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이슈 전문가 진단] 미국의 ‘이란핵협상’ 탈퇴의 시사점
미국, 이란의 핵합의 준수에도 ‘이란핵협정’ 일방적 탈퇴·강력 제재
‘평화적 핵이용 권리’로 고농축우라늄 생산 가능한 점 인정 못 해
트럼프 정부 “합의 지속성 위해 북한과는 ‘협약’이 돼야 한다” 강조
‘평화적 핵이용 권리’ 여부, 향후 북·미 협상 쟁점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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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8일 미국이 이란의 핵활동 일부를 제한하는 공동포괄행동계획(JCPOA) 탈퇴를 선언한 지 1년이 흘렀다. 미국은 2018년 8월 7일 이란의 자동차를 비롯한 주요 산업에 대한 제재 조치를 복원했고 11월 5일부로 이란의 석유·에너지 산업에 대한 더욱 강력한 제재를 재개했다. 그리고 미국은 지난달 22일 한국과 중국, 일본, 터키 등 8개국에 대해 한시적으로 인정해온 이란산 원유 수입 제재 예외 조치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이미 예견됐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이란과의 합의를 비난해 왔고 취임 후에도 미국의 일방적 탈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이란산 원유 수출 급감을 예상하고 대체생산을 증대하는 등 후폭풍에 대비해 왔다. 한국도 이란과의 기존 거래를 정리할 수 있는 유예기간 동안 범정부 대책반을 출범해 원유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등 경제적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했다.
미국의 핵합의 탈퇴, 대이란 제재 강화와 관련해 우리가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안보 분야의 파장일 것이다. 국제사회는 트럼프 정부의 결정이 중동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다자적 국제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란이 핵합의 이행의 일부 중단을 경고하면서 우라늄 고농축 가능성을 언급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항모전단과 폭격기를 중동에 배치한다고 발표함으로써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미국이 대이란 압박에 집중하면서 대북한 압박에 소홀해질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이란 핵협상을 다루는 방식이 북핵 협상에 주는 함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명 이란과 북한의 핵문제는 각각 핵 프로그램의 성격과 관련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 등에 있어서 상이한 점이 많아 이 둘을 단순비교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례는 핵 비확산이라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 차원에서 연계성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것으로 인해 제기되는 신뢰 문제는 북한과의 협상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란 핵합의는 2015년 7월 20일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 2231호로 최종 승인됐는데, 안보리 결의 형태로 보증한 것은 이해 당사자들의 정치적 약속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즉, 당사국이 합의 이행을 구속하는 보증수표에 배서하게 함으로써 상호 변절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하고 있다는 점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거듭 인증해온 상황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퇴를 결정한 것은 트럼프 정부가 언제든 독자적 결정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정치적 보증은 지속성이 없다는 점에 주목할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향후 트럼프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이끌어내는 합의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협약 형태로 의회 승인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상하원은 그간 대북 협상에서 의회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북·미 합의 형태가 이란 핵합의와는 달리 ‘협약(treaty)’이 돼야 한다고 주문해왔다. 그리고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보좌관도 북한과의 합의를 의회에서 비준받는 것이 적절하다는 견해를 보인 바 있다. 미국 행정부가 바뀌면서 합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패턴을 감안할 때, 이는 필요한 조치일 수 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국내적 요구사항이 반영될수록 유연성(flexibility)이 제한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트럼프 정부가 포괄적인 비핵화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장기전을 치를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둘째, 평화적 핵이용 권리 인정 여부가 향후 북·미 핵협상의 쟁점이 될 수 있다. 이란과의 핵협상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미국 주장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란의 핵무장 잠재력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같은 살인적인 정권이 평화적 용도의 핵 프로그램을 희망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이란 핵문제가 관심받기 시작할 때 국제사회의 초점은 이란의 농축 능력을 ‘순연’시키는 데 있었다. 그리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인정하는 평화적 핵이용 권리에는 농축 능력도 포함되기 때문에 이란은 끝까지 이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따라서 이란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국제사회의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이라고 간주하면서 이란의 농축 능력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15년 동안 ‘제한’하는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이 같은 타협을 인정하지 않고 군사기지에 대한 사찰, 처벌 조치 마련, 탄도미사일 개발에 대한 제한 등 핵활동 통제의 범위와 수준을 확대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도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할 것은 북한이 평화적 핵 이용이 핵군축·비확산과 함께 NPT 체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해 왔고, 이란의 우라늄 농축과 관련한 협상 전개 과정을 밀착 보도했다는 점이다. 만약 핵협상을 통해 북한이 군사적 용도의 핵 프로그램을 제거하고 NPT 체제로 복귀한다면, 북한에도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원칙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북한 내 핵확산에 민감한 모든 활동을 영구적으로 폐기하려는 조치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
셋째, 미국의 ‘최대의 압박’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대로 추진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기타 국가들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확인됐다. 미국이 핵합의 탈퇴를 통보하자 나머지 협상 당사국들은 “핵확산 방지 체제가 위태롭게 됐다”고 우려하면서 후속대책을 논의해왔다. 그러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 등의 대미 설득 노력은 실패로 끝났고, 유럽이 이란과의 인도주의 물품 거래가 용이하도록 만든 특별결제수단(Special Purpose Vehicle)조차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제재 대상국과 거래하는 제3국에 대한 제재인 세컨더리보이콧은 미국이 이러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 국제사회가 이란과의 교역을 자체적으로 축소시키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다. 그리고 세컨더리보이콧은 북한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량조치’로써 그 실행 여부가 결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최대의 압박’ 정책으로 인해 협상장에 나왔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란으로부터 더 나은 거래를 이끌어 내도록 유사한 압박 정책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압박의 상승작용 속에서 대북 제재 수위는 계속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북한과 미국 간 대치상태는 장기화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며, 유엔 제재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제재 대상인 운송·광업·에너지·온라인상업·금융서비스 등 기타 활동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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