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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5월13일 6.25참전 軍馬 ‘레클리스’ 영면에 들다

신인호

입력 2019. 05. 12   14:40
업데이트 2023. 05. 1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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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誌 1997년 세계 100대 영웅으로 선정


군마 레클레스와 75mm 무반동총. 출처 = www.usmc.mil
군마 레클레스와 75mm 무반동총. 출처 = www.usmc.mil

 

“내꺼야! 기다려. 꼭 데리러 올게.”
무대에는 할머니는 자상한 목소리가 잔잔히 이어졌다. ‘순이’ 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는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진도 보여주고 동요도 들려주면서 그 어린 나이에 겪은 6.25전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가 말한 ‘내꺼야’는 말(馬) 이름이다. 그때 7살 된 순이 할머니의 친구와 같은 존재인데, 경마장을 뛰던 경주마였다. 그런데 전쟁 때문에 할머니는 가족과 헤어지고 ‘내꺼야’와도 헤어지게 되었다. 생계를 위해 말을 미군에게 팔게 된 것이다. 할머니는 이때 ‘내꺼야’에게 꼭 데리러 오겠다고 그렇게 약속했다.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2014년 1월 극단 ‘모시는사람들’은 과천시민회관 소극장에서 과천의 대표 브랜드인 ‘경마’와 ‘말’을 주제로 사람과 동물과의 우정을 그린 연극 ‘내꺼야’를 무대에 올렸다. 이 연극의 모티브는 연극보다 더 연극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연극에 등장하는 말(馬) ‘내꺼야’는 원래 ‘아침해(또는 여명(黎明)’라는 말인데, 미 해병대에서는 ‘레클리스(Reckless 무모한)’로 불렸다. 2013년 7월 26일 미국 버지니아주 미 해병대 박물관 야외공원에 건립, 헌정된 군마(軍馬) ‘레클리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6·25전쟁 중이던 1952년 10월, 미 해병 1사단 5연대 무반동총 소대 에릭 피터슨(Eric Pedersen) 중위는 무기와 탄약을 나를 말을 구하러 나왔다. 그는 ‘김흑문’이라는 나이 어린 소년 마주(馬主)를 만났다.

 

소년은 무척 아끼는 암컷 말을 팔기 싫었지만 결국 중위에게 250달러를 받고 팔아야만 했다. 소년은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누이 ‘김정순’에게 의족을 해주어야 했다. 서울 신설동에 있던 경마장을 내달렸던 경주마 ‘아침해’는 그렇게 미 해병대에 들어가 군마가 되었다. 입대한 것이다.

미 해병대원과 함께 연천지역 전선으로 가게 된 아침해는 ‘플레임(Flame)’이라는 새 이름을 받고 탄약을 나르는 임무를 맡았다. 410kg의 플레임은 전투 현장에서 무거운 탄약을 386차례나 나르며 동료 해병들에게 전달했다. 그 가운데 저 혼자 적탄을 뚫고 포탄을 나른 것만 51차례나 된다고 한다.

 

그렇게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용감하다기 보다는 무모했던 탓일까. 미 해병들은 그를 ‘레클레스’로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 두 번 부상을 입었던 그녀가 묵묵히 부상자를 싣고 부상자 수집소까지 실어간 후 다시 혼자 탄약을 싣고 전선으로 왔다는 이야기는 해병들에게 군마에 그치지 않는, 진한 동료 이상의 존재로 자리하게 했다.

레클레스는 전투 중 부상을 입은 군인에게 주는 퍼플하트(Purple Heart) 기장을 비롯해 미 해병대 선행기장과 각종 참전기장을 받았다.

 

1954년 4월 미 해병대 1사단장 랜돌프 페이트(Randolph M. Pate) 장군은 레클레스를 상병(corporal)에서 병장(sergeant)으로 진급시켰다. 그리고 1959년 8월 31일 레클레스는 하사(staff sergeant)가 되었다. 이날 캠프 펜틀턴(Pendleton)에서 랜돌프 사령관이 주관한 열린 행사에는 1700여 전우들이 참석했고, 19발의 예포가 울렸다.

 

1960년 11월 10일 현역에서 물러나 퇴역한 레클리스는 1968년 5월 13일에 영면에 들었다. 미 해병대는 최고의 예우로 장례식을 치렀다.

미국의 저명한 ‘LIFE’誌는 1997년 특별호에서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영화배우 존 웨인, 성녀 마더 테레사 등과 함께 레클레스를 세계 100대 영웅으로 선정했다.

 

미 해병대 박물관 앞에 선 레클리스 동상에는 전장에서 생사를 함께 한 동료 해병(Harold Wadley)이 남긴 “그녀의 고독과 충절의 정신에는 보기와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고 쓰여 있다. 그 다른 무엇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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