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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주식거래자만 수수료 무료? 누구나 ‘0’!..금융계 의적, 월가 탐욕에 맞서다

입력 2019. 06. 12   15:55
업데이트 2019. 06. 1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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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모바일 증권회사 ‘로빈후드’


이민가정 출신 창업자 테네브·바트
경제 불황에도 금융사 호황에 분노
“모두의 금융 플랫폼 건설” 의기투합
75번의 거절 끝에 구글 벤처스 투자
계좌개설부터 거래까지 간편앱 출시
1년 만에 고객 100만 명 인기 폭발

로빈후드의 투자 화면. 주식거래 수수료가 무료이며 몇 번의 터치만으로 간단히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알록달록한 색 대신 일부 색으로 간편하게 디자인해 젊은 층이 더욱 ‘간단하게’ 느끼게 했다. 이런 간편함에 이끌려 젊은 20대 고객들을 사로잡았다.  로빈후드 제공
로빈후드의 투자 화면. 주식거래 수수료가 무료이며 몇 번의 터치만으로 간단히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알록달록한 색 대신 일부 색으로 간편하게 디자인해 젊은 층이 더욱 ‘간단하게’ 느끼게 했다. 이런 간편함에 이끌려 젊은 20대 고객들을 사로잡았다. 로빈후드 제공




2011년 9월 17일. 미국 경제의 상징이자 세계적인 도시인 뉴욕이 시위대로 뒤덮였다. 경제 불황으로 인한 서민들의 곤궁 속에서도 대형 금융사들은 호황을 누리고 또 퇴직금 잔치를 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였다. 이른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구호를 외치며 금융의 상징인 ‘월스트리트’를 점령한 이 시위는 전 세계적으로 ‘탐욕’이란 프레임이 덧씌워진 금융산업에 의문점을 제기했다.

마침 뉴욕에 있던 두 청년에게 그 시위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헤지펀드(단기이익을 목적으로 국제시장에 투자하는 개인모집 투자신탁)와 은행을 위한 고빈도 매매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던 이들은 고액 매수자들이 주식 수수료를 면제받으며 그들의 자산을 더욱 불린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최상위 1%에 분노하는 99%의 대중을 보며 모두를 위한 금융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은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동했다. 둘의 첫 만남을 이뤄준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역사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두 청년은 이민가정 출신이었다. 블라디미르 테네브는 불가리아계 미국인으로 5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워싱턴DC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님의 아메리칸 드림을 보란 듯이 이뤄주기라도 하듯 손꼽히는 미국 내 명문고인 토머스제퍼슨과학고를 졸업한 후 스탠퍼드대 수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박사과정에 진학하지만, 바이주 바트를 만나 졸업 대신 창업을 택하게 된다.

바트 역시 인도계 이민가정에서 태어났다. 교육열이 높았던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스탠퍼드대에 입학해 물리학을 전공했고 수학으로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숫자에 노련한 이들은 금융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그리고 택한 사업은 ‘주식거래 수수료 무료’ 앱이었다. 고액 자산가 혹은 금융산업가들이 독점하고 있던 금융산업을 혁신적으로 바꾸고 싶었다. 당시 4~7달러를 건당 수수료로 부과하던 모든 업계에 충격적인 등장이었다.  


로빈후드의 공동 창업자인 블라디미르 테네브(왼쪽)와 바이주 바트. 이들은 스탠퍼드대에서 첫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회사 지분의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어 로빈후드의 기업가치가 8조 원을 넘어선 지금, 일찌감치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로빈후드 제공
로빈후드의 공동 창업자인 블라디미르 테네브(왼쪽)와 바이주 바트. 이들은 스탠퍼드대에서 첫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회사 지분의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어 로빈후드의 기업가치가 8조 원을 넘어선 지금, 일찌감치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로빈후드 제공


하지만 서비스의 실현을 믿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무려 75번이나 거절을 당하고 난 뒤에야 구글 벤처스로부터 간신히 300만 달러(약 35억 원)를 지원받아 개발에 들어갔다. 2년 반의 개발을 거쳐 2015년 첫 앱을 내놨다. 이름은 ‘금융업계의 의로운 사람’을 뜻하는 ‘로빈후드’로 결정했다. 주식거래 수수료가 무료인 회사가 등장한다는 소식에 시작 첫날 하루 만에 400명이 모여들었다. 30일 만에 10만 명, 1년 만에 100만 명이 모였다.

주 고객층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이들의 평균연령은 26세였다. 그중에서도 25%는 주식거래가 처음인 사람들이었다. 과거 계좌를 개설하는 것조차 버거워했던 많은 이들이 간편성 때문에 로빈후드에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로빈후드는 수수료가 무료인 것은 물론 현금 잔고도 필요 없었다. 20분 정도면 계좌개설에서 주식거래까지 모든 것이 가능했다. 로빈후드는 일부 유료 서비스에서 수익을 냈고 또 영업점 미설치, 불필요한 리서치 보고서 등을 최소화해 비용을 절감했다. 여기에 이율 3%인 파격적인 예금상품도 만들어 미국인들의 돈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현재 로빈후드는 미국 전역의 소매점 7만여 개와 계약을 맺고 ‘수수료 없는’ 전용 입출금기까지 설치를 완료한 상태다.


2011년 9월, 월가를 점령했던 ‘월가 시위대’. 이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에 비해 점점 더 탐욕스러워지는 금융기관의 횡포를 고발하며 70여 일간 시위를 벌였다. 로빈후드의 창업자들은 이를 계기로 ‘주식거래 수수료 무료 앱’을 떠올리고 창업했다. AP 제공
2011년 9월, 월가를 점령했던 ‘월가 시위대’. 이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에 비해 점점 더 탐욕스러워지는 금융기관의 횡포를 고발하며 70여 일간 시위를 벌였다. 로빈후드의 창업자들은 이를 계기로 ‘주식거래 수수료 무료 앱’을 떠올리고 창업했다. AP 제공


2013년 설립된 로빈후드의 기업가치는 약 70억 달러(약 8조3000억 원)에 달한다. 유명 래퍼인 제이지·스눕독은 물론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들도 앞다퉈 투자를 완료했다. 로빈후드는 올해 안에 뉴욕 증시에도 상장한다는 계획이다. 이들로 인해 이제 미국의 증권거래 수수료는 대부분 인하됐다. 그 덕분인지 한국에서도 ‘주식거래 수수료 무료’라는 CF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들이 가져온 새로운 나비효과다.

텐트까지 치며 혹독한 시위를 벌였던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이를 위해 모두를 위한 플랫폼을 내놓은 청년들의 계획은 명확했다. 이후 이들이 가져온 후폭풍은 어찌 보면 금융위기 때보다 더 전통 금융산업을 흔들고 있다. 로빈후드는 이제 암호화폐 시장에도 진출했다. 이들에 의해 금융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더 간편해졌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는 로빈후드의 창업자들이 걸어갈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송지영 IT/스타트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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