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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이야기] ‘한국형 호위함’ 역사 한 획…해군 첫 해외훈련 참가 주인공

윤병노

입력 2019. 05. 17   17:13
업데이트 2019. 05. 1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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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국내 건조 기술 집약체 ‘울산급 호위함’


국내 방위산업 기술 집약된 ‘울산함’
다대포 침투 무장 간첩선 격침 기여
서울함·마산함, 1990년 림팩 최초 참가
충남한 1997년 해군 ‘벤치마크 십’ 칭호 받아  

우리 해군 최초의 대형 전투함 1번함인 울산함이 해상기동훈련에서 기동하고 있다.
우리 해군 최초의 대형 전투함 1번함인 울산함이 해상기동훈련에서 기동하고 있다.


1980년 12월 30일은 우리 해군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한국형 호위함(FF·Frigate) ‘1번함’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해군은 1970년대 후반 한국형 호위함 개발에 돌입했다. 1000톤이 넘는 대형 전투함을 국내에서 건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해군은 국내 조선소와 계약을 체결한 뒤 기본설계를 거쳐 건조에 박차를 가했다. 해군과 방위산업계는 기술력을 총동원했다. 그리고 약 4년 만에 ‘울산급 호위함’을 탄생시켰다. 최신의 사격통제장치와 자동화 함포, 함대함 미사일, 어뢰 등을 탑재한 울산급 호위함은 당시 우리나라 방위산업기술이 집약된 전투함이었다. 이를 통해 축적한 경험과 기술, 자신감은 다양한 수상함을 연구 개발하는 디딤돌이 됐다.


자주국방체제 확립 조치로 건조 지시 


1975년 7월 9일 박정희 대통령은 변화하는 안보환경에 대응하고, 자주국방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로 한국형 전투함의 건조를 지시했다. 해군은 중무장한 채 빠른 속력을 내며, 장기간 항해가 가능한 최신예 플랫폼을 구상했다. 이제 갓 소형 함정을 만들기 시작한 해군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고속정 설계 기술을 보유했지만 대형 전투함의 설계 경험은 전무했다.


마산함이 하푼 함대함 유도탄을 발사하고 있다.
마산함이 하푼 함대함 유도탄을 발사하고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해군은 1976년 12월 31일 현대중공업과 ‘1800톤급 구축함 기본설계 계약’을 했다. 최초에는 한국형 구축함으로 불렸지만 함정 크기를 고려해 호위함으로 사업명을 변경했다. 한국형 호위함은 개념설계를 거쳐 1978년 3월 31일 기본설계를 완료했고, 같은 해 10월 28일 현대중공업과 ‘상세설계 및 함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1980년 4월 8일 역사적인 진수식을 개최했다. 함명은 ‘울산함’으로 명명했다.

울산함은 국내에서 건조한 첫 번째 전투함이다. 이로 인해 우려와 걱정이 많았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울산함 인수부장 한상기(소장 예편) 소령은 “해상 인수 시운전 항목에 황천(荒天·비바람이 심한 날씨) 테스트라는 것이 있는데 외국인 기술자들이 울산함의 안전을 믿지 못하겠다며 출항을 거부했다”며 “당시 함장님은 외국인 기술자들을 내부 격실로 안내한 다음 그냥 출항을 해버렸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울산함은 인수 시운전을 거쳐 1980년 12월 30일 정식으로 해군에 인도됐고, 1981년 1월 1일 취역했다. 물론 초도함이라는 특성상 미비점은 있었지만 전체적인 성능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함·대공·대잠전 동시 수행 가능

울산급 호위함은 전장 102m, 전폭 12m 선체에 76㎜ 주포 2문과 30㎜ 부포 4문 또는 40㎜ 부포 3문, 대잠어뢰, 폭뢰 등을 장착했다. 대간첩작전을 위해 많은 함포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1980년대 후반에는 하푼(Harpoon) 함대함 미사일을 추가 탑재했다. 최신의 사격통제장치와 음향탐지기 등을 갖춰 대함·대공·대잠전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었다.

북한 해군의 고속함정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고속 기동이 필수였다. 이에 따라 선체 상부는 중량이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제작했다. 2대의 가스터빈과 2대의 디젤엔진을 탑재해 최고 속력을 36노트(시속 63㎞)까지 끌어올린 것도 장점이다.

해군은 울산함의 미비점을 보완해 4년 뒤 서울함·충남함·마산함·경북함을 순차적으로 취역시켰다. 1989년부터는 전투시스템이 향상된 전남함·제주함·부산함·청주함을 인수했다. 이렇게 울산급 호위함은 총 9척이 건조됐다.

울산급 호위함은 오랜 기간 대양에서 벌어지는 훈련에 투입되다 보니 강도가 약한 상부 선체에 균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해군은 2002년부터 울산급 호위함 전 함정의 상부 구조물에 신축성 연결부를 설치했다. 주갑판과 선체 옆 부분에 보강판을 붙이는 선체 보강 작업도 병행했다.

울산급 호위함은 2014년 12월 30일 울산함을 시작으로 3척이 퇴역했다. 울산함과 서울함은 지방자치단체에 무상 대여돼 안보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다.


국내외 작전·훈련에서 뚜렷한 공적

우리 해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울산급 호위함은 동·서·남해에서 초계함과 고속정을 지휘·통제하는 기함(旗艦·지휘함)이었다. 다양한 합동·연합훈련에서는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으로 우리 해군의 위상을 드높였다.

울산함은 1983년 12월 3일 다대포 해안에 침투한 간첩선 대응작전에서 전투단대 지휘함 임무를 수행하며 무장 간첩선을 격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 해군의 첫 해외훈련 참가도 울산급 호위함이 주인공이다. 서울함과 마산함은 1990년 제12회 환태평양훈련(RIMPAC·RIM of the PACific·림팩)에 투입됐다. 림팩은 태평양 연안국들이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하고, 테러 발생 때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해상 종합훈련이다. 2년 주기로 하와이 인근에서 펼쳐진다.

당시 서울함은 우수한 포술 능력으로 ‘탑건(Top Gun)’의 영예를 차지했고, 마산함은 우리 해군 최초로 하푼 함대함 미사일 실제 사격을 완수했다.

서울함과 충남함은 1987년 국산 함정 최초로 순항훈련에 투입됐다. 1991년에는 충남함과 제주함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고, 1992년에는 충남함과 마산함이 세계일주 항해를 했다.

울산함은 1993년 9월 22일 우리 해군 최초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입항함으로써 양국 해군의 군사외교 활동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형 구축함(DDH·destroyer helicopter)이 등장하기 전까지 울산급 호위함은 우리 해군의 상징적 존재였다. 충남함은 1997년 5월 23일 해군 해상지휘관회의 때 ‘벤치마크 십(Benchmark Ship)’ 칭호를 받았다. 벤치마크 십은 해군의 기준과 목표가 돼 전투발전을 이끄는 함정을 일컫는다.

글=윤병노 기자/사진=해군본부 제공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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