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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우들이 안장된 이곳, 죽어서도 찾고 싶다"

서현우

입력 2019. 04. 22   18:08
업데이트 2019. 04. 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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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25전쟁 영국군 참전용사 그룬디 옹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제임스 그룬디 옹이 전우들의 묘역을 찾아 경례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방홍보원 뉴미디어운영팀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제임스 그룬디 옹이 전우들의 묘역을 찾아 경례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방홍보원 뉴미디어운영팀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더는 가슴 속에만 넣어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6·25전쟁 유엔군 참전용사의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한국 방문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주인공은 한국을 방문 중인 영국군 참전용사 그룬디 옹. 말기암 환자인 22일 부산광역시 연제구 부산외국어고등학교의 초청으로 강단에 서 전쟁의 참혹함을 얘기하고 자신들의 희생을 기억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했다.

그룬디 옹은 약 30년 전부터 사비를 들여 한국을 매년 방문하고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 6·25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전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을 찾을 때마다 유엔군 전사자가 안장돼 있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고, 여러 대학과 기관에서 전쟁에 대해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도 자신의 가슴에 묻었던 아픈 기억을 끄집어냈다. 어린 학생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한국을 위해 희생한 전우들을 잊지 말아달라 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이 나라를 지켜내고자 했던 이유를 꼭 기억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880여명의 그룬디 옹 전우들이 안장돼 있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의 방문도 요청했다. 그룬디 옹 자신도 자신의 생이 다하면 이곳 유엔기념공원에 전우들과 함께 안장되기를 바라고 있다.

부산 연제구 부산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한국의 미래 세대를 위해 특강에 나선 제임스 그룬디 옹에게 한 학생이 환영의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사진제공=국방홍보원 뉴미디어운영팀
부산 연제구 부산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한국의 미래 세대를 위해 특강에 나선 제임스 그룬디 옹에게 한 학생이 환영의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사진제공=국방홍보원 뉴미디어운영팀
“벌써 60년도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한국전쟁 당시 모습이 기억에 선하게 남아 있습니다. 당시 저는 전투병이 아닌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951년 2월 영국군으로 전쟁에 참전한 그는 대구 및 낙동강 전선 일대에서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안장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가 했던 일 중 하나는 땅속의 시신을 파내어 신원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한 번은 세 명의 전우를 땅속에서 꺼내었지만 군번 줄과 군인카드가 뒤섞여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세 전우들은 무명용사 묘에 안장됐습니다.”

그는 그들의 이름을 밝혀내지 못해 지금까지도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많은 군인이 전사했고 또 살아남은 전우들도 신체적인 부상은 물론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룬디 옹은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전투에서 옆구리에 총상을 입은 그의 친구는 총알을 빼내면 생명에 지장이 있어 평생 총알을 지닌 채 살아야 했다. 얼마 전 사망한 그 친구는 죽을 때까지 상처에서 염증이 생기고 피가 흘러 하루에도 몇 번씩 소독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룬디 옹은 또 전쟁 중 자신이 겪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임무 수행을 위한 이동 중 작은 마을을 지나쳤는데 한 소녀가 저에게 사과를 건네주었습니다. 또 추위에 떠는 노인이 있어 제가 담요를 주었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길에 다시 마을을 찾았을 때 그 마을에는 폭격으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강연할 때였습니다. 한 여학생이 얼마나 많은 군인이 한국전쟁에서 사망했는지 물었을 때 40만 명 혹은 50만 명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학생이 얼마나 많은 어린아이와 남자, 여자가 죽었는지 물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서 답할 수 없었습니다.”

이날 어린 학생들에게 한국의 발전을 자랑스러워하고 자부심을 가져달라는 부탁은 먹먹한 울림으로 전해졌다. 자신이 지킨 나라에 대한 자긍심이었을 터다.

“여러분은 이 나라의 다음 세대입니다. 6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모습을 보면 눈물이 흐릅니다. 여러분은 이 나를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한편 그룬디 옹의 이야기는 호국보훈의 달인 6월 국방TV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서현우 기자 lgiant61@dema.mil.kr


서현우 기자 < july3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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