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사람이 먼저”… 휴머니즘 메시지로 세계와 통하다

입력 2019. 05. 30   15:57
업데이트 2019. 05. 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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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봉준호와 방탄소년단의 공통점


권위주의·빈부격차 등에 날 선 비판
인문학 바탕 다양한 문화콘텐츠 섭렵
자기만의 스타일에다 소통에 여유도
사람에 대한 믿음·이해·낙관 무장
확고한 정체성으로 세대 초월 공감대


봉준호 감독이 지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지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3·1 독립운동이 시작된 1919년 한국 영화사 최초의 작품 ‘의리적 구투’가 개봉됐는데, 이후 100년이 지난 올해에 비로소 최고의 영화제에서 최고의 상을 받아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이다. 이렇게 2019년은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해가 됐다.


올해는 1929년 발매된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 ‘낙화유수’ 이래 가요 탄생 90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축하하듯 방탄소년단(BTS)이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그래미 어워드’에 한국 대중가요 가수 최초의 후보가 돼 초대받았다. 게다가 ‘빌보드 어워드’에서 한국 가요사 최초로 본상을 받기도 했으니, 경사가 겹겹이 겹친 한 해로 기록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봉 감독과 BTS는 닮은 곳이 무척 많다. 세계 대중문화 산업을 이끌어가는 글로벌 리더라는 점도 닮았지만, 그 위치에 오르게 한 그들만의 장점이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공통점을 잘 알게 되면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리더십을 정리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리더십은 어쩌면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갈등과 과제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를 풀어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선 그들은 확실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 봉 감독만큼 확실한 메시지를 지닌 감독도 드물다. 그는 권위주의와 혈연 중심 가족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갖고 있다. 이번에 상을 받은 ‘기생충’도 자본주의 사회가 자정능력을 잃었을 때 나타나는 과도한 빈부 격차와 계층 이동의 단절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비판하는 영화다.

칸이 ‘기생충’에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최고상을 준 것은, 이 작품이 비판하는 문제야말로 전 세계적 병증이며 함께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인증한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 날카로움에도 그의 영화가 차갑지 않은 것은 그의 모든 영화에 일관되게 흐르는 인권의식과 휴머니즘이 문제의식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이 메시지를 음악으로 표현해내는 몇 안 되는 보이그룹 중에 BTS가 있다.

그들 역시 ‘불타오르네’ 등의 노래를 통해 ‘수저론’으로 대별되는 계층 이동의 단절과 권위주의에 의한 굴종에 맞서 저항했다. 특히 BTS는 곁에서 함께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룬다. 거기에는 혈연 중심의 낡은 가족은 없다. 방탄과 아미(ARMY)만 있을 뿐 인종도,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심지어 계급이나 빈부 격차도 없다. ‘낫 투데이(Not today)’에서 그들이 선언한 것은 연대를 믿고 방탄이란 울타리를 믿는 자들 사이의 평화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2019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Top Social Artist)’와 ‘톱 듀오·그룹(Top Duo·Group)’ 부문 상을 받은 후 무대 뒤에서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2019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Top Social Artist)’와 ‘톱 듀오·그룹(Top Duo·Group)’ 부문 상을 받은 후 무대 뒤에서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들의 저항과 연대는, ‘쩔어’에서 노래한 것처럼 ‘휴머니즘의 진전’이라는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 있다. “거부는 거부해”라고 외치는 그들과 68혁명(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운동) 세대들은 시간을 넘어 연대한다. 이렇게 역사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메시지들이 세계를 사로잡은 본질이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통해, 어디에서 그런 확신을 얻었을까? 우리네 일상과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그저 훑어본다면 여전히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고 있고, 심지어 신의 이름으로 수없이 많은 살인이 자행되는 오늘, 그들의 휴머니즘은 어디서 솟아나는 걸까?

봉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밝힌 것처럼 유년 시절부터 영화 마니아였다. 앨프리드 히치콕 영화들이 텍스트였고, 김기영 감독 영화가 영웅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와 이장호·배창호의 영화는 그의 사춘기 양분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사회학을 전공한다. 영화를 전공하는 것보다 인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든든한 메시지의 바탕을 형성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만나며 그는 취향에 갇히지 않고 틀에서도 자유로워 오히려 다양한 스타일을 융합할 수 있었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다.

BTS 역시 ‘덕후’에서 시작했다. 리더 RM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연히 에픽하이의 ‘플라이(Fly)’를 들었고 랩으로 이렇게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서 4000번 넘게 들었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는, 직접 작사한 랩을 힙합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고 결국 빅히트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꿈이 생겼을 때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주위의 충고를 무시하지 않았다. 진짜 성공한 덕후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균형 잡힌 인식이 중요하다고 믿었기에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런 RM이 중심이 돼 있기에 방탄들은 열심히 책을 읽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섭렵하며 사람에 관해 탐구한다. 앨범 콘셉트를 잡을 때마다 영화, 소설, 심지어 심리학 이론서를 통해 자기 메시지를 선보인다. 그것은 단지 떡밥이 아니다. 사람에 관해 탐구하기를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성장해가고 있음을 아미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봉 감독과 BTS는 그 외에도 확실한 자기만의 스타일과 그 안에 살아있는 위트와 유머를 공유하고 있다. 또 완벽하게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면서 소통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점도 닮은 점이다. 섬세한 디테일이 작품마다 살아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공통점들을 모두 가능케 했던 것은 그들의 확고한 자기 정체성이다. 일종의 예언자로서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가’라는 자기 정체성. 이 정체성 덕분에 확고한 메시지를 작품마다 담는 것이고, 그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 즉 신의 소리를 듣기 위해 사람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들의 꽉 찬 콘텐츠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들의 리더십은 결코 자잘한 테크닉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 놀라운 창의성은 오히려 우직하리만큼 기본에 충실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과 이해, 그로부터 출발한 낙관, 그 낙관을 가능케 하는 지혜로운 대안, 이 세 가지 덕목이 발휘되게 하는 예술가로서의 자기 정체성. 어쩌면 그것이 이 뒤엉킨 세상을 풀어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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