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우리부대 동아리 집중탐구

힙합크루 멤버와 가수들도 거쳐갔다, "우린 군복입은 예술가"

송현숙

입력 2019. 03. 21   17:23
업데이트 2019. 03. 21   17:38
0 댓글

<3> 공군17전투비행단 힙합 동아리 ‘인패추에이션(INFATUATION)’ & 밴드 동아리 ‘엔알티에스(NRTS)’


13년 전통의 밴드 동아리 ‘NRTS’
대다수 동아리원, 사회서 음악활동
그룹 V.O.S의 박지헌도 밴드 출신
음향장비·라이브 믹싱까지 내부서 해결

 
비행단 최초 힙합 동아리 ‘인패추에이션’
자유로움 속 ‘정격’ 지키는 힙합
군대서 가사 쓸 땐 ‘전체 이용 가’로
“힙합 버전 부대 홍보 영상 만들고 싶어”


기타 연주가 수준급인 공군17전투비행단 밴드 동아리 ‘엔알티에스(NRTS)’의 김현석 상병.
기타 연주가 수준급인 공군17전투비행단 밴드 동아리 ‘엔알티에스(NRTS)’의 김현석 상병.


군부대에서 즐기는 힙합 공연

“17전비 유일한 국내파 어학병이 누구?

오직 내 힘으로 갈고닦은 영어로 지켜 대한민국~!”

봄기운 완연했던 지난 8일 오전, 공군17전투비행단 강당에서 스왜그(swag) 넘치는 힙합 공연이 펼쳐졌다.

17전비가 제793기 전입 신병을 대상으로 개최한 ‘가족 초청 행사’에서 이 부대 힙합 동아리 ‘인패추에이션(INFATUATION)’ 소속 병사 5명이 환영의 의미로 특별 무대를 준비한 것.

감색 공군 정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단상에 오른 동아리원들은 래퍼 그레이의 ‘119’, 릴 디키의 ‘세이브 댓 머니(save dat money)’를 차례로 불렀다.

강렬한 비트에 객석의 반응이 둘로 갈렸다. 신병들은 시작과 함께 함성을 지르고 팔을 올려 흥을 탔다. 이에 반해 가족들은 ‘군인과 힙합’의 신묘한 조합에 호기심 반, 놀라움 반의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객석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동아리 회원들이 개사한 노랫말이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것.

특히 “늦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라도 나가서 적금 꼭 들!어!라! 793기 친구들아, 형은 한 달에 25만 원씩 한다. 파이팅!”, “냉동 먹을 돈 아끼면 대학등록금도 생겨”라는 구절이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적금 가입을 권장(?)하는 눈빛과 대화가 오가며 긴장감이 남아 있던 현장 분위기를 무장해제시켰다.

성황리에 무대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온 회원들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이들은 “아들 만날 생각에 아침부터 먼 길 달려온 가족분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선사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신병 아들을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서울에서 온 김미라(50) 씨는 “군대 와서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힙합 공연을 함께 즐길 줄 몰랐다”면서 “밝은 모습 보니까 부모로서 안심되고, 군 생활 동안 자율과 규율 속에서 더욱 성장할 아들의 모습이 기대된다”는 소감을 전했다.

비트에 맞춰 프리스타일 랩을 선보이는 힙합 동아리 인패추에이션(INFATUATION) 의 정승희 상병.
비트에 맞춰 프리스타일 랩을 선보이는 힙합 동아리 인패추에이션(INFATUATION) 의 정승희 상병.




17전비 최초의 힙합 동아리

대한민국 영공 방위 최일선에서 임무 수행 중인 17전비는 ‘장병 동아리의 천국’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전용 건물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별도 예산을 마련해 필요 장비 등을 지원하고, 활동 여건도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동아리 활동이 사회와의 단절감을 해소해주고, 장병들의 활기찬 군 생활을 뒷받침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인 말)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진행하는 ‘문화체험사업’과 별개로 7개(힙합, 댄스, 밴드, 어쿠스틱, 보컬, 일본어, 야구) 자생 동아리가 활동 중이다. 이 중 ‘인패추에이션’은 비행단 최초의 힙합 동아리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열정’이라는 동아리명처럼 힙합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7명이 2주에 한 번 정기 모임을 갖고, 평소에는 각자 작사와 랩을 연습합니다. 사회에서 힙합 크루 활동을 했거나 ‘쇼미더머니’ 본선 진출, 음반 참여 등 경험이 많은 인원이 모여서 실력 면에서는 공군 아니라 전군에서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동아리장 주은총(24·통신소) 상병의 설명이다.

항공정비전대 홍석준(25) 상병은 “비행단 내에서도 힙합을 좋아하는 전우들이 많은데 듣는 것과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면서도 “비트 형식, 목소리 톤에 따른 배치, 라임, 가사 작성 등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진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 동아리는 실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며 준비된 자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들 역시 초보 시절이 있었다. 홍 상병은 고등학생 시절 사촌 형을 통해 힙합을 접하고, 덕분에 영어를 독학으로 마스터했다고. 그는 지금 비행단 내 유일한 국내파 어학병으로 복무 중이다. 내성적인 성격에 모범생 이미지였는데 고1 때 힙합에 빠진 후 주변 사람들로부터 상처 아닌 상처를 받았다는 조홍준(24·보급대대) 병장은 힙합 문화를 바라보는 ‘고정관념’, ‘편견’을 없애는 것도 래퍼가 할 일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정격(正格)’을 추구하는 힙합은 군대와 닮은꼴

‘힙합’과 ‘군대’. 사실 두 단어가 주는 이미지만 놓고 보면 대단히 이질적이다. 하지만 홍 상병은 반대로 둘이 닮은 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힙합이라는 음악은 자유로움 속의 ‘정격(正格)’을 추구하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비트가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띠더라도 작사하는 래퍼는 그 비트가 내포하고 있는 마디 수나 빠르기(BPM)라는 형식을 따라야만 곡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롭고 여유롭되, ‘군인다움’이라는 ‘정격’을 따라야만 완성될 수 있는 군 생활과 맞닿은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공군 4대 가치(도전, 헌신, 전문성, 팀워크)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군복 입고 힙합을 하면서 고려할 점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가사를 쓸 때 ‘전체 이용 가’ 등급으로 쓰고요. 또 동아리원들과 근무가 제각각이라 시간 맞추는 게 가장 어려운데 4월부터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 같습니다. 일과 중에는 임무 수행에 매진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재충전을 하는 만큼 열린 시야로 바라봐 주시면 좋겠습니다.”(홍 상병)

마지막으로 동아리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전역해 ‘쇼미더머니’ 프로그램에 재도전할 생각이고, 목표는 무조건 우승입니다. 여기에 작은 바람을 하나 더 밝히자면, 동아리원들과 군인 신분으로 힙합 버전의 부대 홍보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힙합 동아리 인패추에이션 소속 홍석준 상병이지난8일부대가 제793기 전입 신병을 대상으로 개최한 가족 초청 행사 무대에 올라 힙합 공연을 펼치고 있다.
힙합 동아리 인패추에이션 소속 홍석준 상병이지난8일부대가 제793기 전입 신병을 대상으로 개최한 가족 초청 행사 무대에 올라 힙합 공연을 펼치고 있다.




밴드 동아리 “13년 전통 자랑스러워”

소수정예로 꾸려진 ‘인패추에이션’이 17전비에서 가장 ‘힙(hip)’한 동아리라면, 밴드 동아리 ‘엔알티에스(NRTS)’는 전통을 자랑하는 자타공인 부대 명물이다. 2006년 만들어져 13년 동안 록을 좋아하는 수많은 장병이 이곳을 거쳐 갔다. 유명 남성 그룹 V.O.S의 박지헌도 이 밴드 출신이다.

“NRTS는 ‘17비에 새로운 록음악을 선보이겠다(New Rock to This Station)’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비행단 장병과 군무원들의 사기 진작과 활기찬 병영 생활을 위해 창설됐죠. 현재는 병사 15명이 서로를 ‘군복 입은 예술인’으로 존중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기 모임은 토요일 오후 3시부터 8시까지지만, 공연 일정이 생기면 2주 전부터 매일 개인 시간을 투자해 맹연습합니다.”

동아리장 윤건(22·항공작전전대) 일병은 NRTS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뛰어난 실력이라고 단언했다. 동아리원 대다수가 사회에서 프로 또는 아마추어 음악 활동을 했던 까닭에 대중음악에 대한 소양과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고, 특히 관객과의 소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NRTS는 궁극적으로 록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밴드입니다. 그래서 즉흥 합주와 애드리브를 매우 장려하는 분위기죠. 정해진 대로 악보에 따라 연주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개성과 느낌을 최대한 살려 창의적으로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스튜디오 믹싱이 아닌 라이브 믹싱을 동아리 내부에서 해결한다는 것도 다른 밴드 동아리와 차별되는 점입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보컬 담당 맹민영(26·감찰안전실) 상병의 설명을 들으니 이들의 연주 실력이 더욱 궁금해졌다.

백문이 불여일청(百聞不如一聽)! “한 곡 들어보고 싶다”는 기자의 부탁에 망설임 없이 기타, 드럼 스틱, 마이크를 잡는 동아리원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졌다. 잠시 후, 만화 ‘나루토’의 주제가 ‘활주’의 합주가 시작됐다. 고막을 찢는 듯한 음악에 발 박자를 맞추며 록 스피릿을 즐기다 보니 마치 공연장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음향이 괜찮죠? 개인이 소장한 공연용 음향 장비들을 부대의 반입허가를 받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병사의 날’ 행사 때 행사장 음향이 연설용이어서 저희 음향장비로 진행했는데, 그때 라이브 공연 시 대처 능력도 쌓고 다른 동아리와 교류한 덕분에 지난 설 연휴에는 연합공연도 했습니다.” (동아리장)



‘전우애’와 ‘자기계발’이 최고 소득

개인 물품도 아끼지 않고 선뜻 밴드를 위해 가져올 정도로 동아리를 아끼는 이들은 ‘전우애’와 ‘자기계발’을 최고 소득으로 꼽았다.

드럼을 담당하는 김도윤(24·대공방어대) 병장은 “한울타리에 있어도 거의 마주칠 일 없는 다른 대대 병사들과 친해져 비행단 전체의 단합에도 기여하고, 여유 시간을 자기계발 시간으로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만족한다”고 말했고, 기타 담당 김현식(21·부품정비대대) 상병은 “동아리는 군 생활의 큰 활력소”라고 정의했다.

기계공학, 의상디자인, 부동산, 항공정비, 전자공학 등 입대 전 관련 전공은 다르지만, 밴드 음악으로 하나 된 이들의 바람에도 도전의 에너지가 묻어났다.

“부대 내부에서 공연 기회가 적어서 늘 아쉬운데 외부 밴드와의 정기 공연으로 군인 밴드의 뛰어난 기량도 알리고, 소속감도 고취하고 싶습니다.”

글=송현숙 /사진=양동욱 기자

밴드 동아리 ‘엔알티에스’ 멤버들이 함께 악보를 보며 연주법을 의논하고 있다.
밴드 동아리 ‘엔알티에스’ 멤버들이 함께 악보를 보며 연주법을 의논하고 있다.


송현숙 기자 < rokaw@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