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병영칼럼

[병영칼럼] 1월부터 6월까지

입력 2019. 06. 21   17:44
업데이트 2019. 06. 2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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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

국방FM 작가


꽤 오랫동안 ‘자기 글’ 쓰기를 포기했었다. 내 글을 쓴다는 건,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되는 문을 억지로 여는 일이었다. 수많은 감정으로 통하는 무시무시한 문, 열어보면 끝없는 회전 계단이 어지럽게 있었다.

괴로울 때마다 글을 써왔던 오랜 습관 때문이었다. 몸은 화를 내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입을 열어 표현하는 데 서툴렀다. 유일하게 키보드를 두드릴 때 숨 쉴 만했고, 그래서 나중엔 숨 쉬기 위해 억지로 괴로움을 찾아 글을 쓰는 일이 늘었다.

‘키보드 디톡스’, 삶의 독소를 풀려다 도리어 없는 독소를 쌓는 일이었다. 절필할 수밖에 없는 분명하고 확실한 이유였다.

그런데 2019년의 1월부터 6월까지는 절필은커녕 참 열심히 썼다. 국방일보 병영칼럼 열두 번을 쓰고, 열두 번 이상의 달라진 나를 봤다. 처음엔 두려웠지만, 이제 글쓰기는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작업이 됐다.

얼마든지 유쾌하고 행복할 수 있었는데, 늘 심각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일종의 글쓰기 트라우마를 만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부지런히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그것이 고통으로 다가올 때, 분명 이 글을 같이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들 있을 것이다. 도망가고 싶어도 다시 붙잡혀 올 수밖에 없는 현실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 말이다. 확실한 건, 영원한 것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거다. 입대가 있으면 제대가 있고, 입사가 있으면 퇴사가 있듯, 따지고 보면 세상엔 모두 끝이 예고된 것들뿐이었다. 다 잠시뿐이라고 생각하면, 이마저도 소중해서 금세 웃을 수 있다.

그렇게 뼈아프게 웃다 보니 2019년의 6월이 왔다. 1월부터 6월까지, 고작 반년인데 부지런한 계절은 벌써 세 벌의 옷을 갈아입었다. 조금 있으면 뉴스는 또 ‘백 년 만의 폭염, 올 들어 최고의 무더위’ 타이틀을 앞세우며 기록 갈아치우기에 바쁠 것이다. 방심하는 사이, 역대 최고급 한파를 핑계로 패딩과 부츠 같은 것들을 사고 있는 내가 있을 거고, 그렇게 나이테 하나를 더 두른 뱅뱅 도는 우리가 있을 것이다.

1월부터 6월까지, 쓰는 건 늘 막막했지만 역시나 더 쓰고 싶다. 쓰디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성이 생겨 조금 더 독해질 수 있을 것 같다. 1월부터 6월까지, 영화 ‘기생충’ 속 기택처럼 살았고, 실제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던 이전의 날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었다. 출퇴근 길 마이카에서 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일, 작가계의 장윤정을 꿈꾸며 행사를 뛰듯 일터를 오가는 일, 다 계획하지 않아서 이룰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다.’ 그래서 7월부터 12월까지도 더욱 계획 없이 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웬만한 건 다 덤이고, 기대하지 않았기에 웬만한 일에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늘 무감각한 척하지만, 언제든지 감정적이 되고 싶은 인간이니까. 다치지 않고, 서로 다치게 하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1월부터 6월까지 바쁘게 따라와 준 눈과 감상들에 감사하다. 작은 것에도 크게, 혼자 있어도 함께 있다고 느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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