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최악이 된 미 해군 Fitzgerald함 충돌사고 裁判

입력 2019. 05. 31   09:14
업데이트 2019. 05. 3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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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Periscope 160호(한국 해양전략연구소 발행)


  

 
정호섭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총재



최근 미 해군은 2017년 발생했던 미 구축함 Fitzgerald함 충돌사건과 관련하여 함장과 전술조치 장교에 대한 기소를 취하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이들에게 충돌사고의 법적 책임은 묻지 않되, 해군장관 명의의 ‘견책’(Letters of Censure) 징계를 내리고 충돌사고의 문책을 사실상 종료한 것이다. 미 해군에서 장관이 특정 장교를 직접 징계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어떻게 된 연유일까? 그 이유는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상관들의 부적절한 영향력 행사로 인해 더 이상 공정하고 정당한 재판이 불가하다는 비판에 미 해군이 결국 굴복한 것이다. 즉, 미 해군 지휘부가 Fitzgerald·McCain함 등 7함대 소속 함정들의 충돌사고에 대한 책임을 함장이나 함 승조원들에게만 전가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재판을 중단한 것이다. 이로 인해 지휘부의 잘못된 처신으로 미 해군은 물론, 군사법(軍司法)제도에 대한 공공의 신뢰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2017년 6월 17일 미 7함대 소속 Fitzgerald함은 일본 연안에서 상선 ACX Crystal호와 충돌하여 승조원 7명이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약 한 달에는 구축함 John McCain함이 화학물질 운반선 Alnic MC와 충돌하여 10명의 승조원이 실종되고 5명이 부상하는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다. 전례가 없이 발생한 함정 충돌사고의 원인으로 사고조사위원회는 7함대 소속 함정들의 과도한 작전운용 주기(tempo)와 그에 따른 교육·훈련 및 정비의 부실, 그리고 승조원의 누적된 피로로 인한 집중력의 저하 등 미 해군이 함정운용을 잘못함으로써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장교 및 승조원들이 ‘예방 가능한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처벌되었다. 특히 Fitzgerald함 사고의 책임으로 함장과 당시 전투정보실(CIC) 감독자였던 전술장교· 수상전장교와 함교 당직사관 등이 보직 해임되고, 이 중 함장과 전술장교는 직무태만 및 과실치사죄로 기소되어 끝내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간단히 말해 단순 ‘실수’로 발생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사고가 일종의 ‘범죄’ 사건이 된 것이다. 충돌사고가 발생한 후 John Richardson 미 해군참모총장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여러 기회에 걸쳐 함장과 장교들이 사건의 직접 책임이 있다고 언급했다. 사고의 근본원인이 어느 제대(梯隊)에 있는지에 관계없이 함장은 자기 배의 안전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진다는 해군의 일반적 상식에서 나온 이러한 공개적인 언행은 향후 진행될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었다.

군사법제도에서는 지휘관이 핵심이다. 지휘관은 예하 부하의 잘못된 언행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최상의 위치에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그가 재판관을 지정하고 양형(量刑) 조정을 승인하고 재판결과에 대해 보고받는다. 이러한 군사법제도의 배경은 軍隊正義는 범법자를 처벌할 뿐만 아니라 군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논리 때문이다. 또 재판에 관여하는 검사· 변호사·판사 모두 거의 다 현역장교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들이 독립적인 입장에서 재판에 참여한다 해도, 일부는 지휘관의 의도에 영향받을 가능성은 항상 있다. 즉, 재판과정에 편견이 작용할 여지가 많은 것이 군사법제도이다. 지휘관이 어느 정도 재량권을 가지고 있는 이 같은 환경에서 지휘관은 재판결과에 영향 미칠 수 있는 일체의 언행을 하는 것이 금지된다. 이 때문에 ‘불법적인 지휘 영향력 행사’가 군대정의의 ‘철전지 원수’라 불린다. 이것이 군사법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해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번 재판과정에서 이러한 공정성의 원칙이 번번이 훼손된 것으로 여겨진다. Richardson 참모총장은 물론, Bill Moran 미 해군참모차장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함장과 장교들의 태만으로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는 취지로 재판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 재판에 참여했던 어느 군판사는 이들이 부적절한 지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Fitzgerald함에 이어 McCain함 충돌사고가 발생한 이후 Richardson 참모총장은 미 의회? 특히 John S. McCain 상원의원으로부터 연이은 함정사고에 대한 철저한 책임추궁과 그것이 잘 안될 때 자신의 거취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받아 사고발생의 근본원인인 과도한 함정운용이나 조직관리의 실패보다는 관련장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이미 한차례 징계를 받은 이들을 무리하게 다시 군법회의에 기소하였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 후 Joseph Aucoin 당시 7함대사령관이 보직 해임되고 Scott Swift 태평양함대사령관은 전역의사를 발표했고 수상전사령관이던 Thomas Rowden 제독도 사의를 표명했다.

게다가 Richardson 참모총장은 함장과 장교들을 심판할 군법회의 재판장으로서 Frank Caldwell 대장을 임명했다. 그는 핵잠수함에서만 근무해온 장교로서 수상함에 대해 무지하였고 군사재판에 참여한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 사건의 기록을 검토한 후, 그는 재판에 연루된 사람 중 5명을 과실치사죄로 기소하기로 최종 결심했고 이를 해군성장관·참모총장·참모차장 등 상관에게 보고했다. 이는 이번 충돌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고 함장과 장교들이 승조원들의 희생에 암묵적으로 관여했다는 뜻이다. 즉, 이들은 전투함을 지휘함에 있어서 승조원에게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주의(caution)를 행하지 않은 중죄(重罪)를 저질렀다는 의미였다.

이 결정은 미 해군 내에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1969년 이후 미 해군에서 인명이 손실된 12번의 해상 충돌사고가 발생했는데 아무도 과실치사로 기소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소된 5명은 자신들이 일종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결국 Fitzgerald 함장과 전술조치 장교 등 2명만이 최종 기소되어 재판은 시작되었고 재판의 공정성 훼손논란 등으로 Caldwell 재판장이 중도에 사임하는 등, 결국 이번 사건 관련 기소가 취하되고 재판이 종료된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발생한 장병들의 희생은 함장이나 승조원의 불찰이 아니고 해군 지휘부의 잘못 때문이라는 점이 밝혀진 셈이다. 특히 2018년 12월 있었던 공판에서 Richardson 참모총장과 Moran 참모차장은 부적절한 지휘 영향력 행사 혐의로부터 결국 무죄를 인정받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공정하지도 못했고 관련 규칙을 준수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결이 나왔다. 이로써 이번 사건은 미 해군 역사상 부적절한 지휘 영향력이 관여한 최악의 사례가 되었다.

물론 이번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Richardson 미 해군참모총장의 처신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군대에는 철저한 신상필벌이 필요하다. 특히 함장은 자기가 지휘하는 함정의 모든 것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그는 해군의 총수로서 전례가 없이 연속 발생하던 함정 충돌사건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함장 이하 관련자를 엄격하게 문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 유가족들도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과 철저한 책임자 문책을 해군총장에게 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군사법제도의 근간인 부적절한 지휘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재판의 공정성을 해쳤고 결국 재판이 중단되도록 만들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는 정치권으로부터의 책임추궁 압박과 자신의 거취에 대한 무언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보다는 공정성을 해치는 언행을 함으로써 재판에 연루된 함장이나 장교들의 경력과 개인의 삶은 물론, 그 가족과 가정을 철저하게 파괴시켰다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군사법제도의 취지와 거기에 내재된 공정성의 원칙,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군대정의의 실현 문제는 결코 미 해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군 내에도 언제든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군의 진정한 전투력은 강하고 건강한 군대에서 나온다. 대한민국 군대를 강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군 지휘관들만의 소임이 아니다.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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