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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소정 병영칼럼] 나의 롤 모델, 해녀

기사입력 2019. 05. 16   13:40 최종수정 2019. 05. 16   13:43

제갈소정 벌라이언스 대표·교육전문가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가 오너라.”

아이들에게 『엄마는 해녀입니다』라는 동화를 읽어주다 롤 모델이 하나 추가됐다. 바로 제주도 등에서 살아가는 4000여 명의 해녀다. 알아가면 갈수록 그녀들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해녀들이 처음 물질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건 뭘까? 더 많은 해산물을 잡을 수 있는 숨 오래 참기나 전복 찾는 법일까? 아니다. 어린 해녀들이 처음 배우는 것은 바로 욕심을 조절하는 법과 바다를 존중하는 법이다. 70여 년간 물질을 해온 아흔 가까운 나이의 베테랑 해녀들도 잊지 않는 게 자기 ‘숨의 길이’다. 숨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즉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아야 거친 바다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녀들의 바다는 숨의 길이에 따라 상(上)군·중(中)군·하(下)군으로 나뉜다. 누가 정하는 게 아니라 해녀들이 어릴 때부터 수영하면서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바다를 찾아간다. 바다의 계급은 타협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바꿀 수 없기에 불평불만 하지도 않는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은 탐내지 않는다. 각자 타고난 자기 숨을 찾고, 자기가 갈 수 있는 만큼만 간다.

내 숨의 길이를 안다는 말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한계를 짓는다는 것이 수동적이고 체념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타인과 비교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다. 나만의 최선을 찾아갈 때, 무작정 자신을 내달리게 해 파괴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모든 해녀는 숨의 한계를 알고 있기에 마지막에 이르기 전에 벗어난다. 하지만 그 한계를 잊게 하는 것이 ‘욕심’이라고 한다.

조금만 더 숨을 참으면 더 많이 따낼 수 있다는 욕심은 물속에서 숨을 멎게 한다. 그래서 해녀들은 잘라내지 못한 욕망의 숨을 ‘물숨’이라 부른다.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느끼고 나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던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목표를 달성한 순간은 축배를 들 때가 아니라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할 때”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만 알았지, 멈추는 법을 몰랐다.

내 숨의 한계를 알아가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긴 숨 길이만 부러워하며 먼 바다로 나가고만 싶어 했다. 해녀였다면 물숨을 몇 번이고 먹었겠지만, 감사하게도 아직 숨 쉴 수 있기에 진짜 나의 숨을 알아가는 중이다. 수많은 경험과 실패를 하는 이유는 결국 나라는 그릇을 알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현재 내 그릇의 크기에 맞는 최선은 해녀들처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노력을 다할 때 찾아온다.

해녀들은 바다를 ‘바다밭’이라 부르며 새끼 전복이나 새끼 소라는 절대로 잡지 않는다. 바다밭을 아름답게 가꾸는 그녀들은 여유 있게 숨을 남겨둬야 오래 자맥질할 수 있음을 안다. 그 꽃밭에서 자기 숨만큼 머물면서 바다가 내어주는 만큼만 가져오자는 약속을 지킨다. 사회 변화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여전히 인간이 가진 숭고한 가치를 지켜나가는 특별한 직업의 그녀들, 해녀들은 나의 롤 모델이자 멋진 스승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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