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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 종교와삶] 내가 선물이다

기사입력 2019. 06. 04   16:36 최종수정 2019. 06. 04   16:37

정현수 공군20전투비행단 군종장교·대위·신부

군종장교가 되고 처음 맞는 겨울, 목요일 밤마다 깨어있는 근무자들을 찾아다니며 따뜻하게 데운 캔커피와 소시지 하나씩을 건네줬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헌병 친구 손에 캔커피와 소시지를 건네면서 “추운데 고생이 많네”라며 다소 상투적인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 헌병 친구가 “신부님, 솔직히 야간근무 힘들지만, 목요일엔 신부님이 오시는 걸 아니까 그나마 할 만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부끄럽고도 고마워서 그의 손을 잡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오히려 내가 위로받았네”라고 웃으며 말했던 기억이 난다.

여러모로 병사들의 근무여건이 풍요로워졌음을 느낀다. 당장 필자가 근무하는 부대만 해도 지휘관이 정한 규정에 따라 병사들이 부대에 입점한 민영 업체를 이용할 수 있다.

부대마다 조금씩 상황은 다르지만, 이제는 평일이면 부대 인근으로 외출해 즐기고 싶은 것들을 즐길 수 있다. TV 광고에서처럼 생활관에서 음악과 동영상 강의를 듣고, 페이스북을 들여다본다. 항상 사용할 수 있는 필자도 별일 없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시간이 적지 않은데, 제한된 시간에만 만질 수 있는 이들에게 이 작은 물건이 얼마나 소중할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미사 시간에 고개 떨구고 휴대폰 보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병사들은 여전히 결핍을 느낀다. 단순히 고되고 긴장되는 군 생활에 대한 위로나 원초적인 감각의 허기가 아니다.

낯선 업무와 처음 겪는 형태의 인간관계 안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것에 대한 결핍이 더 큰 것처럼 보인다. 초코파이부터 시작해 초콜릿 바, 빵, 치킨, 피자로 그들을 달래주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접근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병사들이 느끼는 고충도 달라지는 마당에 그들 자신도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굳이 내 손으로 쥐여주려는 것은 어쩌면 자기 위안이 아닌가.

종파를 막론하고 동료 군종장교들과 얘기하다 보면 종교행사 인원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휴대전화 사용과 평일 외출 시행 후에 종교행사 참석 인원이 줄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한 사람의 군종장교로서 이런 현실을 마주하며 이제는 정말로 ‘무엇을 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될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 다가가려는 노력이 더 크게 요구됨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신부님이 오시는 걸 아니까 할 만합니다”라고 말해준 그 헌병 친구와의 만남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들고 가는 위문품이 내 생각에 별것 아닌 것 같아 주면서도 미안해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됐다. 병사들이 누리는 풍요보다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속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낯간지럽긴 해도 ‘내가 선물이다’라는 생각으로 부대원들을 만나러 간다. 외출이 주는 즐거움이나 휴대전화 사용이 줄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채울 수 있는 소중한 만남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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