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우리부대 동아리 집중탐구

계급, 성별 잊은 스파링 한 판 "자신감 찾았다"

조아미

입력 2019. 06. 20   17:31
업데이트 2019. 06. 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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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해병대6여단 주짓수 동아리


백령도 내 해병대·해군·공군과 민간인 참여
동아리 회장 이상준 상사, 간부 4명과 시작
비인기 종목 편견에도 회원 늘어 37명 참여 


이정구 상사, 주짓수 바탕 학생들에 호신술 재능기부
“예절이 가장 중요해… 상대방 존중하는 운동” 


해병대6여단 주짓수 동아리원들이 ‘주짓수의 꽃’인 스파링에서 공격과 수비를 펼치고 있다.
해병대6여단 주짓수 동아리원들이 ‘주짓수의 꽃’인 스파링에서 공격과 수비를 펼치고 있다.
 
매트 위에는 계급이 없다. 남녀도 없다. 오직 열정뿐이다. 서북도서 백령도에 주짓수 열풍이 불고 있다.


‘위잉~ 위잉~’. 두꺼운 대피호 문을 통과해 계단을 따라 한참 내려가니, 진공청소기 소리가 들린다. 밖에서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밝은 조명과 경쾌한 음악이 즐거움을 더한다. 깔끔하게 도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매트를 닦고 정돈하느라 분주하다. 이들은 해병대6여단의 주짓수 동아리원들. 매트 위에서 뒹구는 운동인 만큼, 청결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운동은 매번 매트와 수련장을 청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동아리 회장 이상준(부 266기) 상사는 “운동 전에는 흡연하지 마십시오!” “손톱은 짧게 깎아주세요”라고 강조했다.


조아미 기자 lgiant61@dema.mil.kr 

사진 제공=이강혁 상병


해병대6여단 주짓수 동아리원들이 스파링을 하기 전에 인사를 나누고 있다. 스파링 기술의 하나인 잡기와 뜯기, 상위 포지션 유지, 시저스 스윕을 선보이고 있다.
해병대6여단 주짓수 동아리원들이 스파링을 하기 전에 인사를 나누고 있다. 스파링 기술의 하나인 잡기와 뜯기, 상위 포지션 유지, 시저스 스윕을 선보이고 있다.




“자~ 큰 원 만드시고, 몸 풀겠습니다.”

이 상사가 말하자 모두 매트 위에 모였다. 시작은 간단한 스트레칭. 다리를 찢고, 허리를 쭉 펴는 등 본격적으로 스트레칭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작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준비 운동은 무려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구르기, 낙법 등 부상 방지를 위해 신체 모든 부위도 골고루 풀어줬다. 스파링의 움직임을 잘하기 위해 만든 드릴 연습과 지도사범의 기술 지도도 이어졌다. 드릴 연습은 숙련자와 비숙련자가 짝을 이뤄 진행됐다. 숙련자가 비숙련자를 도왔다.

드디어 ‘주짓수의 꽃’인 스파링이 펼쳐졌다. 공격과 수비로 나뉜 상대가 서로 유리한 자세를 잡기 위해 탐색전을 펼쳤다. 서로를 밀어내고, 당기고, 졸랐다. 두 명이 뒤섞여 구르면 구를수록 이마에 맺힌 땀방울도 점점 굵어졌다. 수련장에는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5분이 흘렀다. 스파링이 끝난 이들은 “참으로 긴 5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군 장병뿐만 아니라 백령도 주민도 참여

주짓수 동아리에는 백령도 내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뿐만 아니라 해·공군 장병, 백령도에 거주하고 있는 민간인도 참여하고 있다.

동아리가 만들어진 계기는 이렇다. 회장인 이 상사는 전 근무지인 포항에서 꾸준히 주짓수를 수련해 왔다. 2017년 6월, 백령도로 근무지를 옮긴 이 상사가 수련을 이어가기 위해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도서 지역의 특성상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 상사는 민간 시설과 군 시설 등 장소를 수소문한 끝에 찾는 이가 많지 않은 백령도 진촌리 독신자 숙소 체력단련실을 이용하게 됐다. 장소가 마련됐지만,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매트가 필요했다.

이 상사는 홀로 마을회관, 체력단련실, 창고 등을 돌며 남거나 버려진 퍼즐 매트를 찾아 모으고, 씻어 체력단련실에 배치했다.

드디어 같은 해 7월 5일, 지금은 전역한 6여단 최강대대 강동욱 중사 등 간부 4명과 함께 첫 수련을 시작했다. 이후 배우고자 하는 장병이 늘어나고 뜻을 함께하는 분들의 도움으로 유도 매트도 추가로 확보했다. 동아리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고, 회원도 늘기 시작했다. 특히 SNS를 통해 백령도 민간인들도 조금씩 관심을 보이며 참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백령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우신애(36) 씨의 합류는 주짓수 동아리 발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우씨는 더 나은 운동 환경을 마련하고 민간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백령면에 장소 협조를 요청했다. 다른 생활 체육에 비해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처음에는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백령면도 군과 주민이 함께 긴 시간 활동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북포리에 위치한 대피호 사용을 허가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3일, 동아리는 비좁은 독신자 숙소 체력단련실에서 넓은 북포리 소재 대피호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2년의 시간 동안 동아리는 발전했고, 지도진도 보강됐다. 회원도 점점 늘어 현재 6월 기준 37명이 동아리에 참여하고 있다.

동아리는 미 해병대 무도 프로그램(MCMAP)과 FBI·CIA의 필수 종목인 주짓수를 해병대 장병이 자발적으로 수련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으며, 도서 내 장병과 주민들이 함께 무도를 수련하면서 자연스럽게 민·군의 협력과 신뢰를 끌어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초급 간부들의 퇴근 이후 건전한 사생활을 유도하고 최북단 도서 근무에 따른 고립감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회원들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주 3회 이상, 2시간씩 주짓수를 수련하고 있다.


최강대대 간부들 주축으로 섬세한 지도

동아리는 6여단 최강대대 간부들이 주축이 돼 이끌고 있다.

동아리 회장이자 지도사범인 이상준 상사(퍼플벨트)와 수석사범 이정구(부 250기) 상사(브라운벨트), 보조사범 강원경(부 303기) 상사(블루벨트) 모두 최강대대 소속이다.

회장인 이상준 상사는 해병대 교육훈련단 공수교육대 교관 및 신병교육대 훈련교관 경력을 갖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훈련교관 특유의 집중력을 가지고 섬세한 지도를 하고 있다.

이정구 상사는 실전 주짓수를 바탕으로 백령 중·고등학교에서 학생 대상 호신술 재능 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강 상사는 종합격투기, 태권도 사범 등 무도 수련 경력이 있다. 해병대 고유의 무술인 ‘무적도’ 교관이기도 하다.


“벨트에 그랄 한 번씩 감을 때마다 초심 되새겨”

포병대대에서 중대 행정관 직책을 수행하는 유진(부 288기) 상사는 주짓수를 배우며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유 상사는 “행정관이라는 직책도 있고, 원래 자존심이 강하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주짓수를 하며 많은 부분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주짓수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예절’”이라면서 “스파링을 하기 전에 반드시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고, 끝나고도 인사를 해야 하는 등 상대방을 존중하게 되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우신애 씨는 “여성이 남성을 이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고 밝혔다. 이날도 우씨는 남성을 상대로 대등한 스파링을 선보였다. 우씨는 “예전엔 여군이 몇 분 있어서 같이 운동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동아리에서 유일한 여성 회원이 됐다”면서 “여군들이 많이 와서 함께 스파링하고 싶다”고 여군들의 동아리 참여를 권유했다.

우씨는 주짓수의 또 다른 매력 가운데 하나인 ‘그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랄은 주짓수 벨트에 감는 하얀 줄이다. 흰색 반창고를 감아 붙이며, 수련 기간에 따라 그랄을 4개까지 감은 후 다음 벨트로 승급할 수 있다. 그랄은 수련한 곳의 지도자가 판단하고, 직접 감아준다. 그는 “그랄을 한 번씩 감을 때마다 처음 수련했던 마음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면서 “그랄 위의 날짜는 직접 썼다. 수련할 때마다 때가 타고 해어진 그랄과 날짜를 보며 동기 부여를 하곤 한다”고 전했다.

이상준 상사는 주짓수 동아리를 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도 털어놨다. 그는 “동아리원 중 늘 조용히 수련만 하시는 소대장님이 계셨는데 묵묵히 수련하시더니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며 “얼마 전 소대장님으로부터 운동하면서 자신감도 찾고 실력도 늘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아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랄은 주짓수 벨트에 감는 하얀 줄이다. 일부 수련자들은 승급 때마다 그랄에 날짜를 적어서 동기 부여를 한다.
그랄은 주짓수 벨트에 감는 하얀 줄이다. 일부 수련자들은 승급 때마다 그랄에 날짜를 적어서 동기 부여를 한다.


● 주짓수는?

생소한 무술이었던 주짓수가 3~4년 전부터 국내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호신술로 훌륭할 뿐만 아니라 체력 증진, 다이어트 효과까지 알려지면서 여성과 아이들 등 다양한 계층에서 참여하고 있다.

주짓수는 일본의 전통 무예인 유술(柔術)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파된 유러피언 주짓수와 브라질 전통 격투기인 발리 투두가 결합한 브라질리언 주짓수로 나뉜다. 메치기, 유리한 포지션을 선점해 팔다리 관절 꺾기, 목 조르기 등의 기술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실전 격투의 성향이 강하다. 유도복과 유사한 경기복을 입고 경기하며 화이트·블루·퍼플·브라운·블랙 벨트 순으로 승급한다.

조아미 기자 < joajo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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