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스페셜리포트

소아 사망원인 1위 홍역, 주사 2번에 완벽 퇴치

입력 2019. 06. 25   17:21
업데이트 2019. 06. 25   17:25
0 댓글

-안지현 박사의 야전병원 - 홍역


항체 없으면 90% 이상 감염
1824년 하와이 왕, 홍역 한 달 후 사망
이후 원주민 3분의 1 사망하기도
삼국시대 중국 통해 한반도 들어와

 
1960년대 전 세계적으로 백신 도입
환자 발생 87%·사망 84% 감소
한국, 2001년 국가 차원 예방접종
서태평양 지역 최초로 퇴치 성공



처음으로 홍역을 두창과 구분해 설명한 페르시아 출신의 라지.
처음으로 홍역을 두창과 구분해 설명한 페르시아 출신의 라지.


처음으로 홍역을 두창과 구분해 설명한 페르시아 출신의 라지.
처음으로 홍역을 두창과 구분해 설명한 페르시아 출신의 라지.



올 초 홍역(紅疫, measles) 환자 발생 소식이 뉴스를 장식했다. 작년 12월에도 대구에서 홍역 환자가 집단 발병했다. 주로 홍역 백신을 맞지 않았거나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20~30대였다. 올해는 안산 등 경기도에서 산발적으로 환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가 홍역퇴치국가인 줄 알고 안심하고 지냈지만 마냥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다.  


온몸에 피부 발진… 합병증으로 사망

홍역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전염력이 매우 강해서 홍역에 대한 항체가 없으면 홍역바이러스에 노출 후 90% 이상 감염된다.

1824년 하와이 왕국의 왕 카메하메하(Kamehameha) 2세와 왕비가 영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런던을 방문했다가 홍역에 걸려 한 달 뒤 세상을 떠나고 만다.

영국은 두 사람의 운구를 하와이로 보냈는데 홍역 청정지대였던 하와이에 홍역바이러스가 공식 상륙하게 됐다. 이후 1848년 하와이에 홍역, 인플루엔자 등 감염병이 덮치면서 원주민 3분의 1가량이 사망했다. 홍역의 영어 이름 ‘measles’는 흠집이라는 뜻의 중세 영어 ‘masel’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핏빛 물집이라는 뜻의 독일어 고어 ‘masla’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한반도에는 삼국시대에 중국을 통해 홍역, 두창, 발진티푸스 등 피부에 발진을 일으키는 감염병이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홍역에 걸리면 열이 나고 기운이 떨어지며 기침(cough), 콧물(코감기, coryza), 눈곱이 끼는 등(결막염, conjunctivitis)의 증상이 생긴다. 영어권에서는 첫 글자를 따서 3C 증상이라고 한다. 또한 온몸에 피부발진이 생기고 특징적으로 입의 볼 안쪽 점막에 코플릭 반점(Koplik spot)이라는 것이 생긴다. 대부분 증상이 사라지면서 회복되지만 중이염, 폐렴, 뇌염 등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외국에서는 9세기에 페르시아 출신의 라지(Al Rhazes, 865~925년)가 처음으로 홍역 의심 질환과 두창(천연두, smallpox)을 구분해 기술하였고 17세기 초에 들어서서야 확실히 홍역과 두창이 구별됐다.

1912년 미국 보건당국이 집계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홍역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6000명에 달했다.

홍역 백신이 나오기 전 미국의 거의 모든 소아는 만 15세까지 홍역을 앓았고, 매년 300만~400만 명이 홍역에 걸려 400~500명이 사망하고 4000명이 뇌염에 걸렸다.

1954년 미국 의사 피블스(Thomas Chalmers Peebles, 1921~2010년)는 사람과 원숭이의 신장세포에서 홍역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데 성공한다.

1963년 미국의 생의학자 엔더스(John Franklin Enders, 1897~1985년) 등은 홍역 백신을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게 된다. 196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도입된 홍역 백신의 효과가 매우 뛰어나 홍역 환자 발생은 약 87%, 홍역으로 인한 사망은 약 84%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신 도입 전, 소아 사망 원인 1위

미국에서 홍역 퇴치를 위해 본격적으로 예방접종을 시작한 것은 1978년부터다. 덕분에 미국에서도 1981년부터 매년 홍역 환자 발생이 80%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1989년 이미 전에 홍역 백신을 맞았던 소아가 다시 홍역이 걸리는 것이 확인됐다. 홍역 환자 5만5000여 명 중 123명이 목숨을 잃었다. 홍역 백신 1회 접종만으로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추가로 2차 접종을 결정하게 된 계기다. 노력 끝에 2000년 미국 내에서 홍역이 사라졌다고 발표하지만 2014년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홍역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홍역 환자가 600명 발생하고 만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회복기에 접어든 홍역 환자의 피를 뽑아 혈청을 주사하는 예방요법이 일부 시도되기도 했다. 홍역 백신이 도입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5세 이하 어린이의 가장 큰 사망원인이 홍역이었다. 15세 이전에 인구의 약 90%가 홍역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였다. 1965년 국내에 홍역 백신이 처음 도입되어 1983년부터 국가필수예방접종 사업에 포함됐다.

1993~1994년 전국에 홍역이 유행하자 1994년 대한소아과학회는 6세 소아에게 임시로 홍역 백신을 추가 접종하도록 권고했다. 1997년 MMR(홍역, 볼거리, 풍진) 2차 접종을 도입한 이후 홍역 환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2000년부터 2001년 사이 8개월 동안 홍역 환자가 5만5000여 명 발생해 7명이 사망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홍역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미국에서처럼 홍역 백신 1회 접종만으로 항체가 충분히 생기지 않았고 2차 접종률이 낮은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홍역 유행 국가 조심해야

정부는 ‘국가 홍역퇴치 5개년 사업’ 계획을 세워 8~16세 학생 580만 명을 대상으로 홍역 일제 예방접종을 실시했고, 초등학교 입학 전 홍역 백신을 맞았는지 확인하도록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1년 7월 이후 홍역 환자 발생이 급격히 감소해 2002~2006년 인구 100만 명당 1명 이하로 발생이 줄게 되었고 2006년 11월 7일 우리 정부는 서태평양 지역에서 최초로 홍역을 퇴치했다고 선언했다. 이후 산발적으로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을 통해 홍역이 발생하곤 했다.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우리나라를 홍역퇴치국가로 인정했다.

생후 15개월에 1회만 접종하던 홍역 백신을 1997년부터 2회 접종(1차는 생후 12~15개월에, 2차는 만 4~6세에)으로 변경하면서 2회 모두 접종한 사람에서 홍역 항체가 99.9% 생기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1회 접종에서 2회 접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던 일부 연령은 대부분 1회 접종만 한 셈이어서 홍역에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홍역에 대한 항체를 조사연구한 결과 홍역에 대한 면역력이 가장 낮은 연령대는 1995~1998년에 출생한 사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전후에 태어난 사람은 홍역에 걸려 면역이 생겼거나 홍역 백신 2회 접종으로 충분한 면역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가 홍역퇴치국가라고는 하지만 잊을 만하면 홍역 환자 뉴스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해외에서 입국한 홍역 환자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홍역은 잠복기가 3주로 길어서 감염이 되더라도 당장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피부발진이 생기기 전에도 다른 사람에게 홍역을 옮길 수 있기 때문에 홍역이 유행하는 나라에 방문한 사람이 입국해 홍역을 퍼트릴 위험이 있다. 일부 국가와 지역에서 홍역이 유행하면서 미군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4월 19일자 ‘밀리터리 타임스’(Military Times)에 따르면 올해 미군에서 공식적으로 홍역 환자 발생은 없었지만 워싱턴주의 브레머턴 해군병원 등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1917~1918년 미 육군에 홍역이 유행하면서 9만5000명 이상 감염돼 3000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우리 군의 사정은 어떠할까. 모든 군 입소 장병을 대상으로 홍역, A형 간염 등 백신을 예방접종하면서 최근 몇 년간 홍역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백신 예방접종만으로 대부분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위 후진국병으로 여겨지는 홍역과 A형 간염 등이 다시 유행하는 데에는 백신을 꺼리는 이유도 있다.

몇 해 전 세상이 떠들썩했던 이른바 안예모(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 안아키(약 안 쓰고 우리 아이 키우기) 등 잘못된 건강정보가 자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안지현 (의학박사, KMI한국의학연구소)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