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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명저] 앤드류 마셜, 43년간 美 국방·군사전략 설계한 ‘펜타곤 요다’

기사입력 2019. 05. 19   16:34 최종수정 2019. 05. 19   16:51

[기획 - 현대군사명저]

『최후의 전사 : 앤드류 마셜, 현대 미국의 국방전략을 만든 사나이』
The Last warrior: Andrew Marshall and the shaping of Modern American defense Strategy.

저자 : 크레피네비치 & 와츠 ( Andrew Krepinevich & Barry Watts)
출판 : Basic Books / 2015년 / 미번역



미 국방부에서 43년간 재직하면서 8명의 대통령과 13명의 국방부 장관을 보좌하며, 국방부 싱크탱크인 총괄평가국을 이끈 이가 있다면 진정한 전략가이자 책임자가 아닐까? 미국 국방전략이 발전해오고 변화의 모멘트를 제공한 바탕에 앤드루 마셜이 있었다.

이 책은 한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 국방 정책 전략사의 축약판이다. 그는 미국의 국책연구소인 랜드연구소에서 분석관으로 봉사했고 미 국가전략의 핵심인 안보전략의 에센스를 다뤄왔다. 그가 한 일의 상당수가 군사기밀로 묶여 있지만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업적을 정리, 소개하여 헌정한 책자가 본서이다.

미국의 대전략,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973년부터 2015년까지 국방부의 작은(인원이 20명을 넘지 않았다) 싱크탱크인 국방부 총괄분석평가국(ONA)을 이끌었던 마셜은 10년, 20년 후를 내다보고 장기전략을 수립했다. 그는 해결책보다 문제가 무엇인가를 찾는 데 골몰했다. 그는 전략의 본질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마셜의 업적과 전략판단의 기준

그의 업적을 총괄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련 군사비 부하(負荷)에 대한 장기 연구로 그는 CIA보다 군사비 지출 판단에 있어 2배 이상의 근사치를 제시했고 소련이 붕괴된 후 그의 추정치가 훨씬 더 타당했음이 입증됐다. 둘째, 그는 군사혁신 관련 논의를 장려했고 용어의 정립과 미 국가안보 관련 논의의 중심 역할을 했다. 셋째, 소련 붕괴 후 미·중 경쟁 구도를 예상하고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방안을 제시했고 그의 제언대로 국방정책을 수립해 대응하고 있다. 그의 역할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스타워즈의 전설적 스승인 요다(Yoda)’에 비유했다

그는 재직 중 다음과 같은 7가지 전략판단의 기준을 중요시했다. 첫째, 국가안보에서 자원제약의 중요성 간파. 둘째, 적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 셋째, 군사적 경쟁에 대한 사고의 틀 짜기. 넷째, 장기 경쟁 체제적 시각에서 발생하는 특유의 문제들이 갖는 중요성. 다섯째, 인간 행동의 비합리적 측면에 대한 고찰. 여섯째, 미래 예측의 어려움. 일곱째, 거대 조직 내에서 자신의 성취를 예상할 때는 겸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련 붕괴와 중국 부상에 따른 전략적 대응


소련 붕괴의 원인은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있었다. 내부적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하게 만들 동기유발의 한계 봉착과 외부적 요인으로 군비경쟁 전략이 있었다. 이러한 미·소 간 장기 군비경쟁 전략은 적에게 큰 부담을 지우자는 마셜의 아이디어를 모체로 하여 뻗어 나갔다. 마셜은 ‘미국이 계속되는 평시 경쟁에 더욱 효과적으로 임하려면 어떤 전략을 택하여야 하는가?’를 묻고 미국의 장점을 이용하여 소련의 약점을 공략하는 전략이 필요함을 적시했다.


레이건 대통령 당시 추진된 전략방위구상(SDI)은 소련의 경제적 탈진을 목표로 한 군비경쟁으로 내몬 결과 소련이 붕괴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이것을 소련의 지도부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알고도 당했다.


냉전 시대는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군의 재래식 전쟁이 미·소 간의 대규모 핵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미·소 경쟁을 사상과 경제체계의 싸움으로 보고 군사력 증강은 소련에 미국의 결의와 정치적 지구력을 납득시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보았으며 유사시 소련의 탄도미사일이 미 본토를 타격하기 전에 요격 격추능력을 구비하겠다는 전략방위구상을 발표했고 소련의 방공망을 돌파하는 방안으로 군비경쟁을 시도했다. 이는 소련이 넓은 지역에 방공망을 구비하게 하는 출혈을 강요한 책략이었다.


소련이 해체된 후에 마셜은 향후 20년간은 전 세계적 정치 군사 경쟁의 상황을 일변시키는 전환기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미·중 및 미·일 관계 관리는 군사기술 혁명(MTR·Military Technology Revolution) 경쟁과 마찬가지로 미국 전략에서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임을 예측했다.


그는 중국의 부흥에 주의를 집중하고 1990년대에 소련에서 먼저 개발된 MTR 개념을 미국화하여 RMA(정밀유도무기, 컴퓨터화된 지휘통제와 정보전)가 미래전장을 어떻게 변모시킬지를 정확히 지적했다.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호전성을 상쇄시키기 위해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정책을 제시했고 급기야 오늘날의 ARIA법(아시아 안심법안)으로 표출되게 했다. 그것은 중국으로 하여금 비용이 많이 드는 해군력 증강으로 출혈을 강조하는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2006년 12월 14일 미 국방개혁에 대한 앤드루 마셜(오른쪽)의 리더십에 대해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국방 공로메달을 수여하는 모습. 미국 국방전략이 발전해오고 변화의 모멘트를 제공한 바탕에 앤드루 마셜이 있었다. 필자 제공


마셜의 업무수행 방법


마셜은 2001년부터 은퇴 직전인 2014년까지 위협기반에서 능력기반으로 기획 패러다임을 전환해 중국에 대응하는 미국전략의 큰 틀을 짜는 데 기여했다. 군대가 어떤 장비에 우선을 두어 증강을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전통적이면서 보편적인 방식은 ‘위협기반기획(threat based planning)’이었다. 위협기반 국방기획은 적 또는 가상적인 군사력을 기준으로 방어가 충분하거나 적을 능가하는 군사력을 건설하는 것으로 분명한 적이 존재할 때 채택하고 전력 증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용이한 장점이 있다. 


반면 ‘능력기반기획’은 어떤 상대와 전쟁을 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충분한 군사력을 건설하는 방법으로 분명한 적이 존재하지 않을 때 적용하며 어떤 적에 대해서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상당한 예산과 노력이 요구되는 단점이 있는데 마셜은 능력기반 국방기획을 채택하도록 했다.


기존의 상식에 도전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마셜은 미 국방부 장관에게 직보했다. 그가 만든 총괄평가국은 최고지도자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에 대한 솔직하고 사려 깊으며 편견 없는 진단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여겨졌다. 미국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볼 때 미국의 최고지도자들은 더 많은 문제에 시달릴 것으로 예측됐다.


군사전문가 등 인재육성


마셜은 인재를 영입 양성해 최고지도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줬다. 마셜은 그래함 엘리슨, 버나드 브로디, 헤롤드 브라운, 새뮤얼 헌팅턴, 허만 칸 등 약 120명의 기라성(綺羅星)같은 인재를 키워 국방부를 비롯한 최고 연구기관에 포진시켰다. 사람들은 이러한 마셜의 제자들을 ‘세인트앤드루스 초등학교 동창회원’이라고 불렀고 그 부하직원들은 최고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연구 능력이 있는 전문가를 제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하게 기용했다.

우리 군은 마셜과 같은 꼭 필요한 인재육성과 유지방법에 대하여 고민할 때이다. 마셜은 올해 3월 26일 9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그의 서거로 전략에 관한 최고의 도서관 1개가 사라졌지만 그가 키운 제자들이 미국 유수의 기관에서 마셜의 가르침을 잘 수행하고 있다. 전작권 전환과 국방개혁 추진에서 핵심은 군사전문가를 육성하는 것인데 마셜의 인재육성과 혁신 방안은 우리 군에 큰 교훈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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