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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영광의 흔적... 위풍당당한 그 모습 어디 가랴

조진섭

입력 2019. 06. 04   17:04
업데이트 2019. 06. 0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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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순례 <끝> 충남 보령시 충청수영성/ 남포읍성/ 보령읍성


외세 침략 대항한 국난극복의 현장

바다 한눈에 보이는 ‘영보정’ 복원
해산루·성벽 일부도 제 모습 찾아
옛 성곽 보존 위해 연구·발굴 지속


충청수영성의 전경. 왼쪽 언덕으로 복원된 성벽이 보인다. 성 앞쪽 오천항에 낚싯배들이 가득하다. 이경원 기자
충청수영성의 전경. 왼쪽 언덕으로 복원된 성벽이 보인다. 성 앞쪽 오천항에 낚싯배들이 가득하다. 이경원 기자

우리나라의 성곽을 찾아다니다 보면 유난히 충청도 쪽에 잘 보존되거나 복원된 성곽이 많다. 공주 공산성, 보은 삼년산성, 청주 상당산성, 서산 해미읍성 등은 규모도 크고 잘 복원된 성곽들이다.

이번에도 충청도인 보령을 찾아 충청수영성과 남포읍성, 보령읍성을 소개한다. 아직 전국에 남아 있는 성곽들이 많지만 지면을 통해 소개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어 3년여에 걸쳐 게재된 성곽순례를 이번에 끝을 맺는다. 아쉽고 어려운 결정이지만 지금도 많은 지자체에서는 우리 옛 성곽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기 위해 연구와 복원에 지속적으로 나서고 있어 두 번째 시즌의 성곽순례를 떠날 날이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조진섭/사진=이경원 기자 

 

충청수영성 안에 있는 정자 ‘영보정’에 오르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영보정은 1504년 수사 이량이 처음 지었고 계속 손질하며 고쳐왔다고 한다. 충청수영 폐영 후 없어져 터만 남아 있었지만 2015년에 복원됐다. 이경원 기자
충청수영성 안에 있는 정자 ‘영보정’에 오르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영보정은 1504년 수사 이량이 처음 지었고 계속 손질하며 고쳐왔다고 한다. 충청수영 폐영 후 없어져 터만 남아 있었지만 2015년에 복원됐다. 이경원 기자


충청 수영성

5대 수영 중 하나…조선시대 수영성 연구의 사료로 큰 가치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최고 사령부 역할을 했던 충청수영은 전라좌수영·전라우수영·경상좌수영·경상우수영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수영 중 하나다. 충청수영성을 제외한 나머지 수영성들은 대부분 일부 성곽만 남아 있거나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태여서 조선시대 수영성 연구의 사료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물론 충청수영성도 완벽하게 복원된 상태가 아니라 일부만 남아 있지만, 성내에는 절경을 자랑하는 정자 ‘영보정(永保亭)’과 충청수영 관내의 빈민 구제를 담당하던 ‘진휼청(賑恤廳)’, ‘객사(客舍)’, ‘삼문(三門)’ 등이 제 모습을 찾았다. 또한 수군절도사가 생활하던 내아(內衙) 영역에 대한 발굴조사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계란 모양으로 축조된 모습의 충청수영성은 1510년 수사 이장생이 돌로 쌓은 성이며 1896년 충청수영이 폐영된 뒤 방치돼 왔다. 현재는 아치형의 서문을 비롯해 성곽 1650m가 남아 있다.


남포읍성의 치성. 이런 치성이 북쪽으로 두 군데 복원됐다. 이경원 기자
남포읍성의 치성. 이런 치성이 북쪽으로 두 군데 복원됐다. 이경원 기자


남포 읍성

고려시대 우왕 때 축조 시작…복원된 성벽 일부 외에는 흔적 없어
 
남포읍성을 처음 쌓은 것은 고려시대로 우왕 때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축성됐다.

이후 1390년(공양왕 2)에 성을 완성, 군대가 주둔할 수 있는 진영을 설치했다. 성의 길이는 900m, 높이 3.5m로 여장을 두었으며 사방에 치를 두어 침입에 대비했다.

성문은 동·서·남쪽 3곳에 있었고 옹성 형태였지만 지금은 성벽 일부를 복원한 것 외에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남포읍성 성내에는 우물이 3곳 있었고 서쪽 성벽에 수구가 남아 있으며, 관아문인 진서루와 동헌이 보존돼 있다. 

 

보령읍성 남문 오른쪽에 복원된 치성. 완벽하게 복원된 것이 아니어서 상당히 낮은 모습이다. 이경원 기자
보령읍성 남문 오른쪽에 복원된 치성. 완벽하게 복원된 것이 아니어서 상당히 낮은 모습이다. 이경원 기자


보령 읍성
고려 말 왜구 침입 대비해 쌓아…임진왜란 등 거치며 대부분 파손


보령읍성은 둘레가 630m, 높이가 3.5m로 남·북·동에 3개의 문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남문인 해산루(海山樓)와 옆 성벽 70m, 북쪽 성벽 360여m만 복원된 상태다.

보령읍성의 주 출입문인 남문 문루 건물은 보령관아의 관아문으로 현재는 해체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올해 내로 공사가 끝나 제 모습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보령읍성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았던 성을 1430년(세종 12)에 보강해 다시 쌓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성의 대부분이 파손됐고 일부분만 복원됐다.


조진섭 기자 < digital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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