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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수 병영칼럼] 선택, 고민, 책임

기사입력 2019. 05. 17   15:38 최종수정 2019. 05. 17   15:56

조문수 숭실대 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


1980년대 초반 미국 유학을 갔을 때, 참 많은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대형 마트다. 인구가 그리 많지도 않은 작은 도시에 요즘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대형 마트가 있었는데, 아주 가끔 물건을 사러 갔다.

미국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듯, 마트에는 없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물건이 진열돼 있었다. 마요네즈만 하더라도 수십 가지였고, 기껏해야 토마토케첩 정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토록 다양한 종류의 케첩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고민이 생겼다. 많은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물건 중에서 한 가지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곤혹스러웠다. 이렇게 시작된 10여 년의 유학 생활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유학생 신분으로 자주 갈 수는 없었지만, 어쩌다 괜찮은 레스토랑에 갈 때도 고민이었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는데, 왜 그렇게 많은 질문을 하면서 이것저것 중에서 고르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 ‘레어’ ‘미디엄’ ‘웰던’이 있는 것은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 ‘미디엄 웰던’을 주문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고기를 도대체 어떻게 굽는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요즘 한국의 마트에 가보면, 그때 미국의 마트에서 보았던 것 이상으로 다양한 제품이 진열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선진국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여러 답변이 있을 수 있지만, 필자는 “선택의 폭이 넓은 나라”라고 답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의 특징이 어느 분야든 다양하고,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회라는 사실이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도 다 팔리지 않으니, 기업들도 한두 가지 제품만 출시한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증가하면, 다양한 제품을 내놓아도 팔리기 때문에 기업들도 여러 제품을 출시한다. 소비자는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물건을 선택할 수 있다.

얼마 전부터 군인들의 평일 일과 후 외출이 허용되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봤다. 장병들에게는 평일 외출의 의미가 크겠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일과 후 3~4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그 선택과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장병 개개인에게 주어졌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이 시간을 자기계발에 사용하든, 체력단련에 쓰든, 외출해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든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좋지만, 쉬운 일만은 아니다. 기회비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짜장면의 쫄깃쫄깃한 면발을 선택하면, 짬뽕의 얼큰한 국물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기회비용이다.

선택의 기회가 많아질수록 그 선택의 결과가 최선일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간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장병들에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어떤 선택을 하든 기회비용이 따른다는 점, 그리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도 경험하길 바란다. 이 경험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숱한 선택을 할 때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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