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육군

그 많던 ‘상어’는 누가 다 질식시켰을까?

입력 2019. 06. 17   16:36
업데이트 2019. 06. 1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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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헌병이 들려주는 인권이야기 < 9 > 상어의 눈물


‘죠스’ 흥행에 애꿎은 상어 희생
작가, 죄책감에 상어보호 운동 나서 

 
최근 병영 내 대상관 범죄 지속적으로 늘어
단순히 ‘상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영화 속 ‘상어’로 인식해선 안돼
부하·상관 구분 없이 인권은 존중돼야  


김경호 중령 육군50사단 헌병대장
김경호 중령 육군50사단 헌병대장

1975년 개봉한 ‘죠스’는 식인 백상아리와 인간 간의 핏빛 사투를 그린 영화로 영화 사상 최초로 흥행수입 1억 달러를 돌파해 ‘블록버스터’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는 등 할리우드의 지형을 바꾼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죠스’는 해양소설 전문작가 피터 벤츨리가 쓴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기도 한데 이미 소설로 200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피터 벤츨리는 영화까지 흥행해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움켜쥐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는 전 세계에 보고된 상어 400여 종 중 인간을 공격하는 상어는 3종에 불과하고 여타의 맹수에 비하면 공격성이 크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상어는 식인을 위해 일부러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욱이 영화 개봉 이후 상어 불법 포획이 대폭 증가해 북대서양에서만 백상아리의 수가 79%나 감소했다는 말에 충격을 받게 된다.

모든 것이 자신이 쓴 소설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빠진 벤츨리는 이후 평생에 걸쳐 상어보호 운동가로 활동하게 되는데 어느 날 한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나만의 상상에 빠져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소설을 썼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절대 『죠스』를 쓰지 않을 것이다.”

멀쩡한 상어를 식인하는 악의 축으로 만들어서 수많은 상어가 희생됐음을 자책한 말이다. 대중에게 각인되는 이미지! 참 무섭다.

사실 통계적으로도 상어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은 전 세계 연간 10명 이하인 데 비해, 개에 물려 사망하는 사람은 2만5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럼 개가 악의 축이며 멸종시켜야 할 동물인 것인가? 굳이 상어의 잘못을 말한다면 해양생물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덩치가 크고 항상 입을 벌리고 다녀 위협적이라는 사실뿐이다. 아가미가 약한 상어가 입을 벌리는 것은 숨을 쉬기 위함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인권 존중은 약자에게만 해당될까?

어느 사회든 조직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룰’이 필요하다. ‘룰’이 없다면 안정적이지 못할뿐더러 조직이 추구하는 성과 구현도 어렵게 된다. 이런 견지에서 우리 군도 엄격한 기준이 존재한다. 더욱이 무력을 관리하고 유사시 적과 싸워야 하는 집단인 만큼 여느 집단보다도 엄격하다. 이에 ‘군인사법’에서는 조직관리 차원에서 계급을 정해 군인의 서열도 매기고 있다. 우리나라는 신분제 국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군은 계급과 서열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고 응집력을 높이며, 위기 시 통제력 발휘를 극대화하고 있다. 대(對)상관 범죄를 엄단하고, 군인에게 있어 계급이 존중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필요에 의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최근 병영 내에서 대상관 범죄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대다수가 상관모욕이며 주로 병사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데, 문제는 이것을 ‘범죄’로 인식하기보다는 ‘인권’이라는 인식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중대장이 특정인에게 포상휴가를 주면 중대장에 대한 모욕적 언사와 함께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과거보다 많아졌다.

통상 인권은 약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사실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권리다. 그리고 인권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현 시대적 조류 속에서 부하는 일방적 약자가 아니며 상관도 강자가 아니다.

우리가 부하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듯이 상관의 인권도 존중돼야만 한다. 상관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치 ‘죠스’에 등장하는 상어처럼 인식한다면 이 또한 인권침해가 된다.

‘세계인권선언’ 제29조를 보면 “모든 사람은 공동체에 대하여 의무를 가진다. 또한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도 당연히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인권을 주장한다면 권리에 따르는 의무도 다해야 함을 내포한 말이다. 필자는 응당 권위주의를 싫어한다. 그러나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권위는 필요하다. 만일 지휘관이 권위를 잃거나 위축된다면 그 부대는 산으로 올라갈 것이다. 지휘관은 전승의 요체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휘관의 자질을 리더십 차원에서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조직의 존재 목적을 상기, 부하들도 팔로어십을 ‘가치’로 인식해야 할 때가 됐다. 물론 부하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기 위한 지휘관의 책임과 노력이 필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휘관 이·취임식에 가보면 “대과 없이 부대를 지휘해 감사하다”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되는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대과가 없다면 훌륭하게 부대를 지휘한 것인가? 지휘관은 구성원의 역량 향상과 조직을 성장시키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무분별한 흔들기는 지양해야 한다.

상어 포획은 잔인하다. 포획자는 ‘샥스핀’ 요리 재료로 사용할 지느러미만 자르고 상품 가치가 없는 몸통은 바다에 버리는데 부레가 없는 상어는 가라앉게 된다. 또한 상어는 헤엄을 쳐야 호흡이 가능한데 지느러미가 없으니 헤엄도 치지 못해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에서 결국 질식사하고 만다. 혹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생명인 우리 군에서도 부지불식간에 상관을 상어처럼 질식시켜 버리는 것은 아닌지, 한번 곱씹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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