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병영칼럼

[이시우 병영칼럼] 볶아대기

입력 2019. 06. 12   14:34
업데이트 2019. 06. 1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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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 우 
에반더피셔 대표·작가
이 시 우 에반더피셔 대표·작가


오랫동안 대학로를 지켜온 연극배우 형님을 만나 뜻밖의 푸념을 들었다. TV나 스크린에서는 활동하지 않고 묵묵히 연극무대만, 그것도 정극(正劇)만 하는 중견 배우라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지만 묵직하고도 깊이 있는 연기로 실력을 인정받는 배우였다. 그 형님이 내뱉은 깊은 푸념의 내용은 이랬다. 막 배우생활을 시작했던 30년 전에는 선배들이 후배들을 달달 볶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달달 볶이다 보면 자신이 가진 내면의 감수성들, 잠재의식 속의 감정들, 무의식 속의 숨겨진 자아들이 나와서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당시 선배들의 철학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배운 형님은 자기의 후배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대했는데, 후배들과의 관계가 좋아지기는커녕 그의 방식에 상처 입은 후배들이 불편해하고 꺼리는 기피대상 1호가 됐다고 했다. ‘고맙지만 불편한 선배’ 이것이 후배들이 보는 형님의 지금 모습이라며, 한 번 이렇게 되자 후배들과의 관계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라고 했다. 형님의 이야기를 듣는 필자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좋아하고, 마음이 연약해 누군가에게 해코지하기는커녕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봐도 좀처럼 대항하거나 바른 소리를 하지 못했다. 이런 필자의 모습에 부모님은 많이 답답해하셨고 속상해하셨다. 내 소심한 성격을 뜯어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싸움 좀 한다는 동네 아이들을 시켜 내게 시비를 걸어 싸우게 했다. 당황한 나는 맞서 싸우지 못하고 어이없는 싸움질에 날마다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친구들이 갑자기 돌변해 내게 주먹질을 해대니 고통도 그런 고통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강해졌는가? 그건 아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 부모님과 친구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딜(?)을 알게 됐고, 오히려 나를 달달 볶는 부모님의 사랑 방식으로 인해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필자는 이를 극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깨는 볶을수록 고소한 냄새가 난다. 그렇다면 사람도 볶을수록 좋은 향기가 날까? 깨도 너무 볶으면 타서 쓴맛이 나는 것처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볶으면 결국 쓴맛만 남는다. 우리 인생의 쓴맛은 실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볶아댄 인생의 상처에서 난다.

우리의 삶 전체를 표현할 때 보통 ‘일생’이라는 단어를 쓴다. 한자로는 ‘一生’이라 쓰고, 영어로는 ‘whole life’라고 한다. 한 번뿐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삶이라는 의미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사실 확률로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희박한 만남이다. 이 끝이 없는 우주 속, 2조 개 정도라고 예상만 하는 수많은 은하계에서, 갤럭시라고 명명한 우리 은하계 속, 거기에 속한 태양계에서, 그중 지구라는 행성의 237개 나라 중 대한민국 사람 중 한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는 것이다. 정말 엄청난 확률 속에서 우리는 만났다. 볶아야 할까? 사랑해야 할까?

혹시 ‘하필이면 그 엄청난 확률을 뚫고 이 사람을 만났는지…’ 하고 한숨부터 나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당신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오는 사람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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