의 정신작용의 결과라는 점에서 현상의 결과를 분석하여 필요한 대비책을 강구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이론이나 개념, 또는 깊은 사고 등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

1849년 프랑스 사상가 알퐁스 카(Jean-Baptiste Alphonse Karr)는 ‘변화하지 않기 위해 변화할 뿐이다’라는 의미심장한 역설을 제시한 바 있다. <그림 1>에서 제시하는 바와 같이 한 인간의 차원에서든 또는 한 조직의 차원에서든 아니면 한 국가의 차원에서든 수많은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데 이때의 대전제는 반드시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을 굳이 전문용어로 표현한다면 개인의 이익·조직의 이익·국가의 이익 등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는 곧 상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인데, 국가 간 관계는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경쟁적 관계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관적 관계에서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자 변화를 모색할 때 모종의 경쟁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림 2>부터 <그림 5>는 특정 상황을 지정, 비유한 것이 아니라 국가 간 분쟁이나 경쟁적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점진적 변화를 채택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소원하는 바를 달성해 나가는 이른 바 ‘살라미 전술’ 및 ‘기정사실화 전략’의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첫 상황에서 엄마는 아이에게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한다. 이에 아이는 둑에 걸터앉아 두발만 물에 담근다. 신체의 일부를 물에 담근 상태이지만 둑에 걸터앉아 있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입수한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엄마도 같은 판단이어서 특별한 지시나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그림 2>.

하지만 아이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서고 조금씩 전진하되 일정거리 이상은 나아가지 않는다. 이번엔 아이는 비록 일어섰지만 물에 젖은 신체의 부위는 전과 동일하기 때문에 아직 입수한 상태가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다. 아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엄마 역시 이번이라 해서 더 위험한 상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이에 아이는 점점 깊이를 더해가며 서서히 전진해 가다 일정 수심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본래 위치로 되돌아온다. 이러한 행위를 반복한다. 이를 지켜본 엄마로서는 이전보다 더 아이가 나아간 상황이어서 염려가 되지만 처음 수심과 나중 수심사이를 왕복하기 때문에 평균적 수심은 최초 수심보다 별 차이가 나지 않아 아직도 안전하다고 인식, 아이의 점진적 입수행위를 제지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의 이러한 반복적 왕복행위는 계속된다<그림 3 및 그림 4>.

그러다 엄마의 이 같은 의도하지 않는 방심 속에서 아이는 어느 덧 수영이 가능한 목에 찬 수심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것? 엄마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결국 체념하듯 아이에게 지시한다. “그 곳에서 수영은 하되 내 시야 밖으로는 나가지 말아라!”고<그림 5>.
  
위 예화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상대방의 인식체계를 기만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 나가는 살라미 전술과 상대의 즉각적 반응을 유도하지 않은 채 점점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해나가는 전략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를 통해 나타나는 이러한 살라미 전술과 기정사실화전략은 최근 ‘회색지대 전략’으로 불리는 남중국해서의 중국의 행위 (더 나아가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까지) 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념들일 것이다. 하지만 용어의 개념은 경험세계의 해당 현상들을 근거로 추상화(抽象化)과정을 통해 규정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 역으로 현상을 예측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마치 주사위를 다섯 번 던져 모두 6이 나왔다고 해서 여섯 번째도 6이 나오리라는 법이 없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여러 시행착오와 다양한 관점들을 통해 정확한 진로가 예측될 수 있듯이 위 그림이 제시한 비유 역시 다양한 견해나 의견을 중시하는 구성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신 냉전시대에 있어서 남중국해에서의 미·중간 분쟁이나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관련 당사국 간의 협상 등의 본질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나름의 유용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 본지에 실린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이며 본 연구소의 공식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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