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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문화산책] ‘미국의 샤갈’ 해리 리버먼처럼 성숙과 연륜을

입력 2019. 05. 23   15:10
업데이트 2019. 05. 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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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서양화가
김현숙 서양화가

5월은 계절 중 으뜸이라 전시회도 가장 풍성하다. 분주한 전시 행사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상당수가 그림에 대한 감상과 함께 자신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거나, 한때는 화가가 꿈이었다거나, 각종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며 나의 화가 생활이 부럽다고 말한다. 나는 그때마다 “나는 젊지 않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나 자신 늙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다만 102년 동안 성숙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성숙이란 연륜과 함께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전한다.

이 말은 ‘미국의 샤갈’이라고 불리는 해리 리버먼이 운명하기 1년 전인 102세에 남긴 성숙과 연륜에 관한 말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어느 시기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림을 시작하라는 권유의 뜻을 전하는 데 안성맞춤인 말이다.

해리 리버먼은 고향에서 랍비 교육을 받았으나 29세에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직물업계, 제과 도매업을 하면서 경제적 안정을 이룬 삶을 살았다. 은퇴 후 체스를 두며 시간을 보내던 시니어클럽에서, 그림 붓도 구경하지 못했던 리버먼에게 그림을 권유한 직원 덕분에 그림을 시작했고, 81세에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10주간의 교육과정을 마친 그는 놀라운 재능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림의 주제는 어린 시절 고향 폴란드의 기억을 살려낸 유대인의 서민 생활과 종교적 색채가 짙은 탈무드·하시디즘(Hasidism)·구약성서 등이었으니 이는 그가 한때 랍비를 꿈꾸던 잠재의식의 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마침내 리버먼은 ‘원시의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로 불리기 시작했고, 그의 그림은 많은 사람의 호응만큼 판매도 됐다. 21회 전시회는 그의 나이 101세 기념 전시회였다. 이 노화가는 젊은 작가 못지않게 개막식에 참석한 400여 명의 내빈을 전시실 입구에 서서 맞이했다. 내빈들은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신비스러운 그의 작품 앞에서 그의 노력과 천재성에 모두 경탄했다.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라는 그의 말처럼 나이를 초월한 그의 미술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는 세관원으로 근무하다가 49세에 화가로 전업했고, 변호사를 꿈꾸던 앙리 마티스는 법률사무소를 그만두고 뒤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서서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판화까지 프랑스 미술사에 남는 작가가 됐다. 영국의 존 앳킨슨 그림쇼도 철도회사를 그만두고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해 10여 년 만에 엄청난 명성을 얻은 화가다.

늦게 그림을 시작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화가로서 삶을 살다 간 수많은 화가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들 역시 좋아하는 일에 뒤늦게 도전했고, 도전 후에는 쉬지 않고 노력한 것이다. 여러 여건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당장 못 한다고, 늦었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성숙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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