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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소정 병영칼럼] 오답노트

입력 2019. 06. 14   14:12
업데이트 2019. 06. 1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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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소정 벌라이언스 대표·교육전문가
제갈소정 벌라이언스 대표·교육전문가


학창시절의 친숙한 단어 ‘오답노트’. 왜 그 문제를 틀렸는지 정확하게 알고 넘어가기 위해 작성한다. 고등학생 때 좋은 성적을 내는 비법이 오답노트라 해서 만들어 봤으나, 틀린 문제가 너무 많아서 오리고 붙이다가 시간이 다 갔다. 결국, 수능도 망쳐버렸다. 인생을 통째로 실패했다는 소심한 마음으로 스무 살을 맞이했다.

좋지 않은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오답노트는 모르는 문제도 그냥 넘기지 말고, 어느 부분을 모르는지, 왜 틀렸는지, 정답은 무엇인지, 거기에서 알아야 할 개념은 무엇인지 스스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훌륭한 학습방법이다. 더 나은 삶, 주체적인 삶을 꾸리기 위해서도 오답노트는 필요하다. 어른이 되어 만드는 오답노트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 실패들이다. 자신이 찍어온 성공과 실패의 점들을 돌이켜보며 선으로 잇는 작업은 진정한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학과 공부와 다르게 인생은 정답과 오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누가 맞고 틀리고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 당시에는 분명 최고의 선택이었는데, 다시 떠올리면 ‘2019 실패박람회’의 ‘이불킥 공모전’에 나갈 법한 것들이 태반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터, 실수들을 떠올려 기록하고 얘기하는 일은 더더욱 싫은 법이다.

외항사 승무원으로 일하다 초등 교사가 되기 위해 교대 입학을 결심했을 때, 사실 회사를 그만두는 것보다 수능시험을 다시 보는 게 더 두려웠다. 어린 시절의 두려움을 하나하나 마주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패를 실패로 남겨두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에 기쁘기도 했다.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었던 실패에 재도전하는 것에 대한 희열을 처음 느낀 이후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끊임없이 실수하며 앞으로도 계속 좌절하겠지만, 이런 자신을 보듬어주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예전에는 상처를 피해 도망치기만 했고, 잘하는 것이나 성공을 발견하는 것만이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해낸 것에 초점을 맞추자 스펙이나 환경에 대한 비교의식만 심화시켰고, 결국 스스로를 부족하고 하찮은 사람처럼 여기게 됐다.

대학을 두 번이나 간 것, 한 분야에서 진득하니 오래 일하지 못한 것, 인생을 돌아왔다는 것이 내겐 가장 큰 콤플렉스였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여러 경험을 해본 것에 후회는 없지만,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만의 업(業)을 찾기 위해 겪은 시행착오들이 하나를 쭉 잘했더라면 경험해보지 못할 이야기를 만들어줬다. 내 부끄러운 오답들이 나만의 개성이 된 것이다.

자신을 알아감에 있어 화려한 성공이나 장점에 주목해도 왠지 부족하다면 마음속 오답노트를 펴보자. 무겁고 어렵게만 받아들이는 실패를 소중한 자산으로 여길 때,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나만의 강력한 디딤판이 된다. 또한, 실패를 겪고 나서도 다시 도전하고 싶은 대담함이 생기는 분야는 분명히 있다. 그 적성의 실마리로부터 자신의 한계를 점점 넓혀갈 때 비로소 그대의 잠재력은 깨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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